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청정 자연을 향해 떠나다
가서 보면 알 수 있다.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왜 남도 답사 일번지라고 했는지. 곳곳에 문화유산이 지천이고 자연풍광은 수려하기 그지없다. 볼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넘쳐난다. 공기는 맑고 바다는 청정하다. 그냥 숨만 쉬어도 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변치 않는 남도 답사 일번지, 편안할 강(康)에 나루 진(津), 강진(康津)이다.
숨만 쉬어도 건강해지는 땅
남도 답사 일번지 강진이 가까워질 무렵 고민거리가 생겼다. 수려한 자연풍광이며 넘치는 문화유산, 그렇게 많은 볼거리 중에 무엇부터 봐야 하나? 어디를 먼저 들러야 하나? 행복한 고민이었다.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다. 탁 트인 바다부터 보기로 했다. 이름부터 그렇지 않은가. 편안하고 건강한 나루, 강진. 그래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강진을 풍요로운 고장으로 만들어주었던 바다, 강진만 생태공원이었다.
해안 습지를 활용한 생태공원으로는 순천만이 유명하지만, 보다 다양한 생명체가 서식하고 있는 건강한 습지 공원은 강진만이라고 한다. 탐진강과 바다가 만나는 강진만 생태공원은 남해안에 산재한 11개 하구 평균보다 2배 많은 1,131종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강진군청의 말이다.
약 15만 평인 순천만 갈대밭보다 넓은 약 20만 평에 달하는 갈대군락지가 있고, 청정 갯벌 26㎢가 펼쳐진 광활한 습지라고도 한다. 과연 그랬다. 작은 어선 모양으로 조성한 입구 전망대에 오르니 참으로 광활한 습지가 눈과 가슴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설치 미술인 듯 갈대군락지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로에 내려서자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해 엉금엉금 갯벌 위를 기어 다니는 짱뚱어들이 반겼다. 짱뚱어를 보니 여기가 얼마나 청정한 갯벌인가 실감 되었다.
산책로를 걷다 보니, 탐진강 건너편 둑 위에 한 쌍의 큰고니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이곳이 백조라 불리는 큰고니 2,500마리 정도가 월동을 위해 찾아드는 집단서식지라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철이 달라 큰고니 실물을 못 보는 게 안타깝지만, 그래도 좋다. 드넓은 갈대군락지 사이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또 근처에 다른 볼거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강진만 생태공원에서 가까운 곳에 유홍준 교수가 극찬했던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장약용 선생이 유배와 기거했던 다산초당, 다산과 교류하며 차와 학문을 논했던 혜장선사가 수행했던 백련사가 지척이다.
생태공원을 나와 다산초당보다 가까운 백련사부터 찾았다. 생각보다 큰절이었다. 특히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웅전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크기도 컸으며, 앞면 2개의 주두에 용두를 장식하여 단청과 함께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주었다. 대웅전 앞에 서니, 강진만이 눈앞인 듯 다가섰다.
생생하게 남아있는 대가의 체취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900여 미터의 산책길이 있다. 다산 선생께서 적적할 때면 혜장선사를 만나 차담을 나누기 위해 걸었다는 길이다. 꼭 한번 걷고 싶었던 길이기도 했다.
완만한 오솔길과 다소 가파른 오르막, 내리막이 걷는 맛을 선사하는 산책로를 따라 30분 정도 걸어가니 다산초당이다. 강진 유배 18년 중 10여 년을 머물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600여 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던 곳. 본래 초가집이었으나 1957년 강진 다산유적보존회에서 목조 와가로 중건했다.
다산초당 외에 동암, 서암, 천일각 등의 건물이 있고 다산 4경이라 불리는 정석, 약천, 다조, 연지석기산 등의 유적도 보인다. 현판에 판각된 ‘다산초당’이란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을 집자해서 모각한 것이라고 한다.
다산초당을 내려와 차량으로 10여 분 거리에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 정원과 더불어 호남의 3대 정원으로 불리는 백운동 원림이 있다. 원림이란 집터에 딸린 숲을 의미하는데,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산 정약용이 이곳의 경치를 잊을 수 없어 제자 초의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했다 한다.
제1경 옥판봉을 비롯해 동백나무 오솔길, 100그루의 홍매, 취미선방, 모란 화단, 집 앞의 푸른 절벽, 소나무를 심은 묏등, 정선대, 시냇가의 단풍나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보낼 수 있다는 유상곡수, 폭포, 대나무밭 등 12가지 뛰어난 경관을 그린 그림에 13수의 시를 지어 붙여 책을 내었는데, 바로 <백운첩>이다.
백운동 원림 가까운 곳에 유홍준 교수가 남도 답사 일번지에서 언급했던 월출산 무위사가 있다. 유 교수가 책에서 소개했던 무위사 극락보전 부분은 중학교 3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월출산과 남도의 봄’으로 수록되기도 했다.
월출산 자락을 병풍처럼 두른 채 고즈넉하게 자리한 무위사는 강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다. 무위(無爲)라는 단어가 본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인 걸 생각하면 조금 아이러니하긴 하다.
무위사 구경을 마쳤으면 강진만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 가우도로 향할 일이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출렁다리가 양쪽으로 연결되어 걸어서 섬에 들어갈 수 있다. 섬 정상에는 청자타워가 있는데, 여기서 출발해 해상을 날 수 있는 짚트랙 체험이 여행에 짜릿한 정취를 더해준다.
▶ 여행 수첩
남해고속도로 강진 I.C에서 10여 분 거리에 강진만 생태공원이 있다. 생태공원 근처에 백련사와 다산초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북쪽 월출산 자락에 백운동 원림과 무위사가 있다. 다산초당 올라가는 길에 식당이 여럿 보인다. 맨 위쪽 다산명가 식당(예약 010-7385-3200)에서 점심 메뉴로 생선구이와 조림을 파는데, 둘 다 기대 이상으로 맛이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