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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mita Sep 01. 2024

ADHD임을 확신하게 된 결정적 계기 - '난독증'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준 티스토리의 글

매우 힘들었던 교환학생 시절은 내게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무기력증에 빠져 별 잡다한 내용을 구글링 하면서 우연히 ADHD에 대한 티스토리 글을 읽게 되었다. 본인이 ADHD 약물치료를 받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작성한 티스토리 블로그 '바실의 인생 일기'의 한 글이었다. 



이 글에서 바실님은 ADHD 약물 치료 전 시험에 지장을 줄 정도로 불편을 끼친 ADHD 증세가 바로 난독증이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아래 캡처본을 보자


이 글은 내가 ADHD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남들이 이해해주지 못하는 나의 증세를 명확한 언어로 설명해 주었다. 




내가 어떠한 글을 읽게 될 때, 단어 하나하나의 뜻은 모두 알지만, 그 문장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분명히 문장 안에 있는 모든 단어를 알고 있지만 문장을 읽고 그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물론, 짧은 문장이거나 굉장히 쉬운 단어들로 구성된 경우에는 그 문장을 읽자마자 바로 이해가 된다.

다만, 글이 다소 학술적이거나 난해한 경우는 단어를 알고 있을지라도 바로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글을 읽고 그 글이 머릿속에 바로 입체화돼서 이해가 되지 않다 보니 시험을 볼 때 굉장히 불리했다.

내가 읽은 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보니 다시 읽고.. 두세 번씩 읽었던 것 같다.



우연히 이 글을 읽고 머리를 망치로 띵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내가 가진 문제점을 적절한 단어와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해 헤매고 있던 순간,  나 대신 이 문제점을 정확하게 집어준 글을 만나게 되었고, 나는 나의 고질적인 문제점에 ADHD에 의한 '난독증'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ADHD'에 의한 '난독증'임을 명명하면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인지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었다. 즉 내가 ADHD임을 조금이나마 확신하게 된 근거를 갖게 된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으로 돌아가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절망밖에 남지 않던 나의 삶에 희망이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치료를 하면 본질적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말이다.


난독증이란 듣고 말하는 데는 별 다른 지장을 느끼지 못하는 소아 혹은 성인이 단어를 정확하고 유창하게 읽거나 철자를 인지하지 못하는 증세로서, 학습 장애의 일종이다.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단어를 정확하고 유창하게 읽거나 철자를 인지하지 못하는 증세'라는 학문적인 의미의 난독증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듯하다. 바실님께서 말하는 난독증은 정확히 말하자면 전두엽의 실행기능 장애에 의한 작업기억(단기기억) 저하에 의한 증상이 아닐까 싶다. 


우리 뇌의 '전전두엽'은 다양한 기능을 담당한다. 전전두엽의 핵심적인 기능 중 하나는 바로 실행 기능이다.  동기 부여, 시간 관리, 체계적인 업무 수행, 일의 순서, 작업기억 처리 등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ADHD의 많은 증세들, 무기력, 의욕 저하, 시간 낭비, 비효율적인 일의 수행, 눈치 없음, 난독증, 청각 난독증 등이 바로 이에 기인한다. 바실님이 말한 '난독증'은 이 중 단기기억의 처리에 이상이 있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의 경우, 짧은 문장으로 되어 있거나 굉장히 쉬운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들(특히 평소에 관심을 갖던 주제)은 쉽게 이해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흥미가 없는 주제나 그전에 접한 적 없는 새로운 용어들이 등장하는 문장에는 굉장히 취약해진다. 


특히 일반인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단기기억으로 인해서 '독서'에 큰 문제가 있다. 흔히들 글의 정보가 머릿속에 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빠져나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앞에 읽은 문장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긴 문장은 문장 내의 앞에 있는 단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글을 이해하는 데 보통의 사람들은 한 번 읽어서 이해하는 것을 두세 번은 읽어야 한다. 


이러한 난독증을 가지고 있음을 살면서 거의 자각을 하지 못했었다. 학교 내신에서도 수능 준비에서도 국어 성적에서 늘 최상위권을 유지했기에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공부', 정확히는 시험 성적 취득을 위한 '공부'의 범위를 벗어나면 나의 난독증은 큰 불편이었다. 바실님께서는 살아가는 데 약간 불편한 정도일 뿐이라고 했으나 나에겐 최악의 증세였다;;;;


대학에서 조별활동을 할 때 조장이 카톡방에 공지하는 내용들을 읽어도 기억 속에 주입이 되지 않는다. 무엇이 중요한 내용인지, 기억해야 할 내용인지를 알 수 없어서 조별 활동이면 늘 묻혀가는 신세였다. 음식 레시피, 빨래 방법, 여행지 소개, 서류 처리 등 실생활 정보가 담긴 블로그 글을 읽어도 이해를 하지 못한다. 


정보글에서 내게 필요한 키워드를 선별하지 못하고 스스로 정리, 체계화하지 못하니 소위 "검은 것은 글이요, 하얀 것은 배경이로다" 지경인 것이다.


심지어 동아리 지원금 관련 서류를 읽고는 700만 원을 충족해야 한다고? 이게 말이 되나? 계속 머리를 끙끙 앓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형이 "그거 70만 원 이잖아..." '700,000'라는 수를 70만 원으로 해독하지 못한 것이다...


자각하지 못했을 뿐 난독증 증세는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일본 추리 소설을 읽으면 '문장' 단위로 해독하지 못하고 '등장인물' '배경' '인상 깊은 단어' 등 '단어' 중심으로 정보를 인식한다. 소설의 글 중 40%는 아예 읽지도 못한다. 이해하려면 3-4번은 읽어야 하므로 그냥 건너뛰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소설 내용을 이해하냐고? 그냥 뒷내용을 보고 앞 내용을 추론하는 것이다. 나의 높은 국어 성적이 상당 부분 이에 기인하지 않았을까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어떤 책을 다 읽고 나도 보통 책의 '내용'이 기억나는 게 아니라 글을 읽은 '순간' 느낀 '감정', '분위기' 위주로 기억한다. 


이는 청각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내가 잘 모르거나 관심을 갖지 않은 이야기를 친구가 말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머릿속이 안개가 낀 듯 뿌예지는 브레인 포그 현상이 일어난다. 대인 관계 유지를 위해서 겉으로 티 내지는 않고, 묵묵히 듣고 가만히 있는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로 인식돼서 대인관계 유지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하는 일이 그다지 즐겁지가 않다. 나의 대인 기피 증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교환 학생 생활을 끝내고 고향에서 바로 정신과를 찾았다. ADHD 관련해서 대강 검색해서 찾아갔는데 소아 정신과였다. 나를 제외하면 모두 어린아이들이었다. 그 정도로 정보 검색 능력이 부족했던 나의 과거의 모습이다. 이미 전에 2번이나 정신과 의사로부터 ADHD 관련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받았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ADHD이다. ADHD가 아니라면 이 불행한 인생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을 수가 없다. ADHD 치료가 효과가 없다면 희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런 간절함으로 내가 왜 ADHD를 의심하는지 의사 선생님께 설명드린 것 같다. 대강 몇 가지 검사를 했다. ADHD가 의심되고, 심한 우울증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미 과거에 했던 검사와 똑같은 검사인데도 과거와 달리 집중력 부분에서 많은 기능이 저하되어 있었다. 덕분에 ADHD 의심 진단은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ADHD 치료가 시작되었다. 


※이 글을 빌려 저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준 글을 작성해 주신 바실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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