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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mita Nov 13. 2024

콘서타 복용 후의 변화 - 장점 편

ADHD 약물, 메틸페니데이트가 내게 준 변화

약물 치료를 시작한 2021년부터 지금까지, 중간 1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ADHD 약물을 복용해 왔다. 아토목세틴은  체감되는 효과가 거의 없어 치료 초반을 제외하고 복용하지 않는다. 메틸페니데이트 계열의 약물은 나와 잘 맞는 편이다. 한동안 콘서타를 복용했다가 메디키넷으로 바꾸었고, 최근에는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바쁜 본과 생활의 특수성 때문에 깨 있는 시간 동안 약효가 지속되도록 오전 메디키넷, 점심 콘서타를 복용한다. 


 '콘서타 매직'에 대한 글에서 ADHD 약물의 효과를 다소 극적으로 묘사해서 오해가 있을 수 있다. ADHD 약물은 복용 초반만큼의 기적적인 약효를 계속 보여주지는 않는다. 인터넷 상 후기를 살펴보면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내성이 생기고, 약물 효과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전만큼의 효능을 느끼진 못한다. 그러나 ADHD 약물 복용 전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차이는 존재한다. 그래서 나름 객관적인 시선에서, 초반에 체감했던, 그리고 현재 체감하고 있는 메틸페니데이트 약물의 효과를 한 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독해 능력이 확실히 많이 올라간다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로다'와 같은 지경에서 벗어난다. 지금은 이 효과가 다소 떨어진 것 같은데, 치료 초반에 문장 단위로 말이 들리고 글이 읽힐 때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 능력을 가진 일반인들이 부럽기도 하다. 웬만한 큰 결심이 아니면 소설을 해독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가장 가지고 싶은 능력이다. 하지만 약물 복용을 통해서 일반인의 7~80% 수준까지는 이 능력을 회복했다고 생각한다. 일단 글을 통해 지식의 습득은 가능해졌지 않은가?


2. 일처리 능력이 많이 올라간다

 동아리 회장까지 했었지만.. 고백한다. 당시의 나는 회장이 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절망적인 일처리 능력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었다. 머릿속에 아이디어는 무수히 팡팡팡 터져 나오는 데 제대로 정리되는 것이 없어서 일을 시작해도 제대로 끝맺는 일이 별로 없었다. 

 콘서타 복용 이후에는 학생회나 동아리에서 일 잘하는 사람으로 신뢰받을 정도로 일처리 능력이 대폭 상승했다. 콘서타만의 효과라고는 보기 어렵다. ADHD 치료 이전에 동아리에서 겪은 온갖 좌절과 실패의 경험이 콘서타를 만나 이룬 결과라고 생각된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일에 대한 많은 고민들과 생각들이 ADHD 약물로 인해 단번에 정리되면서 가능했던 것이다. 일처리 능력 중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정리'하고 '끝맺음'하는 능력이 약물을 통해 크게 향상되었다.  


3.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진심으로 바라고 이루고 싶은 일도 시작, 지속, 집중할 수 없던 나였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었지만 글을 쓰려면 머리가 찢어질 듯 아파서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교환학생 5개월 동안 영어 회화를 연습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거의 노력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영어 실력은 제자리였다. 당시에 유일하게 지속할 수 있던 취미는 달리기였다. 달리기는 머리를 쓸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약물 복용 이후 독해 능력이 향상되고 일처리 능력이 발전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싶은 분야,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콘서타 매직 이후 본과에 들어가기 전 겨울 방학을 아직 잊지 못한다. 일생 처음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기적을 경험했다. 공부를 통해 내용이 이해되는 재미를 난생 최초로 알게 된 기쁨은 아직도 뭐라 형언할 수가 없다. 유튜브를 통해 노자 철학과 반야심경을 필기까지 하면서 즐겁게 공부한 경험은 내 인생 최초의 진정한 '공부'였다.


4. 브레인 포그가 거의 사라지고 많이 차분해진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깨닫게 된 것인데 약물 복용 전에는 '브레인 포그'가 꽤 심했었다. 하지만 콘서타 복용 이후에는 거의 그런 증상을 느끼지 못했다.

 전보다 많이 차분해졌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본과 이후에 나를 처음 본 사람은 '이게 차분해진 거라고?' 의아해 할 수 있지만, 예과 때의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은 '진짜 많이 성숙해졌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덕에 예과 때와 본과 때 인간관계가 꽤 다르다. 예과 때는 나만의 세계가 확고한 괴짜, 감정 조절에 문제 있는 동기여서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하지만 본과 이후로는 더 건강하고 넓은 인간관계가 많이 형성되었다.


5. 내가 싫어하는 일도 어느 정도 참고 할 수 있게 된다

 글 쓰는 일은 사실 고통이다. ADHD 약물이 아니었다면 나는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내가 싫어하는 본과 공부를 이만큼이나마 지속하는 것은 ADHD 약물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6. 전보다 꼼꼼해지고 시간관념이 생긴다

 예전의 심각했던 덜렁거림이 '약간'의 덜렁거림으로 순화되었다. '지금'과 '지금 아님'으로 나뉘는 시간관념도 그 전과 비교하면 꽤 나아진 편이다. 캘린더 앱의 도움이 없다면 인생살이가 훨씬 더 힘들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캘린더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7. 무기력증이 많이 사라지고 의욕이 생긴다

 약물 치료 4년 차인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체감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의 7가지 중에서 역체감이 가장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7번째이다. 중학생 때부터 예과 3학년까지 꽤나 심각한 무기력증을 앓아왔다.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인생이 편안했지만 노력이 필요한 일에는 어김없이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2주, 길게는 한 달까지 공부에 손을 놓는 일이 허다했고, 교환학생을 위한 토플 공부도 3개월 중 마지막 1개월은 거의 하지 못했다. 

 ADHD 약물과 함께라면? 최소한 무기력하지는 않는다. 물론 피곤한 날에는 여느 일반인처럼 일을 할 수가 없지만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날에는 ADHD 약물의 유무가 나의 행동을 결정한다. 약물을 먹으면 해야 할 일 혹은 하고 싶은 취미를 어떻게든 하게 된다. 그런데 약물이 없으면 독서, 영어 공부, 과제 등의 활동을 하지 못한다. 나머지 약효들은 몇 년 지나면 역체감이 점점 덜해지는데, 이 7번째 약효만큼은 여전히 크게 느껴진다. 


8.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약물의 효과는 초반만큼 강렬하지 않다. 하지만 약물을 통해 내가 중증의 ADHD였음을 확신하게 되었고, 내 인생이 얼마나 고되고 치열한 인생이었는지 객관화할 수 있었다. ADHD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성취한 내가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ADHD 기질은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약물 치료 이후에도 본과의 힘든 환경과 만나며 한 때 내 인생을 또 다른 나락에 빠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약물이 있기에 나는 조절할 수 있다. 나에 대한 자부심과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약물이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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