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열여덟 번째 완독책 ★★★☆☆
#1. 낚였다. 감성적인 제목과 맨부커상 수상작가 줄리언 반스, 책 뒤표지의 소개글 때문에 사랑에 대한 고찰이 이 담겨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약간 알랭 드 보통 st) 심지어 소설 전반부는 엘리자베스 핀치(여)라는 인물에 대한 신비함과 매력을 주인공(남)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언제 사귀는데! 언제 사랑에 빠질 건데!'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쭉쭉 책장을 넘겼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연애소설은 아니구나.....
#2. 엘리자베스 핀치는 <문화와 문명>의 강사이다. 이 책이 과시용 독서 또는 지적허영심을 채우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바로 이 강의에서 다루는 다양한 철학적인 개념, 역사적인 사건 그리고 그에 대한 엘리자베스 핀치의 의견 그리고 질문을 따라가는 재미가 꽤 흡입력 있다. 그리고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에 대한 주인공의 에세이로 구성된 두 번째 장을 읽다 보면 이게 소설인지, 역사서인지 혼란스럽다.
#3. 그런데 계속 읽게 된다. 나를 이 혼란에 밀어 넣고 종국에 작가는 뭘 이야기하고 싶어 했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4. 나는 이 책을 통해 '객관적 사실, 객관적 존재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율리아누스, 엘리자베스 핀치 모두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정의, 기억되는 모습이 달라졌다. 누군가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고 인지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은 아니라는 것. 이 역시 상상력의 영역이라는 것.
#5. 넷플릭스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일대기를 다룬 더크라운을 보고 있다. (엇, 여기도 엘리자베스네) 그중 처칠의 초상화 에피소드를 보면서 이 책의 내용과 오버랩이 되었다. 처칠은 본인의 초상화를 보고 매우 사실적이라 싫어하는데 그때 화가의 이야기를 듣고 총리직을 사퇴한다.
“쇠퇴함이 보이는 이유는 쇠퇴했기 때문입니다. 노쇠함이 보이면 노쇠했기 때문이고요. 사실대로 그렸다고 해서 비난하시면 안 됩니다. 제 눈에 보이는 것을 숨기고 과장할 생각이 없습니다. 무언가와 싸우고 계신다면 그 대상은 제가 아니라 보기를 거부하는 각하 자신입니다."
나도 나 자신을 바로 알기 어려운데, 하물며 다른 사람을 온전히 아는 건 거의 불가능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