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하고도 한두살즘 성당에서 교리교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 교사회는 주로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이었고, 나는 그중에 딱 중간 정도의 나이와 짬바를 담당하고 있는 어떤 마리아였다. 그 당시 교사회활동은 나에게 기쁨과 책임감 자부심마저 주는 활동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피곤한 인간관계와 일에, 자주 피곤해서 억지로 가기도 하는 곳이었다.
그러다 중간에 들어온 30대 초반 언니선생님(지금의 나보다 어린)과 친해졌고, 알고 보니 분위기메이커에 인싸 같은 분이었다. 정확히 나는 정반대의 부류였는데, 붙어있다 보니 재미도 있었지만 가끔 저런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소리를 듣기도 했다.
저기서의 썸이란 이성 간 '쌍방에 뭔가 있거나, 실제로 잘되거나, 잘 돼 가려는 어쨌든 꽁냥 거리는' 마음이나 모양새를 보통 뜻하지만, 상황상 화살표가 엇나가는 일방적인 애정도 포함하는 말이었다. 그 당시 언니의 나이보다 많아진 지금의 내가 되고 보니, 그분이 저리 말했던 이유도 납득이 갔다.
지금생각하면 젊다 못해 거의 애기들 급으로 구성된 어린 남녀가 모여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그곳에선 정말 한결같이 늘! '누가 누굴 좋아한다.', '예전에 쟤가 걔를 좋아했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신기하게도, 적극적이고 시끄러운 사람은 물론, 소극적이고 조용히 열심인 사람도 그랬다. 외부에 애인이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그랬을 거다. 그리고 하나같이 자기 안에 그런 마음이 생기면 꼭 주변에 그걸 알리고 고백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소문이 계속 나는 걸 보면.
거기서 나는 '유일하게 정말, 아무것도 소문 없는' 어떤 마리아였다. 일은 그런대로 열심히 하고, 가끔 열심히도 놀지만, 어쩐지 회식은 가기 싫어하고, 두루두루 깊은 관계도 피하고 싶은 그런 마리아. 주로 조용하고 진지한 역할을 하지만, 가끔 개그 욕심을 부리는 마리아.
하필 서른여섯인 지금와서, 그때 좀 가볍게 애처럼 재밌게 좀 살걸. 나도 10대의 재미있던 나처럼 소문이 나거나 말거나 냅다 고백하고, 속닥거리고, 웃거나 울기도 하고 그렇게 단순하게 살아볼걸, 한다. 7살부터 17살까지 나는 한 번도 누굴 안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수능에 매진해야 하던 시기는 좋아할 남자가 없으면 심지어 학교 선생님이라도 좋아하고야 말았으니까.
반면 정확히 스물부터 넷까지의 인생의 황금기의 나는, 쓸데없이 진지하고 무거웠다. 오히려 누굴 좋아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들이 꽤나 유치했다. 정확히는 그런 마음보다, 소문까지 나는 그런 노닥거리들이 그랬다. 왜 이렇게 말하냐면, 속으로 생각했을 뿐 단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음이다. 그 조차 거짓인 게, 같은 활동사람들에게 함구했을 뿐, 소속은 없지만 같은 성당을 다니는 친구들에게만 한 번쯤 말했다. 한 번쯤이라고 말한 것도 이유가 있는 게, 누굴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던 게 비단 한 번이 아니었으니까. 심각한 마음은 아니고, 충분히 컨트롤이 될 만큼 순간적으로 스치듯 들던 마음이었지만, 어쨌든 있었다.
이제 와서 그 의미 없는 계보를 떠올려보니, 결단코 나란 마리아가 좋아할 것 같지 않은 의외의 인물들이었다. 이를테면 1.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린 날라리 같던 동생, 2. 나보다 한 살 어린, 더 날라리였고, 내가 엄청 놀렸던 남자애, 3. 내가 '아니 그 쌤(오빤데 오빠라고 끝까지 한 번도 안 한 내자신)이 왜 잘생겼어?'라고 말했고, 한 때 내 친구가 좋아했던 나보다 한 살 많은 인기남, 4.(세상에, 세 명이 끝이 아니다.) 누가 봐도 나랑 앙숙이었던, 누구라도 안 좋아할 것 같은 두 살 많은 재수 없는 2살 위 형제님.
나란 사람이란 (후).
생각해 보면 넷 다 잠시 마음이 동했던 데 공통점이 있었다. '반전'. 그게 이유였다. 좋아하는 마음이 약했든 잠깐이었든, 어떤 이유 든 간에 이렇게 스쳐간 인간이 많은 마리아였다. 내 안목과 진실 자체가 반전이었는데, 해연이는 어떻게 썸이 하나도 없었냐니. 나는 속으로 엄청 찔렸는데, 겉으로는 진짜 진지하게 '그러게요' 하고 말았을 거다. 으, 진짜 재미없어.
어쨌거나 저 위에 스쳐간 4명의 형제들이 잠깐 동했던 마음이지만, 그중에 마지막 사람은, 아닌 중에 가장 반전 중에 반전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그 형제가 순간적으로 멋있어 보일 때 즘 뜨거운감자 김씨의 '고백' 이 유행했다. 그 노래가 나올 때마다 그때 혼자만 알던 그때의 내가 생각나는 것이다.
출처.네이버
이 노래가 나오면 떠오르는 그분 얘길 더 해보면, 야무진 능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기나 후배 형제들에 비해 그도 아무런 썸은커녕, 안티나 애증을 한 몸에 받는 많은 형제였다. 자매들 사이에서 얘기가 오르내릴 때 우스갯소리로 그의 외모나 승질머리들이 나오는 사람. 대단하고 중요한 인물이지만 왠지 동정도 가는, 그러다가 기가 막히게 버럭이 나오면 정확히 그 인정과 얄팍한 동정마저도 싹 가시게 하는 재수 없는 형제였다.
스쳐간 네 형제들 중에 앞3인은 웃고 놀리거나 친해진 포인트가 있었던 반면, 이 사람과는 전혀 그런 것도 없었다. 어느 순간 이 사람만이 가진 반전 매력을 느껴버린 것, 그게 끝이었다. 이를테면, 목소리가 얼굴과 진짜 안 어울리게 좋다던가. 얼굴을 안 보고 전화로 받으면 그 목소리가 더 좋다던가. 그 재수 없는 인간이 그 좋은 목소리로 잘 알려주면, 더 반전급으로 친절하고 다정하게 느껴진다던가 그런 거였다.
그런 점들이 순간적으로 진하게 느껴지자, 나는 내 자신부터 낯설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쳤다 미쳤어'를 속으로 외쳐재끼고 있을 때 즘, 뜨거운 감자 김C의 '고백'이 유행했다. 그 노래를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거리나 라디오에서 자주 들리고, 10년도 넘은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러운 느낌이 들질 않는 걸 보면 꽤 인기곡이었고, 명곡인가보다.
꼭 고백하지 않아도, 누굴 좋아하게 되면 그것 자체를 참 즐겼었다 나는. 노래, '김 씨의 고백'에서 들리는 '경쾌'한 멜로디와, 노래에만 했을 뿐 끝내 하지 못한 듯한 '고백'이. 나의, 차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슬플 정돈 아니었는데, 좋은 마음이 신나고 혼자서만큼은 몰랑몰랑했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앞서 말했지만, 지독하게 깊이 들어가지 않았던 잠시의 마음이었기에 지금 그 형제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라느니 같은 생각이 전혀 아님을 역시 고백한다. 다만 지금도 가끔 들리는 김씨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말없이 좋아할 건 다 좋아했던 내가 생각나는 걸 고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