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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각 Mar 25. 2021

크리틱 시간에 깨달은 세 가지

내가 뉴욕의 디자인 스쿨에서 배운 것들 – 5화 –

디자인 스쿨의 수업시간은 강의와 필기가 주를 이루는 일반적인 대학 강의와는 상당히 다른 편이다. 16주에 걸친 한 학기 동안 교수들은 보통 서너 개의 과제를 학생들에게 내준다. 학생들은 차례로 그 과제들을 한두 달에 걸쳐 완성한다. 매주 수업시간에는 모든 학생들이 진행 중인 과제를 가져와 차례로 교수와 다른 학생들에게 발표한다. 교수와 동료 학생들은 발표하는 학생의 미완성 과제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비평한다. 크리틱 critique이라고 불리는 이 과정을 매주 되풀이하면서 각각의 학생들은 자신의 과제물을 발전시키고 완성시킨다.


크리틱(비평) 시간이야말로 디자인 스쿨을 포함한 모든 아트 스쿨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개인적으로 아트 스쿨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의 80%는 크리틱 시간으로부터 온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학생으로서 만들어간 실험적인(혹은 엉망진창인) 작품을 진지하게 보고 신랄하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강의실 안에만 존재한다. 디자인 스쿨 교수들은 교실을 흔히 세이프 스페이스 safe space, 안전 지대라고 표현한다. 강의실 안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실험적인(혹은 개판인) 작품들은 강의실 안에서만 공유되고 그 안에서 벌어진 토론은 강의실 안을 떠나지 않는다. 이러한 암묵적인 약속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작품에 망설임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되고,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순수한 비평과 조언을 교수와 동료 학생들로부터 들을 수 있다.


자신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 간 날이면 크리틱 시간은 기쁨과 환희의 연속이다. 교수를 포함한 교실의 모든 학생들이 당신이 만들어 간 작품을 보면서 끊임없이 칭찬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배 터지게 칭찬을 먹은 날이면 관대함이 가슴속에 가득 차올라 다른 학생들의 작품에도 덕담을 아끼지 않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크리틱 과정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감정 상하는 이벤트의 연속이라는데 있다. 보통 완성되지 않은 과제 작품을 교실에 가져가면 이런저런 온갖 이야기를 사방팔방에서 듣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완성되지 않은 다른 학생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까대고 싶은, 아니, 해주고 싶은 말이 미리 써놓은 연극 대본처럼 머릿속에 쉴 새 없이 떠오른다. 그런 까닭에 크리틱 시간에 싫은 소리를 듣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성과 감정은 종종 따로 놀게 마련이다. 입이 근질거려 남의 작품에 대해 함부로 말했다가는 상대방의 감정이 크게 상할 수 있고, 누군가 신랄하게 내 작품을 까대면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크리틱 시간에 화가 나서 집으로 가버리는 학생들도 가끔 나온다.




디자인 스쿨에서 어림잡아 1,000시간 이상을 크리틱을 주고받으며 보낸 뒤 얻은 첫 번째 깨달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가지 말라는 것이다. 졸업 후 수년의 시간이 지나 학생 시절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내가 이렇게 신선한 작품을 만들었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종종 부끄러워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이 들곤 한다. 당신이 수업 시간에 가슴 아픈 크리틱을 듣고 있다면 아마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집에 가지 말라는 것은 메타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서서 교수와 동료 학생들이 내 작품에 대해 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들의 의견에 대해 너무 강하게 반박을 하면 상대방이 종종 입을 다물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근질거리는 입을 꾹 다물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다. 어차피 당신의 실력은 완성된 작품이 증명해줄 것이므로 굳이 크리틱 시간에 교수나 학생들과의 언쟁에서 이기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이 잘 안될 때도 있다.)


사실 면전에서 대놓고 욕을 먹고 있는 크리틱 시간은 작가로서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학교를 졸업하면 아무도 면전에서 대놓고 당신 작품을 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 디자이너가 되어 디자인을 개판으로 해도 면전에서 당신에게 진지한 크리틱을 해주는 직장 동료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저 넌지시 와서 한두 마디 툭 던지고 가는 것이 그들이 주는 최대한의 크리틱일 가능성이 높다. 그 마저도 못 알아들으면 당신은 그저 다음 프로젝트에서 배제되거나 누구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맡게 될 확률이 높다. 물론 잘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만약 당신이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라면 알 수 없는 이유로 고객들이 떠나갈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당신이 여전히 저런 신랄한 크리틱을 주기적으로 듣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을 즐기는 것이 좋다. 곧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것이므로.




크리틱 시간이 주는 고통은 자신의 자존심의 크기에 비례한다. 영어로는 이고 ego라고 말하는데 수업시간에 ‘저 친구는 이고가 참 크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십중팔구 그 친구는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자존심은 스스로의 주장을 접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데 장애물이 된다.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다른 사람의 말에 동의하는 것과 자아의 붕괴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많지는 않지만 반에 꼭 한 명 정도 있다.


만약에 당신이 그렇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내게 꽤 괜찮은 해결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당신이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크리틱 시간에 두 번째로 깨달은 점이다.


누구보다도 남의 말 듣는 것을 싫어했던 나는 크리틱 시간에 교수나 다른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듣고 내 작품을 고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읽은 아마존 Amazon Inc. 창업자 제프 베조스 Jeff Bezos의  인터뷰 기사가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인터뷰에서 베조스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데 망설임이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수시로 말을 바꾸는 베조스에게 불만을 가진 주변 사람들이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고 따질 때면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나와 여전히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발전이 없는 인간이겠지요.”


생각을 바꾸는 것이 스스로가 발전했다는 증거였다니, 가히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같은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어디서 읽었는지, 심지어 이게 베조스 인터뷰였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찰나의 충격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내 생각과 의견을 이리저리 바꾸는 데에 거리낌 없는 인간이 되었다. 많이 바꿀수록 내가 발전한다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당신도 나처럼 생각을 바꾸는데 망설임이 많은 사람이라면 수시로 의견을 바꾸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하길 바란다.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마지막 깨달음은 자신을 믿으라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 제프 베조스를 들먹이면서 남의 말을 들으라고 한 마당에 갑자기 급커브를 도는 것 같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당신의 디자인이며 당신의 작품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도 들어보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음에도 당신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된다면 그 길이 아마도 맞는 길일 것이다. 그러니 일단 자신의 감을 믿고 직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끝까지 한 번 가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물론 결과도 본인이 책임을 져야겠지만 말이다.


디자인 업계, 특히 뉴욕 디자인 업계의 매력은 스포츠 업계처럼 경력보다 실력을 중요시한다는 데에 있다. 물론 경력과 실력은 보통 비례하게 마련이지만 실력만 있으면 경력을 크게 묻지 않는다. 디자인 잘해서 주목받으면 경력은 물론 학교를 나왔는지조차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령 뉴욕에서 가장 잘 나가는 책 표지 디자이너 가운데 한 사람인 피터 멘델준트 Peter Mendelsund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정식 디자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내가 함께 일해본 디자이너 가운데 가장 뛰어난 감각을 가졌던 한 사람은 아예 대학 졸업장이 없었다.


사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도 이 도시에 있는 수많은 디자이너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당신이 마지막 학기 수업을 듣고 있다면 몇 달 뒤 당신과 그 교수는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동료로 지위가 동등해진다. 교수가 당신의 작품을 싫어한다는 것이 당신이 나쁜 작품을 만들었다는 결정적 증거는 아니니 자신 있다면 조용히 무시해도 좋다. 물론 당신의 지도교수가 천재적인 피터 멘델준트일 수도 있지만 당신이 그보다 더 뛰어난 디자이너가 아니란 증거가 어디 있는가. 어쩌면 당신은 역사에 길이 남을 디자이너가 될 인물일 수도 있다. 요컨대, 동료 디자이너의 의견을 듣고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되면 자신을 믿어보는 것도 좋다. 어차피 프로 디자이너라면 자신의 디자인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만약 좋은 크리틱을 주는 교수 혹은 동료 학생, 친구 등이 있다면 꼭 곁에 가까이 두고 친하게 지내길 바란다.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는 좋은 디자이너를 만나기란 제프 베조스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디자인 스쿨이란 결국 크리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대거 한 공간에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혹시 당신이 어떤 사정으로 디자인 스쿨이나 예술 학교에 다니기 어렵다면 학교 강의실에 들어가 청강이라도 해보길 권한다. 법대생이나 의대생은 졸업장이 있어야 업계에 발을 디딜 수 있지만, 디자인 업계에서는 졸업장보다 실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력은 대부분 크리틱 시간의 배움으로부터 기인한다.


디자인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용기를 내어 가까운 학교의 디자인 수업 강의실을 찾아가 크리틱만이라도 듣게 해달라고 간청을 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많은 교수들이 안된다고 하겠지만 백 명 중에 한 명 정도 너그러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청강에 성공한 다음, 다른 학생들에게 좋은 크리틱을 해 줄 수 있다면 아마 다음부터는 교수와 다른 학생들이 청강생인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업계에서 디자이너로 만난다면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의 포트폴리오가 서로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사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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