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을 할 때면 노동요를 틀어 놓곤 하는데, 노래는 주로 국내 아이돌이나 힙합 가수들의 저세상 에너지를 뿜어주는 곡들이었다. f(x)의 hot summer가 그중의 한곡이었음은 아이가 가사를 불러 주었을 때 알았다. 일부러 이 곡을 튼 적은 몇 번 없는데, 7살 아이가 가사를 읊는 것을 보니 여름의 알고리즘을 따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지간히 들은 모양이었다.
한편, 얼마 전 유재석의 놀면뭐하니에서 내 세대(?) 보다 살짝 동생급 아이돌인 샤이니편이 방영되었다. 지금 10-20대 아이돌을 기준으로 보면 샤이니는 꽤나 선배격일거다. 샤이니의 최고령인 온유가 나와(만 35) 동갑인 것만 봐도 그렇다. 아무래도 오빠라고 할 수 없는 그들을, 지오디나 신화처럼, 하물며 빅뱅만큼도 대세에 힘입어 열광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선호하는 그룹이었다.
내심 오빠라고 하고 싶을 만큼 좋아라 하면서도, 나보다 어린 분들이라 처세 같단 마음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함부로 마음껏 좋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샤이니는 아이돌도 이제 나보다 어려지는구나를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아이돌이었다.
이름부터 음색과 외모까지 극호감형인 (동갑이니까 내 맘대로 친구라고 하고 다님) 온유와, 너무나도 오빠라고 하고 싶고, 호수 같은 눈동자에 빠져들고 싶던 민호는 실제로 만나면 눈도 못 쳐다볼 것 같은 이상형 같은 멤버였다. 두 사람을 특히 좋아했지만, 모두가 호감형이었다. 샤이니가 한창 활동 당시 방송스텝으로 일하고 있던 친구를 친구로 둔 내 친구에게 실제로 든 미담으로 그들의 사려 깊은 언행까지 들었겠다, 나 홀로 그들과의 신뢰는 두터웠다. 샤이니는 내게, 대놓고 끼는 결혼반지 같은 보석이 아니라, 그냥 마음속 작은 보석함에 모셔둔 진주귀고리 같은 존재였다.
그러다 벌써 7년, 샤이니 종현이 세상을 등진 햇수였다.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을 포함한 어떤 일반인들의 자살소식이 잦아진 지 오래였지만, 그중에 충격적이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중에 한 명이 샤이니 종현이었다. 샤이니는 우리나라에서 아이돌로 정상을 찍은 그룹이었다. 팬덤도 상당했을 거고, 무엇보다 불호가 없는 느낌의 그룹이라 나처럼 샤이니를 그저 호감의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상당했을 거였다. 가짜뉴스이길 바랐으나, 일일이 기사를 찾아보지 않아도 내가 샤이니의 공식 팬이 아님에도, 오랫동안 비보의 슬픈 공기는 휴대폰과, TV와, 인터넷을 넘어 마른땅을 축축하게 잠식했다.
이 당시 나의 먹먹함은 가늠이 되는 정도였지만, 별이 된 종현과 남은 샤이니들과 가족, 팬들, 동료와 지인들의 슬픔은 얼마만큼 이었을지 나는 감히 가늠하지 못한다. 아마 그 슬픔은 그들 스스로도 측정하지 못하지 않을까. 이럴 때마다 할 수 있는 건 이미 떠난 사람이 등진 그곳에서는 조금 편안하길, 남아 있는 사람들이 꼭 일어날 수 있길 바라는, 누구한테 비는지 모르겠는 비굴한 기도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잊고 있던 샤이니, 아니 그의 비보. 그들은 조금씩 일어서는 듯했다. 종현의 죽음 이후로 샤이니에 대한 팬심이 커진 것도, 던 것도, 달라진 것도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활동을 해가는 그들을 보며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안심도 응원도 했을 것이다.
한 멤버가 세상을 등진 그룹의 노래는 한동안 라디오에서 쉽게 들을 수 없다. 이 때는 어떤 노래로도 그 누구도, 누구에게도 위로라는 걸 함부로 할 수 없는 시간이니까. 하물며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그들을 떠올리려는 시간조차 가식과 사치로 느껴질 수 있는 시간이니까. 라디오도 아닌 나 혼자 있는 집에서도 샤이니의 노래는 함부로 찾아보지도, 재생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놀면 뭐 하니에서 4인 체제로 무대에 오른 샤이니가 처음 보여준 곡은 셜록이었다. 앞서 밝혔지만, 애초에 지독한 팬정도는 아니었기에 솔직히 그 무대에서 종현의 빈자리는 어렴풋이 느껴졌지만 그의 파트가 어딘지 몰라서, 무대가 허술함이나 허전함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이 정도까지 이들이 춤, 노래, 랩 파트 구분 없이 완벽한 실력의 멤버들이었구나 싶어 종현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는 게 약간 미안했다.
샤이니의 원래 팬들에 의하면 이들은 원래부터 무대에서 폭발적 열성이 넘치는 그룹이라고 하더라. 그러나 이날 내가 보기엔 유독 이 무대가 종현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가 아닌, '종현의 몫까지 더욱 힘을 보태 해내려는' 모든 샤이니들의 독기로 느껴졌다. 이 정도 경력과 실력이면 오히려 힘을 빼고 추고 노래를 불러도 멋이 나는 짬일건데, 지금 막 떠오른 수준급 아이돌처럼 열을 더하고, 뼈를 갈아서 샤이니만의 무대를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노래고, 심지어 신나는 멜로딘데 어쩐지 신날 수 않고 먹먹한 채로 화면을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모두가 모든 자기 파트를 잘 불러서 도대체 어디가 종현파트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멤버들이 나눠가진 종현파트를 찾아봤는데, 태민, 민호, 키, 온유 모두가 하나같이 샤이니로 빛나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내 playlist에는 셜록을 대표로 몇 가지 샤이니 노래들이 다시 등장했다. 샤이니 노래에도, 에프엑스의 노래에도 대표곡들은 주로 에너지 넘치는 밝은 노래들이 주를 이뤘다. 들을 때마다 일말의 먹먹함을 지울 순 없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 노래들을 막거나 멈추고는 싶지 않았다. 이 곡들이 나올 때마다 매번 조금은 먹먹하지만, 왜 먹먹한 지를 어린 아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할 수도 없었지만 최소한 지금 아무 말은 없이 노래자체를 그대로 우리 둘이 듣고 있었다.
나는 잘 알지 못하는 故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서는 정작 아무렇지 않지만, 윗세대들이 특히 그리는 그들의 정서도 가끔 떠올리는 것처럼, 현재 7살 정도의 아이들은 어떨까 미래를 떠올려 보았다. 누군가의, 이르거나 자발적 죽음을 모르는 이들이, 성장해서는 부모가 일부러 말해주진 않았던 일종의 금기 같던 사실들도 알게 되고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조금은 하게 될까.
샤이니의 노래와 무대를 보며 궁금해서 프로필을 찾아봤는데, 누군가의 이름에만 붙는 '향년'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슬프고 낯설기는 처음이었다. 7년이 더 흐른대도 낯섦이 익숙함이 되진 않겠지만, 7년이 지나도 샤이니의 노래는 익숙한 채로 살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