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쉬어야겠다, 일단 일에서 나를 분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천하기란 사실 쉽지 않았다.
관건은 과연 6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가 나올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6개월'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공무원 조직은 최소 6개월 이상의 휴직이어야만 대체 인력을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그보다 짧은 기간의 진단서는 병가 처리되어 내 자리는 공석이 될 뿐이고 그렇게 되면 남은 인원이 내 업무를 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내가 지금 죽겠는데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직장을 영 관둘 것도 아니고 다시 돌아가서 얼굴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나로 인해 피해를 끼치는 건 이 조직의 특성상 안 되는 일이었다. 낙인이 찍히는 건 물론이거니와 직장생활에 큰 영향을 줄 게 뻔했다.
그런데 몇 개월 짜리인지는 고사하고 일단 진단서가 나와야 다음이 있을 터인데, 진전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내 상황을 설명하고 의사가 납득한들 내가 당장 받을 수 있는 건 소견서와 상급병원 진료의뢰서뿐이었고 진단서는 '종합심리검사(풀 배터리 검사)'를 받은 뒤 그 결과에 근거해 써줄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내 상태는 심각했고 도저히 출근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연가와 병가는 이미 다 써버려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제가 사직서라도 내길 바라세요? 전 지금 출근할 수가 없어요. 이대로라면 결근을 하든 사직을 하든 해야 한다고요."
무슨 병이든 검사가 선행되고 그 결과에 기반하여 진단서가 나옴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위험했고 간절했다.
그러자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왜 결근하면 안 되나요? 진단서가 필요한 건 본인이 아니라 행정절차 때문 아닌가요? 소견서도 써줄 수 있고 상급병원 진료의뢰서도 써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본인이 가장 힘든데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쉬어야죠. 왜 결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나요? 본인을 가장 먼저 생각하세요."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느낌.
나는 이렇게나 아픈데도 여전히 후임을 생각하고 조직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날 이리 만든 조직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소견서와 상급병원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사무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