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앤지 Aug 22. 2023

영어가 쓰고 싶은 이유

잠들기 전, 일기를 쓸 때를 제외하고는 한국말이 아닌 영어를 달고 살아야 하는 일상임에도 여전히 나는 한국어가 편하고 한국어를 쓰는 내가 더 나답다.

정치, 경제, 종교 쪽은 영어로는 더더욱 자신이 없고(언어의 문제라기보다 얄팍한 지식 때문 일수도), 그 외에 일상 영어나 사교를 위한 영어도 한국어를 쓰는 내가 스스로를 더 그럴듯하게 만든다는 것은 해외 생활 10년이 되어도 변함이 없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이상 한계는 있다고 생각한다.)

피하기는커녕 선택의 여지없이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 영어가 아직도 스트레스이고 일하러 가기 두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영어가 편할 때가 있다.




철저하게 한국어와 문화에서 분리된 생활을 이어가다 간간히 한국을 방문할 때면 여러 방면에서 낯섦을 느낄 때가 있다. 그중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세뇌당하며 자라 오긴 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예의 차리려다보니  아예 생략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생각된 적이 있었다.


예를 들면 버스에서 운전기사님들과 인사를 나눌  때 같은 경우이다.

버스를  탈 때는 그나마 올라가는 시간이 있으니  “ 안녕하세요.”라고 깔끔하게 다 말할 시간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고 기사님은 목례까지 곁들일 여유가 있지만, 내릴 때는 “고맙습니다.”를 모두 외치고 내리기에는 조금이라도 밍기적 거리면 문 닫힐 까봐 나도 마음이 급하고 한시라도 빨리 내리려 하는 뒷사람에게 걸리적거릴 것 같아서 헤어짐 인사는 감히 엄두도 못 냈던 기억이 있다. 실상이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는 운전기사님들도 사람들 타고 내릴 때 아예 다른 곳을 보고 계시는 경우가 더 많았었다.



그렇지만 여기 호주에서는 “Hi”, “Thank you” 두 단어로 해결되니 내 발걸음 보다 빨리 끝낼 수 있는 인사라 지체될 염려도 없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내리면서 손을 번쩍 들고 ‘빠빠이‘ 해주면 운전기사 아저씨도 손을 까딱 하며 받아준다.

그래서 바쁘디 바쁜 한국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안 하는 사람보다 더 많고 기사님들도 웬만하면 인사를 주고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다 잠깐잠깐씩 한국에 방문했을 때, 일을 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입도 뻥긋할 일이 없는 날이 있기도 하는 극한의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유일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 인사를, 또 묵묵히 그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커다란 버스를 요리조리 운전하시는 기사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감사를 결국 제대로 하지 못 한채 하차할 때면 그렇게 찜찜할 수가 없었다.




영어권 나라에 살면서 여기 사람들과 ‘ 와, 이렇게 까지…?’라고 여길 정도로 과한 칭찬과 긍정의 말을 나누는 게 일반적이게 되었다.


오늘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다.

여느 때처럼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긴장 속에 일을 하던 어느 날,  긴가민가한 사안이 있어 옆자리 상사에게 확인하였다.

내가 내 모니터를 보여주며 클릭 클릭을 하면서 “이렇게 하는 게 맞아?”라고 묻자 상사는 내가 클릭을 할 때마다 ‘Brilliant!’, ‘Stunning!’을 번갈아 가면서 몇 번이고 계속 말해주었다. 아니 'yes or no'로 말해줘도 되고 한 번만 말해줘도 되는데 내가 클릭을 하는 수만큼  ‘굉장하다’는 표현을 있는 대로 해주는 그 상사의 반응에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금 나 놀리는 거지?

돌이켜 보면, 알려줬던 거 다시 물어본 거 같은데 별 것도 아닌 답을 찾는 클릭에 나를 천재로 만들어 주는 이런 반응 맞아…?


물론 이 정도 되면 그 단어들은 그 상사의 말 습관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만난 외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본인들이 버릇처럼 쓰는 표현이 한 두 개 씩 있었다.  웬만한 질문의 대답도 될 수 있고 감탄사도 될 수 있는 “All good” 은 여기저기 같다 붙일 수 있는 아주 유용한 표현이다. “sorry”, “thank you.” 의 대답은 물론이고


“All good?”

“All good.”


이면 “are you ok?”라는 의미의 질의응답이 한 번에 다 해결이 된다.


 ‘Awsome’, ’Great’, ’Fabulous’ ,’Beautiful’ 등등 영어권 사람들과 대화 중에 비슷한 용도로 빈번히 들리는 단어들도 참 다양하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내가 빌려간 무언가를 돌려줄 때, 전화를 바꿔줄 때 와 같은 사소한 상황에서도 ‘네’, 혹은 ‘고맙습니다’ 외에 ‘굉장해요’,’ 아름다워요’ 등의 표현을 대답으로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대화의 상대가 친분과 상관없이 오늘 처음 본 점원이 거스름 돈을 줄 때라든지, 떨어진 무언가를 낯선 이 가 주워 주었을 때 한마디 건넨다면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외에 대체할 수 있는 간단한 예쁜 말이 있었나...?


이 사람들이 정말 너~~ 무도 아름다워서 ,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느껴져서 저런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너무도 잘 안다. 그래도 과장이라 느껴지는 표현이지만 격한 긍정의 표현이 책이나 자막이 아닌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다는 것이 새삼 좋아 보였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사는 사람에게 감사할 일만 생긴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저런 어마어마한 표현들을 입에 달고 살면 정말 내 인생에 ’beautiful’, ‘fabulous’ 한 일들만 생겨서 삶이 ‘stunning’ 해질 것 같은 막연한 희망이 들기도 했다. 



퇴근을 할 시점이 되면 집에 갈 준비 하라면서  ”you are always doing great.”,” you are the best.” 등등의 말로 비행기를 태워 먼저 집이든 어디든 먼저 보내버리는 또 다른 상사의 말은 매일 극도의 긴장 속에서 일을 하는 나 같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그만한 위로가 없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웬만하면 같이 일하는 누구에게나 하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직접 들었을 때의 짜릿함이 있다.

결국에는 비슷한 의미겠지만 ‘수고했다’는 표현보다 ‘오늘 고마웠어( thank you for today).’라는 말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내 기분 탓일까? ‘수고했다.’라고 직역할 수 있는 영어식 표현은 생활 속에서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꿈속에서는 한국어를 쓰는 나와 영어를 쓰는 내가 비슷한 비율로 등장하고 당황을 하게 되면 말하면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횡설수설의 인간화’인 나를 보지만 그래도 영어를 쓰지 않는 삶을 생각하면 마냥 만족스럽지만은 않을 것 같은 이유이다.

누구보다 한국말을 잘하고 싶었고 한국말을 할 때 편안함을 느끼지만 영어가 없는 삶을 선택하라면 선뜻 잡게 되지는 않는 이유이다.


“You were amazing as usual.”


진심이야 어떻든 어김없이 퇴근 인사로 말해주는 상사의 말에 나는 매번 큰맘 먹고 출근해야 하는 오늘에 또 한 번 용기를 내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부터 내가 너의 달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참 좋네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