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산 부부의 유치한 다툼
"아까 당신 뭐라고 했어? 티브이 소리 때문에 뭐라고 했는지 듣지 못했어." 공부방에 들어가 막 책을 폈는데 남편이 따라오며 물었다.
"좀 전에? 글쎄 내가 뭐라고 했지?... 아, 아침에 공부하지 않으면 저녁에 퇴근하고 아무리 시간이 있어도 너무 피곤해서 머리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고 오디오북 듣는 것 밖에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아 아, 맞아."
웬일로 남편이 내가 한 말을 못 들었다고 다시 묻지? 아마도 지난주 사건 때문일 거다.
지난 주말에 남편이 한 말이 섭섭해서 반나절 골을 냈었다. 발단은 삼계탕 집에서 시작됐다. 주말이었지만 남편은 아침 일찍 입원한 환자를 보러 병원에 가며 점심은 함께 할 수 있다고 했다. 전공의가 있을 때도 주말 회진을 종종 돌았지만 지금은 전공의가 없어서 주말마다 병원에 나간다. 혈액암은 워낙 위중한 환자들이 많아 의사가 한 번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플라세보 효과와 비슷한 반응이 있다고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그래왔다. 덕분에 나는 일찍부터 주말에 혼자서 노는 법을 터득했지만 함께 외식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당신 좋아하는 걸로 먹어. 갈빗집에 갈까?
아뇨. 날도 덥고 당신도 피곤한데 그냥 집 앞에 삼계탕집에 가요. 당신 삼계탕 좋아하잖아. 나도 기운이 없을 때 삼계탕 먹으면 좋다고 말했죠?
사실이다. 나는 전에 사람들이 왜 여름에 삼계탕을 먹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며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 시작했을 때 우연히 삼계탕을 먹고 기운이 나는 경험을 했다. 그 후 몸이 안 좋을 때마다 먹으러 가지만 여전히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남편이 온다는 시간보다 좀 일찍 삼계탕집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남편이 창문 너머로 걸어오는 게 보여서 삼계탕 2인분을 시켰다. 남편이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우리에게 물을 갖다 주는 직원이 젊은 동남아 남성이란 걸 보고 그전 주에 장어집에 갔을 때도 불을 나르는 직원이 젊은 동남아 남성이었던 게 생각나서 남편에게
“요새는 동남아 남성들이 공장에서 일하지 않고 음식점에서 일하나 봐요.”이라고 하자 남편이 대뜸
“안 들려 얘기하지 마.”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동안 내가 말을 해도 잘 경청하지 않는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지 말하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남편도 순간적으로 말실수를 했다는 걸 알았는지 엉뚱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옛날 사람들이 왜 밥 먹을 때 말을 안 했는지 알겠어. 말을 하면 침이 튀기니까 전염병에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거야.
나는 어린아이처럼 귀를 막고 남편 말이 안 들린다고 했다. 직원에게 파도 더 달라고 해서 내 국에만 다 넣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이 음식값을 지불할 때 기다리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가서 아파트 입구 비밀 번호를 누르고 나만 쏙 들어갔다. 유리문 너머로 남편이 나를 한 번 쳐다봤다. 좀 안 되어 보였지만 모른 척했다. 남편은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며 생각하니 주말에 당직이라고 한 것 같다. 병원에서 힘든 일이 있었나? 며칠 전에는 남편이 “사람들이 과로사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이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던가? 앞으로 남편에게 더 잘해줘야 한다고 다짐했던 게 무색하게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유치하게 복수나 하고… 아파트 유리문 너머로 나를 쳐다보던 남편이 떠올라서 곧바로 전화를 하려고 했으나 삼계탕을 너무 많이 먹었는지 잠이 쏟아져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벌써 저녁 시간이었다. 얼른 남편에게 전화했다.
여보?
음, 여보.
자신의 죄를 알렸다.
…
내가 착해서 당신 봐준다. 암튼, 저녁에 몇 시에 올 수 있어요? 저녁에 당신 좋아하는 콩국수 만들까 해서요.
8시는 넘을 것 같은데 당신 먼저 들어요.
아뇨. 나도 점심 든든히 먹어서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