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을 벗어나는 일은 각자의 날개로 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새장 속에서 살아간다.
어떤 새장은 작고 허름하고, 어떤 새장은 조금 더 크고 눈부시다.
싯다르타는 사문들과 함께 수행하며 더 넓은 세상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그 역시 새장 속에 있었다.
카말라가 본 것처럼, 그는 새장에 갇힌 조금 희귀한 새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새장의 크기가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고타마는 이미 새장을 벗어난 새였다.
그는 새장 밖에서 지저귀며 길을 말해준다. 새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지저귐을 듣고 새장 밖을 꿈꾸며 벗어나기 위해 수련한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달랐다. 싯다르타는 그 지저귐을 듣고 감탄하면서도 한 가지를 확신한다.
타인의 깨달음은 들을 수 있을 뿐, 전해질 수는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속세로 들어가 새장을 벗어날 방법을 스스로의 날갯짓을 통해 찾기를 택한다.
결코 그 과정이 순탄친 않았다. 돈, 여자, 나태함에 물들어 새장을 벗어나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다.
점차 그는 자신이 말하던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변해간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는 마음이 보내는 경고를 듣게 된다. 그리고 속세에서 얻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새장을 벗어나기 위한 길을 떠난다.
어쩌면 이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카말라였을지도 모른다.
카말라는 싯다르타를 생각하며 본인의 황금 새장에 갇힌 희귀한 새를 본다. 그는 분명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였지만, 어느 순간 세속적인 삶 속에 머무른 새장의 새처럼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카말라는 그를 사랑했다. 어쩌면 그녀는 처음 만났던 싯다르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녀는 싯다르타가 새장을 나가기 위한 날갯짓을 멈추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카말라는 싯다르타가 떠나자 자신의 새장에서 새를 놓아준다.
나는 싯다르타를 보며 어쩌면 위안을 느꼈다. 어느 정도 경지의 인물조차도 속세에 물들 수 있다는 사실에서였다.
하지만 그의 방황 역시 작은 날갯짓이었다. 결국 그의 깨달음은 그런 날갯짓들 속에서 찾아왔기 때문이다.
고타마의 지저귐은 많은 새들에게 새장 밖을 꿈꾸게 한다.
하지만 그 지저귐이 새장을 열어주지는 않는다.
새장을 벗어나는 일은 결국 각자의 날개로 해야 한다.
나 역시도 아직은 과정에 있을지도 모른다.
새장을 벗어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싯다르타를 보며 계속해서 날갯짓을 해봐야만 한다는 것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