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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mita Sep 22. 2024

ADHD를 울게 한 의사의 한 마디

도대체 어떻게 그 정도의 성취를 이뤄낸 거죠?!

매거진 '서울대생 ADHD를 이겨내다'에 요즘 작성하는 글은 약물 치료를 시작했던 수년 전의 기억을 회고하며 작성하는 글입니다. 제가 요즘 좌절감을 느끼며 사는지 걱정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ADHD 치료 이후 비록 우여곡절은 있지만 훨씬 더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매거진 '서울대생 ADHD를 이겨내다'는 일종의 회고록입니다!


콘서타 약물 치료 7일 차에 정신과에 재내원하였다. 콘서타에 선사해 준 기적 같은 결과와 순간에 대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원장님께서는 나의 설명을 들으시면서도 계속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신다. 줄곧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괜히 속으로 주눅 들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여전히 이 분은 날 ADHD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내가 서울대 치대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원장님께서 하신 말씀은 예상을 상당히 많이 벗어나는 것이었다.


"음... 지금 XX 씨께서 말씀하신 내용들 모두 ADHD의 매우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과는 다르게 ADHD 중에서도 심각한 수준이네요. 저는 XX 씨가 서울대 치대생이고 하셔서 ADHD가 있어도 경미한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은근한 충격이었다. ADHD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심각한 수준의 ADHD 정도까지라고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었다. 내 증세가 그렇게까지 심했던 것이었나.. 그런 생각이 들 때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도대체 어떻게 그 정도의 성취를 이뤄내 오신 거죠? 서울대 치대에 동아리 회장에... 대인관계도 크게 안 나쁘신 거 같고요.. 참 신기하네요..."


눈물이 참 없는 나였지만 그 순간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큰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차마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날 처방받은 약물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동아리 OB 모임을 가야 했지만 몸이 너무 피곤해서 잠시 집에서 쉬고 싶었다. 침대에 엎드려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그리고 펑펑 울었다. 그때까지의 인생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발달 장애를 제 때 바로잡지 못해 타인과 다른 뇌 기능을 가지고 살아왔다. 정말이지 그때까지의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었다. 최악이었다. 늘 바뀌려고 했다. 그런데 변하지가 않았다. 남들은 10~20분이면 끝낼 일을 1시간 동안 끙끙대었다. 인강 다운로드 같은 간단한 일도 이해하지 못해 1시간 넘게 매달리곤 했다. 그로 인해서 불안과 우울, 자기 비하와 자기모멸, 혐오를 안고 살아왔다. 충동성과 과잉행동을 제어하지 못해 남들에게 웃긴 사람, 돌아이로 비쳤다. 소위 말하는 돌아이 짓을 하고 난 이후에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자기 비하에 시달렸다. 그런데 다음 날에 내가 또 그러고 있었다.


머릿속에 이해 안 되는 공부, 그냥 무식하게 했었다. 영어 기본 강좌 끝나고 수능 특강, 수능 완성 수업 때는 1시간 20분 동안 자리에 앉아있으면 1시간 동안은 다른 생각을 했다. 선생님의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과학도 정말 싫어했다. 원리를 깨우쳐야 하는 과목인데 강사님의 설명을 들어도 특정 단어만 머릿속에 들어오고 문장 형태로 인식이 안된다. 과학은 내게 지옥의 시간이었다. 그저 문제 풀이만 하면서 문제 풀이의 감을 익히는 훈련을 했었다.


남들과 달랐기에, 남들보다 뒤떨어졌기에 겪어야 했던 고충들은 타인의 시선을 극도로 신경 쓰게 만들었다. 늘 남이 중심이고 남들의 시선에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했었다. 그래서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기 참 어려웠다.


대학 입학 후 1년 동안은 그냥 놀았다. 문제는 2학년부터. 뭔가 인생의 유용한 일들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려 해도 노력이 안된다. 무기력증 게으름 미룸에 시달렸다. 꽂힌 것에는 1차원적으로 집착하지만 뚜렷이 합리적인 이유는 없었다. 책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되니 책상 위에 책들을 치워버린다.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교양 강좌를 들어도 전혀 새로운 지식들로 가득 찬 교수님의 설명은 집중도 인식도 되지 않는다. 깨질 듯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시간만 보낸다. 수업을 아예 듣지 않거나. 과제를 해도 무식하게 하는 거나. 생각해 보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었던 것 같다. 성적은 한 번 잘 받았던 것 같다. 토플도 괜찮게. 토플 3개월 준비했는데 마지막 한 달은 거의 토플 공부를 안 했다. 치료받지 않은 ADHD였던 난 엄청 위급하거나 절박하지 않으면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성적이 올라가니 그 이후로 노력을 할 수 없다. 난 노력하고 싶은데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공부하고 싶고 영어 리스닝도 더 하고 싶은데. 제대로 성취한 게 없는 부끄러운 나날들. 자기 비하와 우울감은 더 심해졌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도대체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이었을까... 내가 이토록 힘든 인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던 나였다. 하지만 치료를 통해 희망을 보았고,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큰 위로를 받았다. ADHD 약물 없이도 치열하게 노력해 오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낸 나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약물 없이도 이렇게 살아왔는데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얼마나 더 좋아질지 설레었다. 콘서타는 운이 좋게도 나에게 제2의 인생을 선사했다. 콘서타 처방을 내려주신 의사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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