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 사는 아들 눈만 원 없이 보고 오면 됩니다
강원도 한 달 살기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시기가 시기인만큼 조심스러웠고 걱정도 되었지만 그래도 눈만 원 없이 보고 오자라는 작은 목적 하나만 가지고 떠났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 이야기이다. 나는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기 전 7살의 겨울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캠핑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남편의 육아휴직과 호주, 뉴질랜드 3개월간에 캠핑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언제 떠나야 할지 일정을 조율하고 예산을 잡고 계획적으로 돈을 모으며 가야 할 곳들과 항공권, 캠핑카를 알아보는 도중에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기약 없이 무기한 연장되어버린 호주의 캠핑카 여행을 대신해서 아들과 강원도 한 달 살기를 계획하게 되었다. 특별하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눈을 많이 보고 조금 천천히 살다오고 싶었다.
아들이 6살에는 둘이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했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제일 중요한 것도 숙소 제일 먼저 해야 되는 일도 숙소 구하기라고 생각했다. 숙소를 알아보는데 강원도는 제주도와는 다르게 숙소 정보가 많이 없었다. 강원도의 유명한 바닷가 근처라면 정보가 많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눈이 많이 오는 산간지역으로 숙소를 찾아야 했고 준비과정에서 숙소 구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먼저 눈이 많이 온다는 지역 중에서 한 달 동안 살 곳을 정하고 가장 먼저 에어비앤비로 그 근처에 숙소를 알아봤다. 생각보다 한 달 살기를 하는 숙소가 많이 없었고 비싸기도 해서 다시 인터넷으로 근처 펜션을 검색해서 홈페이지에서 방을 확인하고 실시간 예약 내역을 찾아보고 전화 문의를 하기 시작했다. 겨울 한 달 살기 숙소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난방이었는데 난방비에 대한 것은 어떻게 되는지를 꼭 물어보았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근처 큰 병원은 있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그리고 근처 가까운 마트에 대해서 문의를 했고 펜션이라면 세탁기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그렇게 여러 군데 전화를 돌리고 나서야 힘들지만 마음에 드는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스트이다. 심플하고 간소한 삶을 살면서도 여행과 캠핑을 수도 없이 다녔고 짐을 싸고 풀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짐에 대한 부담이나 준비할 것들이 많지 않아 조금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옷 몇 가지와 캠핑 시 가지고 다니는 보조가방(여기엔 비상약과 체온계, 세면도구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 캠핑용 조리도구와 식기세트(숙소에 기본적인 것들이 있지만 필요할 것 같아서 챙겨갔다), 아들의 장난감과 미술도구, 마스크, 겨울용 크록스, 손빨래할 수 있는 양동이와 세제, 소창 행주 몇 개와 반찬을 담을 수 있는 반찬보관용기, 조미료는 소금, 간장, 참기름, 식용유, 그리고 브리타 정수기를 챙겼다. 주방에서 쓰는 수세미와 설거지 바, 간단하게 아침에 먹을 오트밀과 읽을 책 몇 권을 챙기면 계획에 있던 짐들은 모두 다 챙긴 것이다. 특별한 계획이 없었던 만큼 특별하게 챙겨갈 것도 없었다.
내가 한 달 살기를 했던 평창은 조용하고 작은 곳이었다. 근처에 알펜시아 스키장이 있었는데 한 달 살기를 하는 연말 연초에 코로나 확산 방지로 스키장들이 운영을 안 하면서 평창은 더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자주 내리는 눈 덕분에 경남에 살며 눈을 보기 힘들었던 아들은 원 없이 눈을 보고 만졌다. 갑자기 내리는 눈에 맨발로 테라스에 나가 눈을 밟았고 숙소 앞 눈이 쌓여있는 곳에서 뒹굴고 썰매를 타고 눈사람도 만들며 겨울을 즐겼다.
우리가 한 달을 살았던 작은 방에는 밖이 잘 보이는 큰 창과 한쪽 벽에 액자같이 작은 창이 있었는데 나는 이 창으로 눈 쌓인 자연 풍경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평소에 하던 모닝 루틴과 나이트 루틴을 모두 내려놓았다. 집에서는 새벽 기상으로 5시에 일어나 기계적으로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신문을 정신없이 읽었지만 강원도에 와서는 알람 없이 푹 자고 일어나 여유롭게 책을 읽었고 조금 더 천천히 아침을 먹었으며 느지막이 신문도 읽었다. 나의 여유로운 아침에 아들도 평소보다 느린 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침대에서 충분히 뒹굴거리 고난 뒤 학습지를 했고 천천히 밥을 먹었으며 그 뒤엔 원하는 만큼 그림도 그렸다. 밖에 날씨가 많이 추운 날이면 하루 종일 영화도 보고 눈이 내리는 날이면 밖에 나가 눈에서도 뒹굴고 놀다가 추우면 집에 들어와 몸을 녹이고 다시 나가 놀고를 계속 반복했다. 계획 없이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를 가기도 했으며 사람이 없는 시간에는 썰매장도 다니고 목장도 다녔다. 평소 나의 일상의 모든 것들이 빠르게 흘렀다면 강원도에서 한 달은 느리게 천천히 여유롭게 시간이 흘렀다.
여행은 약도 없는 병인가 보다. 한 달 살기는 한 달로 끝이 아니다. 여행과 캠핑처럼 또 다음을 기약한다. 아들과 제주도와 강원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성장했다. 내가 아들을 이해하게 된 것만큼 아들은 엄마인 나와 한 달 내내 붙어있으며 서로에 감정에 집중하고 엄마인 나를 더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집중하고 영향을 받으며 가까워지고 성장했다.
다시 계획하게 될 한 달 살기는 조금 더 먼 곳으로 가고 싶다. 코로나가 괜찮아진다면 해외로 가고 싶고 그렇지 않다면 더 조용한 곳으로 갈 계획이다. 그리고 앞으로 상황이 허락하는 한 매년 아들과 둘이 한 달 살기를 가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아빠와의 한 달 살기 또한 계획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