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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스트 Apr 13. 2024

아들이 읽는 나의 추도문

이 글은 나의 상상으로 쓰인  아들이 나를 위해 위해서 읽어주는 추도문이다.  늘 죽음을 생각하고 살면 나의 하루가 더욱 의미 있을 것이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나의 마음 가짐이 달라질 것 같다.   


이 글은 나의 미래에 대한 상상이고, 꿈이며 회고이다.  쓰면서 울고 웃었다.  




2060년  X 월 X 일 


저는 고인 김수연 님의 외아들 박갈렙입니다. 


엄마는 저의 엄마로 , 둘째 딸로, 아내로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엄마 나이 20살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남긴 한마디를 늘 기억하며 인생의 지표로 사셨습니다.  

 ” 수연아,  엄마는 너를 위해 기도하는 제목이 있어.  넌 엄마처럼 살지 말고 꼭 일을 하고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자로 살게 해 달라고”.  엄마가 고등학생 때 아침마다 머리를 빗어주시면서 그렇게 기도 하셨다고 엄마는 회고하셨습니다.        


미국에서 30년 넘게 백인들 사이에서 직장 일을 하시면서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버티고 엄마를 이끌었던 메시지는 제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할머니의 유언이었다고 엄마는 생전에 여러 번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유언으로 이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일을 고민하며 찾으셨습니다.      

엄마가 일은 멈추지 않고 하셨던 이유는 아마도 돈을 잘 못 버시는 아빠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살아생전 많은 불평은 안 했지만 저는 Poor Dad & Reach Mom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래서 가족에 대한 책임감 크셨고 그녀를 더 움직이게 했으며 어쩌면  무능한 아빠가 엄마를 더욱 빛나게 하신 것 같습니다.          


엄마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의 딸로 사셨으며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해 준비하신 인생을 선물처럼 감사하게 살았습니다.  엄마는 외동아들인 저를 위해 늘 눈물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기도가 엄마를 만드신 것처럼 엄마의 기도로 저는 이 세상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삶은 50대 중반부터 더욱 성장했고 빛이 났습니다.  당시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입학을 하면서 엄마는 더욱 자유롭게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많은 보람된 일을 하셨습니다.  30년 동안 과도한 책임감에 짓눌려 앞으로만 달려갔던 회사 생활과 인적 자원에서 벗어났다고 말씀하셨으며 제가 고등학교 졸업식날 저보다 더 행복해하셨습니다. 그 후부터 엄마는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유연해지셨습니다.   쌓인 유연성과 성숙함으로 엄마는 미국 /한국 회사의 어드바이저나 사외 이사 일들을 하시면서 보람을 느끼셨습니다,      

마케팅과 커리어 주제의 자기 계발을 주제로 쓰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셨습니다.  엄마가 일하면서 쌓은 모든 값진 경험들을  글로, 강의로  젊은 세대에 많은 용기를 주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은 엄마가 운영하셨던  “행복 센터” 의 5주년 오픈 기념날에 방문했던 2040년 가을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어 엄마의 초청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행복 센터는 아름다운 강가에 자리 잡은  빨간색 벽돌의 아름다운 건물이었습니다.  건물 뒤로는 자작나무가 멋지게 줄 서고 있고 깊은숨만 셔도 힐링이 되는 아름다운 그곳에 방문했던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은 엄마가 오랫동안 존경하셨던  이동훈 대표님도 오셨고 산스 멤버들과 엄마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인들로 가득하여 엄마가 많이 웃으셨고 행복해하셨습니다.   그곳에서는 미술을 배울 수 있고,  바느질도 하고,  북토 크도 하면서 힐링과 성장을 위해 방방곡곡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행복센터의  원장으로 인생을 마감하신 엄마는 삶의 행복을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만드셨고 그녀는 자신의 삶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런 엄마가 저는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엄마는 미국에 오래 사시면서 늘 한국을 그리워하셨습니다.  미국과 한국에 반반씩 살고 싶다고 한국에 대한 깊은 향수를 갖고 계셨습니다.  엄마가 쓰신 책과 힐링센터의 운영은 그런 엄마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엄마는 하늘나라에 가신 이 세상의 마지막날에도 행복센터의 아름다운 정원을 산책하셨고 눈을 감기 전에 제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 갈렙아, 난 이제야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삶을 살라는 내 엄마의  바람을 이루었네.  갈렙이는 약속에 땅에 용감하게 들어간 장군의 이름처럼 용기 있고 진실을 추고 하고 선한 능력으로 다름 이 세상에 기여하기 바라.”       


엄마의 기도와 유언이 제 인생의 어떤 선택을 하든지 중요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크리스천 이어서 다음 생은 믿지 않지만 혹시 다시 태어나도 저는 엄마의 아들이고 싶습니다.   


엄마의 이름을 다시 불러 봅니다. 그녀의 이름은 김수연.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조국땅에서 눈을 감으신  선하시고 아름다우시고 어느 누구보다 강한 인생을 사신 엄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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