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거진 '서울대생 ADHD를 이겨내다'의 최근 글은 ADHD 약물 치료 초반의 기록을 재구성한 회고록입니다! 이 글은 매거진의 전 글 'ADHD를 울게 한 의사의 한 마디' 직후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한 글입니다! 현재 저의 생각과는 다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 당시는 오랜 세월 형성된 부정적 인식 구조가 고쳐지기 전이라 다소 부정적인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매거진에서 연재되는 글을 계속 읽어보시면 제가 어떻게 부정적인 사고관을 개선하고 긍정적인 힘을 길러냈는지도 보실 수 있으십니다. 차후의 글을 기대해 주세요 ㅎㅎ
콘서타의 기적적인 효과를 체감했다. 하지만 그 효과가 계속 지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콘서타를 먹었음에도 브레인 포그 현상이 때로 찾아오기도 했다. 억제되었던 ADHD 증세가 다시 악화되기도 한다. 이유는 크게 2가지였다.
첫째, 약에 대한 내성이 생긴다. 적지 않은 ADHD 약물 후기에서 드러나듯, ADHD 약물의 효과는 특히 초반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내가 더 이상 ADHD가 아닌 일반인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마저 가지게 된다. 하지만 약을 먹을수록 전과 같은 강렬한 약효보다는 잔잔한 효과가 체감된다.
둘째, 반 ADHD적인 환경에 노출되면 다시 ADHD 증세가 악화된다. ADHD 약물은 진통제 같은 역할을 해준다.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을 유발하는 행동을 하면 다시 아파진다. 운동에 의한 아드레날린 분비 등 과잉행동을 유발하는 일을 하거나, 불편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과의 만남 등 편하지 않은 일을 겪으면 약을 먹기 전 극심한 ADHD로 고생했던 나 자신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ADHD 약물을 통해 내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거진 2년 동안 나를 미치게 했던 무기력증이 사라졌다. 만성적인 일 미루기, 심각한 난독, 갑자기 생긴 흥미에 대한 1차원적 집착, 눈치 없는 말, 과잉된 행동, 머릿속 안개가 낀 듯한 비현실감, 부족한 시간관념 등 ADHD 증상들도 전보다 많이 호전되었다.
하지만 가끔 ADHD 약물 치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면 자신감이 위축되고는 한다. 식욕 부진, 성욕 감퇴, 불안 등의 부작용에 고통받기도 한다. 약에 내성이 생기고,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을 때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ADHD의 80%는 불안, 우울과 같은 공존질환을 동반한다. 그리고 상당수는 우울증 상담을 위해 정신과를 방문했다가 ADHD임을 알게 된다. 나 또한 우울증 상담을 위해 정신과 약을 복용받았다.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겉으로 빙빙 도는 기분이었다. 정신과를 방문하고 반년 정도가 지나서야 블로그의 글을 통해 내가 ADHD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기 3개월 정도가 지나서 콘서타를 접하고서야 뚜렷한 약효를 보게 되었다.
ADHD 작가 정지음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ADHD는 우울할 일이 참 많다. 우울증 때문에 ADHD 증상이 심해지고 ADHD가 망친 인생이 날 우울하게 만든다. 하지만 둘은 확실히 다르다. 우울증은 슬프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ADHD는 뭘 하려고 해도 실패와 좌절을 겪는다. 뭘 해도 되지 않는 현실 때문에 우울해진다. 공부를 하려고 해도 지식 습득을 잘 못한다. 나이에 맞지 않는 사고를 하고 집안이 어지럽다. 생각 없이 말해 주변을 혼란스럽게 하고 말은 많은데 영양가가 없어 대화가 피상적이다. 인간관계도 겉으론 괜찮지만 피상적이고 얕은 관계가 되기 쉽다. 잘 잃어버리고 잘 까먹고, 충동적이고 눈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증에 빠진다.
하지만 ADHD이기에 매 순간 행복을 시험받는다. ADHD이기에 인생을 치열하게 살았는지, 혹은 최소한 그런 시도는 했는지 평가받는다. 약물 치료는 본인이 변화하려는 의지가 동반되어야 최고의 효과를 낸다. 내가 ADHD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약물이 내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부작용은 무엇인지,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하고 효과는 어떻게 지속시킬 수 있을지 내 몸과 뇌와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 한다. 10%의 '대박'은 그런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ADHD 약물 효과를 본 이후의 내 심정을 대변해 주는 유튜브 영상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색을 인식하게 된 사람들의 영상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색깔을 보게 된 사람들은 색맹 안경 렌즈에 투과된 색깔 있는 세상을 보고 말을 잇지 못한다. 눈물이 날 것 같다. 굉장하다. 살짝 울 것 같다. 다양한 반응들이 나온다.
주황빛, 붉은빛, 노란빛이 어우러진 도시의 저녁노을 앞에선 색맹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이걸 매일 보고 살았다는 거죠?"
콘서타 복용 후 남들은 이렇게 산다는 사실이 참 부러웠고 허탈했다.
처음에는 부모님을 원망했다. 나의 장애를 혐오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내가 지금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사소한 사실들에 더욱 감사하게 되었다.
온전한 두 눈을 가진 것, 완전한 사지로 땅을 걸어 다니고 물건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임을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받을 때 맵고 달짝지근한 떡볶이 맛을 느낄 수 있는 혀를 가지고 히사이시 조와 비틀스의 선율을 담을 수 있는 귀를 물려받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적임을 깨닫게 되었다.
복잡하게 살지 않을 수 있게 해 준 신께 얼마나 감사한가!
비우기에 더 후련하고 부담 없는 인생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내가 왜 남들보다 못할까, 못 가졌을 까, 못날까, 생각하지 말자
나는 치열하게 살아온 ADHD이다. ADHD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를 온 사람이다. ADHD이기에 나의 모든 평범함을 축복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ADHD여서 참 다행이다.
약물 처방을 위해 정신과를 다시 내원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약 처방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참에 선생님께서 안쓰럽고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힘내세요..
간혹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내 ADHD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아는 전문가이기에 나의 고되었던 삶을 이해하셨던 것 같다. 그랬기에 나의 삶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었나 보다. 참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