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처해진 환경에 요동치 말고 범사에 감사하는 법을 먼저 연습해야 한다. 나는 내 백성이 사방에 어떤 우겨쌈을 당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길 바란다. 삶에 답답한 일을 당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길 바란다. 내 백성은 어떠한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단다. 설령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을 것이니라. 그러니 너는 항상 나의 죽음을 육신에 짊어지고 살거라. 나의 원하는 바는 너의 인생에 허락된 모든 생사화복 중에 끝가지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릴 줄 아는 신부가 되기를 바란단다.
그대는 세상에서 눈을 떼거라 그 이후에 그대가 마땅히 보야야 할 것을 보아라. 이 세상에는 단 한 가지 이외에는 볼 것이 없다. 그것은 영혼이다. 사람의 영은 온 천하보다 귀하다. 그것을 귀하게 보아라. 그대가 모든 것을 잃어도 사람의 영혼을 구했다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한 것이다.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고 가치 없는 것을 주저치 말고 버려라.
너는 내가 부리는 목자가 되어라 그들의 태반은 그 스스로가 주인이니라.
존재의 참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보이지 않는 그것을 보거라. 참모습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실존하는 영의 세계를 보는 할례 받은 또 다른 눈을 뜨거라. 육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 영원한 것이니라.
묵상이 없이는 감추어진 선과 악을 분간할 수 없다. 말씀에 근거한 깊은 심연의 묵상 속으로 들어가라. 내가 반드시 지혜와 명철의 영으로 너를 만나리라.
내 참 사역자는 환경을 다스리고 정복한다. 그 바람의 기운이 강할수록 네 심령의 불꽃은 더욱 강하게 타느니라. 그대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유를 묻지 말고 감사해라. 가진 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무조건 감사하라. 그렇게 하게 된 이후에야 진실로 그대가 정말 소유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그대는 아무것도 보지 말고 오직 내 손을 잡고 내 얼굴만 보거라 그것이 그대가 할 일이다. 내가 싸울 것이며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주님께서 보시는 눈과 우리들 사람의 보는 눈과는 완전하게 차이가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보시는 눈으로 보아드리는 시야가 있어야 한다. 주님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법을 연습하고 길러야 한다. 이것이 영적인 사고방식을 배우고 훈련하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사람의 속에 선한 것은 없다. 사람의 속에는 거룩함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섬기고 사랑해라.
신속하게 말씀을 읽기 시작해서 그 마음 밭에 복음의 씨를 뿌리거라. 말씀의 씨가 없이는 알곡이 심어지지 않는다. 원수가 틈을 타기 전에 서두르거라. 사람의 마음밭에 무엇을 심는가는 참으로 중요하다. 회개하고 정결한 자의 마음 밭에는 내 천사가 알곡을 심는다. 회개 없이 제 속 사람의 생각과 욕망만 따라가는 자의 황폐한 땅은 원수가 와서 쭉정이 씨를 뿌리고 간다. 어떤 종류의 마음 밭을 가지고 있는지는 각자의 몫이고 선택이다.
네 마음을 따르지 말고 네 영의 선택을 따라 주면 내 마음이 기쁘다.
예배가 시작될 때에는 언제나 영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제사장 역할을 하는 목사가 선두에 선다. 목사의 영이 깨어 있으면 대개 교인들의 영도 깨어 있다. 목사의 영이 졸고 있으면 대개 교인들의 영도 졸고 있다. 목사의 영이 죽어 있으면 대개 교인들의 영도 죽어 있다. 각 교회의 목사가 어떤 제사장의 영을 간직하고 있는지는 정말 중요하다. 교회는 한 지체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도 예배가 성공하고 실패하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성도는 가인의 제단과 아벨의 제단 사이에서 둘 중의 한 제단을 선택해야 한다. 중간은 없다. 한 종이 두 주인의 제단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더 중요한 주인의 영에게 제단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제단 위에 각자의 삶이 번제물이 되어서 바쳐지는 것이다. 말씀과 계명을 지키는 산 믿음의 소유자는 신선하게 산 제물이 된다. 말씀과 계명을 못 지키는 죽은 믿음의 소유자는 죽어 있는 시체 같은 썩은 제물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삶을 산 제물로 드리는 자는 아벨의 제단이 되어 내 아버지께서 흠향할 것이다. 스스로의 삶을 죽은 제물로 드리는 자는 가인의 제단이 되어 내 아버지께서 가증히 여기시고 돌아보지 않으신다.
사랑하는 자여! 잘 기억하라. 예배를 예배답게 만드는 것은 각자의 평상시의 삶이다. 각자의 삶이 가인과 아벨의 제단의 종류를 결정한다. 그위의 제물은 각자의 신앙의 열매이다. 산 믿음의 나무에서 살아있는 신선한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죽어있는 믿음의 나무에서는 아무런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다시 말하건대 참 예배의 시작은 주일날 교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성결함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평생을 성결한 삶인 아벨의 산 제물을 올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썩고 부패한 삶인 가인의 죽은 쓰레기를 올리는 자가 있다. 나는 지금도 아벨의 제단 위에 바쳐진 아벨의 제물만 수락하고 흠향한다. 나는 가인의 제단 위의 제물은 받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은 내게 가중한 것이다. 나는 교회의 규모에서 아벨의 제단을 찾지 않는다. 나는 교회의 건물의 치장에서 아벨의 제단을 찾지 않는다. 나는 헌금 액수에서 아벨의 제단을 찾지 않는다. 나는 교인들의 출석 숫자에서 아벨의 제단을 찾지 않는다. 나는 교회의 수많은 행사와 프로그램에서 내 아들 아벨을 찾지 않는다. 나는 흩뿌려져 피조차 살아서 소리치는 아벨에게서, 살아있어 행하는 믿음을 가진 성도의 산 제사를 찾는다. 죽은 행실로 죽은 제물을 마련하지 말거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는 요한계시록의 일곱 가지 교회의 성품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
고생하는 나의 종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섬광처럼 짧은 고생에는 이미 그들이 눈으로 볼 수 없고 마음으로 상상할 수 없는 영원한 보상과 엄청난 상급들이 준비가 다 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족 없이 영생에 들어가려는 생각이 두 손과 발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려는 생각보다 나으니라. 왜 내가 실족하게 하는 눈을 빼어 내버리라고 하였겠느냐?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지옥은 사람이 살아 있을 당시 생전에 범죄 했었던 그 모든 신체 부위에서 끊임없이 구더기가 나오느니라. 네가 아는 그런 크기의 파리 구더기가 아니다. 사람의 몸을 파먹는 흉측한 크기의 죄악의 구더기들이며, 그것들은 불에 타지도 죽지도 않는단다. 만약 사람이 지옥의 그 고통을 천만 분지 일 정도라도 맛을 보았다면 내가 미리 알려준 그 경고들이 얼마나 진실한 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대충 하나님을 믿고 섬길 때에는 우리의 삶이 참 잠잠하고 평안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섬기려는 굳은 결심을 하고 나면 우리의 삶이 잠잠하지 않고 점점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천국으로 가는 길을 향해서 삶의 태도를 180도 방향 전환을 하고 돌아선 사람을 마귀가 시샘하기 때문이다. 마귀는 그때부터 시련과 고통의 가시를 사용하여 우리를 마구 찔러대는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목회자들도 부양하는 식구가 딸려 있고 생활을 해야 하니 사역의 대가가 필요하다. 다만 각자의 분에 넘치는 대가와 대접을 받지 않고 합당한 선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많이 받은 자는 적게 받은 자와 나누면 된다.
신부들에게!
충성된 나의 신부여, 그대는 결코 지치지 말라. 그대는 지금 사람의 숫자의 가치관을 바꾸는 훈련을 하고 있다. 여호와의 숫자는 질에 있고 결코 양에 있지 않다. 사람이 많아서, 화살촉이 조금 길다고 화살이 잘 날아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람이 적어서 화살촉이 짧다고 화살이 잘 날아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장군이 쏘아 올린 화살의 승부는 화살촉의 길이에 있지 않다. 나의 영적인 신부들을 단장시키는 수업의 한 학기의 획이 마쳐질 때마다 천국으로 화살을 한 개씩 쏘는 것이 된다. 매 화살에 천국의 종이 한 번씩 울리는 것을 그대는 아느냐? 전통은 그대에게 있고 과녁은 나에게 있다. 영걸이 쏘아 올린 화살은 과녁에 꽂히는 것이지 결코 허공에 꽂히지 않는다. 그대가 화살을 쏠 때에 내 나라를 향해서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 바쳐서 쏘아라. 한번 그대의 시위를 떠난 화살은 이제는 내 것이니 잊어버리거라. 종은 주인의 일에 책임지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여 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필한 후에 무익한 종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를 했다고 생각하고 겸손하고 잠잠히 있으면 된다. 그것이 그대에게 면류관의 아름다운 보석이 될 것이다.
나를 간절히 찾는 신부들은 스스로를 겸손하게 관리하며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만이 나의 신부로 추수가 될 것이다. 그러니 너는 교만을 금하고 완전하신 내 아버지 앞에서 항상 공의롭게 행하거라. 그리하면 환란의 날 전에 네가 신부 추수의 취함을 얻으리라. 나의 신부야! 너는 끝까지 세상으로부터 절개를 지키고 나를 사랑하거라. 내가 반드시 내 신부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돈마귀를 조심해라. 돈 마귀에게 젊은 자도 넘어지고 늙은 자도 넘어진다. 천한 자도 무릎 꿇고 귀한 자도 무릎을 꿇는다. 그 짐승에게 사람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 올 세대까지도 무릎을 꿇을 것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돈 마귀를 쫓아서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효하구나. 사람들은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정작 알지 못한단다.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돈 마귀인 우상의 영인 그 짐승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할 것이다. 누구든지 그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할 것이다. 그 표가 곧 짐승의 이름이며 그 이름은 수를 뜻할 것이다. 성경 말씀의 지혜가 여기 있느니라. 총명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면 알 것이다. 짐승의 수가 여섯을 세 개 나란히 배열한 숫자이다. 그 수는 철저한 인본주의에 근거한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육이니라. 극단의 인본주의가 터질 듯이 팽배할 때에 돌연히 이 모든 일이 아주 신속하게 일어날 것이다. 거룩함을 모르는 자들은 사람이나 타락한 천사나 다 영적인 장님들이다. 장님 마귀가 돈에 눈이 멀어버린 장님된 인간들을 저 있는 곳인 유황 개천에 초대하고 속여서 끌고 가는 것이다.
나는 내 신부가 내 계명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이 참으로 흐뭇하단다. 이것이 너에게 상이 될 것이다. 우리의 전쟁은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하는 것이니라. 첫째 하늘은 인간 창조 이후에 인간에게 허락해 주신 그 축복이 거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둘째 하늘은 영들의 세계이니 사람이 혼자서는 그 영적 전투에 절대로 이길 수가 없는 장소이다. 내 아버지는 모든 피조물을 서열과 질서 안에서 창조하셨느니라. 너는 궁창세계의 전투에 임하기 전에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었느냐? 전신 갑주를 입기 전에는 원수의 영을 절대 대적할 수 없단다. 이 여섯 가지의 무장을 기억해라.
첫째, 진리로 너의 허리띠를 띠거라. 진리는 나다. 나를 너의 허리에 띠처럼 두르라는 말이다.
둘째, 그 띠의 중앙에 의의 흉배를 붙이거라. 너의 의는 나를 사랑하는 네 속의 불씨와 같이 타는 열정이다. 각자의 의는 각자의 그릇에 따라 다르다.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참다운 의의 흉배가 무엇인지 깨달아 알고 있어야 할지니라. 그러니 첫째 하늘에서 인간 스스로가 적당히 믿는 견고한 자신의 의나 생각은 둘째 하늘에서 거추장스러우니 버리거라.
셋째, 평안을 알리는 복음의 신발을 신거라. 네가 복음을 선포할 때에 내가 주는 평안의 신발을 신어야만 내 영이 너를 마땅히 나아갈 길로 인도할 것이다.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내어처진 어둠의 영들과 간음하며 스스로 큰 거인으로 변질된 영들이 되어 있다. 그들은 벗은 발로 돈과 권세에 취해서 내 영광을 가로채며 살고 있단다. 이미 계수된 날이 차면 원수가 낚아채듯이 그들의 영을 멸망의 지옥으로 끌고 가느니라. 그들은 그 순간조차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 당도할 지옥은 처참하도다.
넷째,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한다. 이 믿음은 너를 향한 내 목숨을 바친 나의 사랑이다. 나의 사랑을 꼭 믿어라. 이 목숨을 바친 신뢰에 대한 너의 믿음이 결여되면 화인이 될 독이 묻은 원수의 불화살을 방패로 절대 막을 수가 없다.
다섯째, 구원의 투구를 쓰라. 내 보혈의 피가 네 이마에 인이 되어 투구가 될 것이다.
여섯째, 성령의 검인 내 아버지의 말씀을 가지거라. 말씀이 있어야 원수를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그 말씀을 반드시 행하거라. 그것이 너의 무기이다. 말씀 자체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네 신체 안에 녹아있어야 한다. 이 말의 뜻은 네가 말씀을 많이 실천할수록 그 검이 네 신체의 일부분처럼 되어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느니라. 기억하거라. 각 신부의 성품이 다르고 강한 점과 약한 점이 다르므로 모두의 전신갑주는 다 다르다. 모든 일을 다하고 남는 시간에 성경을 읽으려고 하면 안 된다. 기억하라. 하루에 성경 읽는 시간을 따로 정하고 그 시간을 맞추려면 치열한 영적 전쟁과 희생을 치러야만 한단다. 나를 진정 마음 깊이 품고 가는 자는 그 품 가운데 썩지 않는 몰약 향낭을 품고 사는 자란다. 나도 기름의 그윽한 기도 향기를 토하는 자들이다. 꿀송이 같은 성경 말씀의 꿀을 먹거라.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시어 성령에 취하거라.
사람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할지라도 그 모든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란다. 너희 한평생 사는 날이 신속히 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느니라. 그러니 해 아래서 행하는 그 어떠한 일도 다 헛되어서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단다. 이 땅의 모든 것들은 불에 살라지기 위해서 감추어진 것들이니, 장차 불 사라질 헛된 것들밖에 없는 것을 기억하거라. 쓰레기통같이 더럽고 추한 이 세상에서 내 눈에 비친 나의 신부들은 모두가 풀꽃과 같단다. 그대는 그 안에서 내게 절개를 지켜라. 성결한 삶을 살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내 아버지를 보지 못한다. 그대의 썩을 혼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을 순간이 올 것이다. 그대의 죽을 육신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다. 바로 그때에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될 것이니라. 항상 내 왕국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거라. 그대의 수고는 내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세상 만물이나 사건들을 향하여 빛의 자녀답게 처신하고 결정하고 살아라. 어둠과 타협하지도 말고 조금도 용납하지도 말아라. 나는 오직 그대의 상을 위해서만 그대의 삶에 내려지는 환란과 고통을 허락할 뿐이니라. 이 진리를 흔들리지 않고 확고하게 아는 것이 그대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