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노키옥 Dec 17. 2021

16. 의심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시작된 남편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염탐.

그것은 남편뿐만 아니라 내 삶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었다.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서, 이 시련을 딛고 부부관계를 잘 회복하기 위해서 내가 가장 먼저 끊어내야 할 것이 의심과 염탐이었다.


남편이 외출만 해도 다른 여자를 만나는 상상을 하고, 내가 오자 보고 있던 휴대전화기를 꺼버리는 모습만 봐도 뭔가 숨기는 게 있구나 하고 의심부터 하게 되었다. 이런 나의 의심들은 곧 진짜라고 믿게 되고 남편을 닦달하게 되었다.

이혼을 하지 않고 나와의 결혼 생활을 어떻게든 이어가겠노라 다짐한 남편은 나의 의심과 불안이 당연한 거라며 이해해 주었다. 아니 이해하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어쩐 날은 자신도 힘이 부치는지 뭐를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며 울먹일 때도 있었다.


남편은 나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 몰랐고 나 또한 그를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 상황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조차, 비슷한 크기의 아픔을 경험해 본 적조차 없는 크나큰 시련이고 고통이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배우자의 외도는 어린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과 맞먹는다고…


상상이 되는가.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후 당신의 마음이 어떠할지. 세상이 원망스럽고 죽고 싶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 같고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것이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고통일 것이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면, 어린  자녀를 키우려면 우리 부부는 나가서 일을 해야 했다. 떨어져 있는 시간을 불안해하지 않도록 장치가 필요했다. 젊은 커플 사이에서 많이 사용하는 앱을 서로 설치하기로 했다. 앱은 상대방의 통화 시간과  주고받은 메시지 등을 모두 공유하고 실시간으로 위치까지 볼 수 있었다. 누가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떠한 목적으로 만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앱은 실제 젊은 커플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서로의 휴대전화에 같은 앱을 깔고 동의를 하면 두 개의 휴대전화는 연동이 된다. 내가 남편의 통화내역과 메시지, 위치 등을 시시때때로 들여다볼 수 있듯이 남편 또한 나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누구보다 간섭받는 걸 싫어하던 성격인 남편은 무엇이라도 하겠다며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부부 사이에 잠시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지금 누굴 만나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수시로 앱을 열고는 그의 동선을 행적을 살피었다. 한동안 그것은 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위치가 정확하게 잡히지 않고 반경 몇 미터 정도의 오차 범위가 있었는데 우린 그 사실을 너무 쉽게 간과해버린 것이다. 다시 회사 생활을 시작한 그가 환영회를 하기 위해 회식을 하던 날. 하필이면 회식장소 가까운 곳에 모텔이 있었던 것이다.


분명 회식을 한다던 그가 모텔 근처에서 두 시간 이상 움직이지 않자 나의 불안감과 화는 극에 달했다. 설상가상 남편은 전화조차 받질 않았다. 수 십통의 걸려온 부재중 전화를 보고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난 다짜고짜 욕부터 퍼부었다. 남편은 한동안 잠잠했던 내가 다시 폭주하자 놀랐는지 택시를 타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난 남편의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고 뺨을 때리고 휴대전화기를 뺏어 들어 벽에 던져버렸다. 나의 분노가 엄청났는지 전화기는 산산조각이 났다. 남편은 식당 앞에 모텔이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며 나와 통화하고 나서야 그 앞에 모텔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내 휴대전화를 열어 거리뷰까지 보여주며 날 설득하였지만 이미 시작된 의심은 그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고 들렸다.


그렇다고 치자. 그럼 내 전화는 왜 안 받았던 건데? 뭐 하느라 그런 건데?!”


남편은 앱을 깔고 나서 자신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확인되고, 메시지와 통화목록도 볼 수 있고, 환영회로 회식을 한다고 전하였으니 마음을 놓았다고 한다. 늘 불안하듯 전화기를 손에서 쥐고 놓지 않아야 했던 삶에서 앱을 깐 이후로는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돼서 방심을 했다고 한다. 재킷 주머니 안에 전화기를 놓고 의자에 걸어두어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날 밤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렸다.


애써 붙잡아왔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나름 잘 지내보겠다고 부부 상담도 다니고 병원 상담과 약물 치료도 꾸준히 받으며 스스로를 대견하다 여긴 적도 있었다. 그렇게 잠시 깨어진 부부 사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구나 하며 작은 희망도 보았었다. 이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네가 아무리 죽을 만큼 노력해봐야, 아무 소용없어. 이미 끝난 사이라니까!’


마음속에선 계속 같은 외침을 되뇌고 있었다. 괜찮은 듯했던 내가 한순간에 무너지자 남편도 좌절하였다. 무릎을 꿇고 깨져버린 휴대전화의 조각들을 줍다 결국 그도 울기 시작했다. 꺼억꺼억 넘어가는 숨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커다란 그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이런 아픔을 준 남편이 한없이 미우면서도 커다란 덩치로 웅크린 채 울고 있는 뒷모습을 보니 안아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난 그에 대한 가여운 마음보단 분노의 마음을 선택했다.

그렇게 우린.. 아니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날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15. 시행착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