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수능날이다. 2024년의.
내가 수능 보던 날은 2007년 11월이었는데, 수능한파라는 말에 예외는 없이 춥고 눈이 많이 왔었다. 그 전날도, 전에 전날도 추워서 떨고 긴장되는 중에 친구들과 오들오들 떨면서도 팔짱을 끼고 수능을 보게 될 학교에 먼저 가보았었다.
역시 수능 당일은 추웠다. 그리고 따뜻도 했다.
낯선 남의 학교로 시험을 보러 갔는데 그 입구에 각 학교에서 자기 학교학생들을 응원하러 온 선생님과 후배들이 있던 부스의 기억 때문이다.
그때 계셨던 우리 학교 선생님은 고3 담임 중 어떤 인기 많은 영어선생님이었는데, 나랑은 어쩐지 먼 그런 선생님이었다. 그래도 같은 문과반 라인의 옆반 선생님이었고, 0교시 수업때 봬서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치만 고3이라는 특수성이, 그 당시 고3의 수업을 맡아주셨던 모든 선생님들과 학생들인 우리는 알지 못해도 아는 그런 이름 모를 친숙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다른 학교에, 같은 학교와 수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어서 분명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그선생님에게는 잠깐 아는 얼굴이었을 나도 마치 오래 알고 보던 아이처럼 친숙한 듯 무심하게 웃으며 응원해 주시던 안 친한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식으로 반갑고 따뜻하고 감사하고 애틋했던 그날의 마음과 내음과, 공기가 떠올랐다.
수능을 치르고 멀지 않은 다음 해에 대학 캠퍼스에서 맞이했던, 처음 다시 만난 수능날은 마음이 징그러울 만큼 이상했었다. 1년이 이렇게 빠른 시간이었나 싶고, 나까지 긴장되는 그런 마음. 수능이 끝나는 그 시간까지는 어디서든 조용히 있어야 될 것 같은 그런 마음이었다. 그리고 수능이 끝날 시각이 되니, 시험결과와 상관없이 저물어 가는 하늘과 더불어 나까지 헛헛해지는 그 마음까지 고스란히 재현됐다.
몇 년 간은 그렇게 수능날이 이상도 하다가, 살다 보니 한동안은 아무렇지도 않아 졌다가, 올 수능이 내일로 왔는데 괜스레 떠올리는 이유는 수능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진한 기억 때문이기도 할 거고, 올 수능 날씨는 그 전의 것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탓이기도 할 거다.
한편, 수능을 치는 가장 일반적인 나이가 한국나이로 19세라 쳤을 때, 수능과 관계된 그들과 나의 나이차(18살 차이)에 비해 내가 키우는 아이(12살 차이)와의 나이차가 덜 나는 정도가 되었다. 수능을 보던 그날이 '엊그제'라고 하기엔 꽤나 멀어진 것이다.
이 시대 모든 부모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나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마치 수능이 모든 공부의 다인 것인 양 목표를 두고 키우지는 않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수능날이 나 때만큼이나 긴장되는 마음은 아니고, 만약 우리 아이가 커서 수능을 본다 하더라도 역시 나 때만큼이나 엄청나게 대단한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도 아닐듯하다.
그래도 역시나 수능이라는 큰 시험이라는 이미지와 추억이 있으니까, 그것을 내가 키운 아이가 치른다는 것에서 일종의 감격 같은 감동에 엄마인 나는 혼자 허우적거리고는 있을 것 같다.
수능, 그리고 대학을 위해 달려왔던 무수한 공부의 시간들은 치열하고, 무섭고, 힘들고, 아득했으며, 꽤 싫기도 했었다. 그래도 조금 본격적으로 수능을 위해 달렸던 고등 3년 동안은 의외로 길고 어려워 보였던 공부 시간을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했던 것이 추억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긴장과 떨림의 표본인 수능 당일에는 전혀 없을 것 같던, 처음 느끼는 따뜻함이 있지 않았던가.
여전히 수능은 대한민국에서 큰 시험이다. 그런데 나도 일터에서 조차 고등부를 떠난 지 오래일뿐더러 현재의 수능이 우리, 혹은 그 전 세대만큼의 영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수능이 다가온다며, 인터넷 기사에는 절에서 절을 올리고 있는 수험생의 할머니들, 수능날의 날씨가 어쩌니 저쩌니 말해주는 날씨뉴스들이 1면을 채워주고 있다. 이걸 보면 여전히 크긴 큰 시험인 듯하다.
수능의 19세를 넘어서도 어쩐지 긴장되고, 마치 작년의 일인 것처럼 떨리던 20대 정도는 조금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수능날에 느꼈던 찰나의 따뜻함, 수능의 날씨 같은 게 더 머리에 맴도는 걸 보면 나도 이제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수능을 치르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 안에 치열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겠지만, 나는 어쩐지 이것이,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기회의 좋은 장이 되길 바라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따뜻한 시간도 남기도 하는 그런 순간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