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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Jun 14. 2024

변명

글에 관한


취미로 그림그리기가 익숙해질 때 즈음 가장 좋았던 것은, 광경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였다. 아름다운 것은 더 아름다워보이고, 좋은 사람은 더 좋아보이는, 평소라면 지나쳤을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자주 이뻐보이는 관점이다. 그림이 좋아서, 그리는 게 좋아서, 색이 좋아서도 아닌 '전혀 몰랐던' 점이었기에 그 발견의 기쁨이 더욱 컸다. 그림을 그리기 전부터 더 익숙하게 하고 있던 취미인 글쓰기의 장점도 비슷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지만, 쓰기를 시작하니 일상의 많은 순간들, 나의 생각, 너의 언어들, 우리의 생각들 다양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찰나보다는 조금 더 세세하게 쓰고싶어지는 생각습관이 생겼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머물렀던 대상이 주로 내눈에 아름다운 것들이었던 것처럼, 글도 그랬다. 신박한 것, 꼭 기억하고 싶게 반짝이는 것, 혹은 이건 꼭 글로 정리해보고 싶은 고집섞인 생각 같은 것들 말이다.


힘겨운 순간, 어려운 마음을 그 순간에 터뜨리듯 쓰는 건 멀리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런 마음이나 사건이 섞인 글을 쓰더라도, 그 일이 한참이나 지나야지 비로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의 장점을 감정의 해소나 정화 등을 드는데, 나는 잘못하면 오히려 더 몰두하게되서 글을 쓰면서도, 쓰고나서도 마음이 석연찮고 가라앉는 탓이었다. 반면에, 스치듯 꼭 쓰고 싶은 좋은 찰나의 순간들은 메모장에 쌓여갔다.


어떤 사람들은 글쓰기가 좋지만 소재가 없어서 고민이라고 하던데, 나는 소재가 넘쳐나는데 일일히 쓰지 못해 아쉬움 뿐이다. 나에게 그림에 비해 글은 접근성도 훨씬 좋은 편인데, 생각대로 마음먹은만큼의 속도대로 글을 써내려가는 일상도 기쁘고 만족스러울 것이다.


한편 그림이나 글이나 좋아하는 마음과 애정에 비해 완성하고 났을 때의 성취감이나 기쁨, 희열은 옅다. 한 글을 완성하는 데 며칠은 당연하고 때론 몇달이 걸리며, 한 그림을 완성하는데는 기본적으로 몇 주, 몇달이 걸리는데 한타임에 고작 50분인 학원강의를 끝냈을 때의 마음과 너무 비교가 된다.


단순히 돈이냐 취미생활이냐의 차이는 아닌듯 하다. 학생시절이나, 자원활동을 하면서 종종 발표를 맡고 그 발표를 끝냈을 때의 희열, 활동단체나 일터에서 몇달간 고심하고 고생하며 준비했던 특별이벤트를 끝냈을 때의 희열은, 최소한 나에게 글과 관련해선 없다. 목감기에 걸려 쇳소리를 내면서도 말과 표정과 손 즉, 몸으로 하는 일을 끝냈을 때 분명 육체적 피곤함은 있겠지만 분명 에너지를 얻었다.  


오해마시길, 그렇다고 불꽃튀듯 쌈빡나는 희열이 없다고 글이나 그림이 싫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고보면 나는 말도, 글도 좋아하는 언어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말로 하는 일과, 글로 하는 일의 매력은 굉장히 하늘과 땅차이라 쓰고 보니 새삼 낯설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한편 나는 육아에 본분을 지키기로 한 이상, 출퇴근이나 실제적인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외부활동을 마음먹고 제대로 하지 않는 한, 말로 희열을 느끼는 일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어려운 와중에도 어쩐지 나한테는 자꾸 조용히 쓸수 있는 글과 관련한 일이 생기는데, 쓰고도 당췌 일을 한 기분이 들지 않아서 여전히 아쉽긴 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mbti 유형중 90% 이상은 I로 보는 데 I 45% : E 55% 비율의 한끗차이를 만들어내는 성향이 여기서 나오는 모양이다.

글도, 말도 좋은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어떤 삶을 살고 싶다는 기준이 있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나. 근데, 일단 자주 쓰고 보자.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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