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Jul 15. 2023

불온전한 나의 모성애를 꺼내며

 15살이 된 아이는 자신의 병명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자신은 왜 잘 못 듣냐는 질문이 시작되었다.

아마 아이는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았다.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이야기였다.


그래 올 것이 왔고

나는 아이에게 답을 해주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다.


5살에 아이의 청력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위의 두 오빠가 아토피로 애를 먹었기에 깨끗한 아이피부만으로도

나는 이 아이를 물고 빨았던 같다.


장애는 장애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아이는 밝게 성장할 것이라고  귀에 걸린 무거운 보청기가 가벼워지길

어느 때보다 과학의 발전을 바라며  장애라는 단어를 애써 지웠다.

지금이야 서른 넘어 결혼하는 것이 당연시되었지만

내가 결혼한 시기에는 늦은 결혼에 늦은 출산이었다.


미술학원을 하고 있었던 그때

나는 노처녀 선생님이었고

언제 결혼하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큰아이를 임신하자

기형아 검사를 하게 했다.

풍진검사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의례 나이 먹어하는 검사라고 했고

아무 생각 없이

아니 검사하면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검사가 얼마나 태중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검사인지

큰아이를 낳기 위해 찾았던 조산원선생님께 들었다.


정확하게 혼이 났다.


그래서 둘째 아이와 막내를 임신하고는 기형아검사를 하지 않았다.

검사결과에 따라 아이를 선택할 것이 아니기에

무의미한 검사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그때 하지 않은 검사가 후회되지 않았다.


이 아이가 내게 온 매우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그때도 지금도 선명하게  흐릿하게  어느 날은 어렴풋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가  왜 나는 보청기를 써야 하냐는 쑥스럽게

혹은 스쳐 지나가듯  흘리는 이야기는

나의 불온전한 모성애와 이기심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시작하게 했다.


작가의 이전글 단식 2일 차 몸에서 일어난 변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