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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키옥 Dec 01. 2021

13. 자존감

나는 자존감이 많이 낮은 사람이었다.

두 살 터울인 언니와 난 어릴 때부터 많은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짙은 쌍꺼풀에 긴 속눈썹. 인형같이 생긴 언니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나는 무 쌍꺼풀에 속눈썹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짧았으며 난 어딜 가나 있는지 모를 정도로 소심한 아이였다. 장난기 많은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우리 자매를 ‘쁜이와 난이’로 소개를 했고 어느 순간부터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도, 친구들까지도 우릴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언니는 예쁜이라 쁜이, 나는 못난이라 난이가 된 것이다.

말이 주는 힘은 엄청 무섭다. 나는 평생을 내가 못난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누군가가 나에게 예쁘다고 말해주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의심부터 했다.

‘나에게 뭐 바라는 게 있나?’

자존감이 낮은 것은 내가 하는 모든 일들에 걸림돌이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배우자의 외도는 더 큰 문제로 다가왔다.


여자로서의 자존감.


그나마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의 작은 자존감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남편은 나에게 첫사랑이자 첫 남자였다. 나에게 고백을 한 남자이기도 하다. 나를 예쁘다고 해주고 사랑을 주던 그 남자가 나 아닌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다니.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여자로서는 정말 끝이 난 것만 같았다. 남편의 온전한 사랑을 받지도 못한 내가 그 누구에게 사랑을 받을까란 생각이 날 절망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주 날카로운 송곳이 심장 곳곳을 찔러대는 것 같았다. 목구멍에서는 피 맛이 났다. 처음 그 사실을 안 때에는 화조차 낼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깊이의 고통과 참을 수 없는 눈물에 가슴을 부여잡고 울기만 했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렸다. 내가 매력적이지 않아서, 내가 애교가 없어서, 내가 사랑스럽지 않아서, 내가 예쁘지 않아서, 내가 몸매가 좋지 않아서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눈이 간 거라 생각했다. 여자로서는 끝이 났다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이 날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어떤 여자냐고 물었을 때 ‘당신 발 끝에도 못 미칠 정도로 별 볼일 없는 여자야, 정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 여자는’이라 말하는 남편 말에도 미칠 듯이 화를 냈다.


“내 발 끝에도 못 미칠 정도였다면서! 그런데 왜 그런 여자 때문에 날 버린 거야!”


당연히 남편의 말을 믿지 못했다. 실제 상간녀는 나보다 키도 작고 뚱뚱하고 못생겼었지만 난 그녀에게서 나보다 나은 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목소리는 예쁘네’, ‘나보다 나이가 어리네’, ‘애교는 많아 보이네’ 하며 나 스스로를 그녀와 비교하며 나를 더욱더 절망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내가 남편과 이혼을 하지 않고 부부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해보자 결심했던 순간부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자존감, 이 부분이었다. 안 그래도 자존감이 낮았는데 그런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겨버린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아내분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당신이 절대 예쁘지 않아서, 매력적이지 않아서, 몸매가 좋지 않아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란 것을 말이다. 배우자의 외도는 자신의 탓이 아닌 오롯이 배우자의 잘못된 선택과 양심의 문제라고 말이다. 그래서 변화해야 할 쪽은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해야 할 쪽은 우리가 아니라 배우자여야 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섹시 스타로 사랑을 받는 비욘세를 보라. 예쁘지 않은가? 매력이 철철 넘쳐흐르지 않는가? 몸매는 또 어떠한가? 그런 아내를 두고도 남편인 제이 지는 그녀보다 훨씬 더 못한 마이아 해리슨과 불륜을 저질렀다. 물론 마이아 말고도 불륜 상대로 지목된 여성들이 많지만 모두 하나같이 비욘세의 발 끝에도 못 미칠 정도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배우자가 있는 사람과 불륜을 저지르는 여자는 그 어떠한 이유로도 아름다울 수 없다. 생선 내장이 담긴 채 오랜 기간 동안 치우지 못한 음식쓰레기통과 다를 바가 없다. 비린내와 썩은 내가 진동하는 음식쓰레기통과 고결하고 아름다우며 영롱한 다이아몬드를 담은 보석함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내 안에 보석이 있음을 잊지 마라. 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하며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런 매력적인 여자를 두고 실수, 아니 잘못을 저지른 남편이 어리석은 것이다. 눈앞에 보석을 두고도 다른 것을 탐하다니. 아무리 휘황찬란한 색으로 포장하였대도 쓰레기통은 쓰레기통이다. 절대 아내들이 가진 보석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남편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순간엔 자신이 한 짓이 얼마나 역겹고 더러운 짓이었는지를 잘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을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어 할 정도로 생각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내와의 사랑은, 그 순간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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