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결혼이 나를 압도한 이유는, 그것이 내가 누군가로부터 격하게 사랑받고 있다는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한순간의 착각이라 해도, 나중에 오판으로 결론 난다 해도 말이다. 100가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결혼의 불리함과 비합리성을 설득시킨다 해도, 망할 줄 알면서도 뛰어드는 어떤 맹목적인 마음에, 나는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귀한 찰나를 본다.
임경선 <평범한 결혼생활>중 p. 87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 생각 따윈 필요 없이 그냥 보기만 해도 나는 불합리한 그 길에 뛰어들었다. 그곳이 내 눈과 날개를 불타게 하는 것임에도 그저 좋은 빛만 보고 불은 알고도 무시한 그곳으로. 마치 한 마리 무모한 불나방이었다. 결혼을 결심하던 28살의 나는.
좋은 것을 넘어서 반짝이는 빛은 당연히 알았지만, 뜨거운 불을 아주 몰랐던 것도 아니다. 심지어 나는 이혼가정 자녀로 결혼생활에 대해 엄청난 기대나, 환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나를 더 잘 갈고닦을 자신이, 결혼 생활을 조심스럽고도 무던하게 해낼 자신이 있었다고나 할까. 심지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나는 가족복지를 전공한 사람이었다. 얕긴 했지만 가톨릭과 철학의 각종 좋은 이념들만 쏙쏙 빨아들이며 정신적으로 단련된 사람이기도 했다(고 생각 했다). 사랑과 평화의 아이콘으로 거듭날 자신이 있었다.
지금 보니 그 자신은 자만이었을 수도 있겠다. 결혼 후로 나는 빛도 많이 보지만, 애석하게도 나를 태워 죽일 것 같은 불도 자주 본다. 그렇다고 피 터지게 싸운다는 표현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갈등을 두려워하는 내 자아가 아직 불에 맞서는 거친 물을 매번 뿌리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전자레인지나, 찜통에서 빠르게 쪄진 수분 가득 물 고구마가 아니라, 완전히 활활 타오르는 장작 불구덩이 안에서 포일에 팽팽하게 둘러싸여 익어가는 고급 군고구마가 되어 가는 중이다. 구울 때는 귀찮고, 기다림도 길지만 맛은 일인자인 비싸고 맛있는 불 고구마.
출처. Outdoornews
임경선 작가님의 평범한 결혼생활을 읽으며 즐겁고 행복했다. 요즘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결혼에 관한 책들을 접하고 있는데 어떤 책에서나 저마다의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어쩌다 보니 이혼이나 결혼을 부정적으로 대놓고 야기하는 책도 있었고, 바람직한 결혼생활을 조언하는 책들도 있었다. 전자와 후자를 딱 두 권씩 읽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책이 이 책이었다. 제목만 보고 전자책 앱에 담아두었는데, 나중에 읽으려고 보니 작가명이 임경선 님이었다. 그전에 <태도에 관하여>로 먼저 접했던 분이었다. 갑자기 신뢰가 솟으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앞의 책들을 읽을 때와 달리 재미와 깨달음이 있었고 위안은 덤이었다. 어떠한 조언이 없다고 여겨졌음에도 그랬다.
이 책과 더불어 생각나는 책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다. 이 책은 소설이었는데, <평범한 결혼생활>과 받은 인상이 비슷하다. 결혼생활에 대해서 약간 팩트만 건조하게 말하는데, 그것 자체로 뼈를 맞는 느낌이랄까. 뼈를 맞지만, 좀만 견디면 뼈 위의 근막을 적당한 앞으로 긁어주어 소름이 돋게 시원한 느낌. 보통님 책을 읽고 나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것을 결혼 전에 읽지 않았을까. 하는. <평범한 결혼생활>도 그랬다. 읽었다 쳐도 지금 같은 카타르시스는 없었을 것임을 자명하게 알면서도.
책에서 글쓴이는 어떤 환상도, 조언도, 흔한 위로조차 없지만. 수많은 갈등을 거쳐 그보다 많은 자조 속에서 해학의 경지에 오르곤 한다. 몇 개의 빛에 반하는 수많은 불합리들을 알고도 같이 걸어가는 자의 지혜 안에서 약간 과장을 섞으면 현실적인 예수의 모습이 보였다. 감히 예수님의 이름을 올리는 나는 그렇지만 같이 그 길을 걷고 싶었다. 그 길에 갈래라고는 없었지만.
불편과 불합리는 당연히 안되고, 실리와 행복과 쾌락이 우선되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닌 사회 속에서 결코 그럴싸하지 않는 문장들이 등장한다. 그게 나는 좋았다. 무조건 위너가 되어야지 위너가 되는 세상. 말하고 쟁취하라는 세상의 메시지 속에서 나는 자주 혼란스러워했다. 여전히 그렇고. 나는 내가 극복하거나 개선해야 할 점들과, 영원히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메시지가 꼭 그렇다고 여겨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불편한 가운데 자리는 다른 사람이 하면 그 사람이 불편하니까 내가 앉아버리고 마는 나는 자주 루저였고, 바보였다. 그렇게 살지 않는 많은 편하게 사는 사람들 안에서 나는 자주 흔들렸다. 그나마 삶의 큰 지표로 삼고 있는 하느님의 언어까지 이제서야, 위안보다는 어려움과 낯섬과 고난의 언어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낮은 자로 살라는, 내가 하늘에서 받을 보물이 크다는 신의 메시지는 너무 멀었고, 급기야 허무맹랑했다.
그런데 임경선의 언어와 메시지는 지극히 인간적이다. 작가는 조언이 쉬울 것 같은 스타일임에도 끝내 조언하지 않는다. (혹은 했더라도 다른 책에 비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의 통찰 있는 시선 자체가 더 대단했다. 마치 루저가 되더라도, 그저 좋아하는 빛을 보고 달려들었던 불나방의 선택이 틀렸을지라도 강한 날갯짓에, 삶을 불사르며 살아가는 결혼 생활을 응원하는 듯하다.
포스트잇을 떼며.
p.6 맞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p.7 결혼생활을 가급적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나는 서로의 '안 맞음'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초연해하며, 그것이 일으킬 갈등의 가능성을 피하려는 훈련을 본능적으로 하게 되었다.
p. 9 "그 사람의 작은 단점 열 가지에도 내가 그 사람을 견디고 여전히 그의 곁에 머무르고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내가 평소에 잘 의식하지 못하는 아주 커다란 장점 한 가지를 가지고 있을 거예요."
p. 10 드라마나 소설을 보면 무거운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서로의 사랑이 더 깊어지는 전개가 간혹 나오던데, 현실에서는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말을 아끼는 어른스러움이 때로는 관계를 유지시켜주고, 상대를 위한 섬세한 거짓 안에 정성 어린 마음 씀씀이가 존재하기도 한다.
p. 12 미량의 감미로움도 놓치지 않는다. 최소한 그의 죽음엔 나의 부채 의식이 1그램도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러나 며칠 후면 다음과 같은 전화가 걸려온다. "뭐해? 나야. 방금 인천공항 도착했어."
안도와 더불어 느껴지는 약간의 아쉬움. 아내들의 이런 살의가 남편들의 명을 늘린다.
p. 14 이제는 돌아가신 시부모님께 개인적으로 가장 고마운 부분은, 당신의 아들을 넘치게 사랑해 줬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남편은 완전한 형태의 사랑을 받고 자란 남자다. (중략) 그래서인지 뿌리가 깊게 뻗은 나무처럼 안정적이고 우월감이나 열등감, 타인의 시선 같은 것들에 흔들리지 않는다. (중략) 그에 비해 나는 인정욕구와 애정결핍, 질투와 불안에 여전히 사로잡혀있다. 그것들이 내가 하는 일에 동기를 부여하고 연료가 되어주는 측면도 있지만,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면 단 한 번도 '꾸준히' 평온했던 시간이 없었다. 평온은 열정과 불안 사이, 고통과 공허함 사이사이 잠시 반짝 모습을 보여주고 이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p. 24 그렇게 사시사철 벗고 지내고 하물며 거실 맨바닥에 엎드려 잘 수 있다는 것은 그가 한 마리 야생 멧돼지처럼 건강하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p.92 하지만 솔직히 남편이 가사 분담을 이만큼 하게 된 건, 내가 결혼 후에도 끊임없이 돈을 벌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