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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Nov 07. 2023

아이의 세계

옛것에 관한 이상한 향수와, 무게감

모든 게 다 커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 아빠, 할머니, 친척어른들, 최소 6살은 더 많았던 친척 언니오빠들, 선생님들, 그렇게 알거나 모르는 모든 어른들. 

집, 학교, 63 빌딩, 작거나 크거나 적당한 그런 건물들, 거기로 가는 길. 그중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들.

사람인 것 사람이 아닌 것, 눈에 보이는 것, 보이지는 않지만 들을 수 있는 것. 


그렇게 모든 것이 컸다. 심지어 초등 저학년 때 우리 집은 10평 초반대의 오래된 아파트에 살았는데, 나는 식구 4명이 사는 그 집이 좁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집이 좁았다는 것은 한참이나 뒤에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갔던, 몸이 조금 더 큰 뒤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이 아니어도 알고 보니 좁은 것은 크면 클수록 많아졌다.


손안에 쥐어지는 연필, 지우개, 책 같은 익숙한 작은 물건들만 빼고 모든 게 커 보였다.  어쩌면 그 작은 연필과 지우개, 붙이지도 않으면서 소중해하던 스티커들까지도 지금만큼이나 자유롭게는 살 수 없다는 측면에서 그렇게나 작은 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모든 것들에서 느껴지는 거대함이 꼭 그들과 나의 크기 차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부모, 가까운 어른들, 삶의 형태와, 국가, 세상은 아이에게 어른이 보는 '그 이상의 전부'로 와닿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 크기는 나와 그들의 물리적인 크기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만나온 시간의 길이와 관계된 걸지도 모르겠다.


살던 곳이 정들만하면 멀어지곤 하던 내 인생 특성상 자주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가끔 과거 익숙했던 어떤 것들을 만날 때면 그게 그렇게 작게 보일 수가 없다. 이 느낌은 몇 번이고 겪어도 강렬해서, 자꾸 글에 회자시키고 싶다. 내가 몸이 큰 만큼 그것들과 미세하게나마 물리적 차이가 작아졌을 뿐만 아니라  '게라고' 느낀다는 건 심리적 영향력 상당하다. 이를테면 학교나 놀이동산 같은 경우 범위가 하나는 좁고 나머진 넓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다른 의미에서 내게 엄청 압박감과 설렘을 동시에 주는 곳들이었다. 분명 그들은 한결같음에도, 그곳 갈 때면 어떤 식으로든 긴장을 하고 자주 압박감을 느끼거나 너무 좋아서도 느낄 수 있는 긴장 설렘이 주는 피곤함이 가득다. 그 둘에 갔다 오고 집에 오마치 내가 엄청난 일이라도 한 듯 마음껏, 혹은 일찍 쉬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단 말이다.


그런데 지금 그 둘과 나 사이는 아주 멀어졌다. 당장 거기에 교육이나 놀이를 목적으로 갈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고, 가더라도 내가 낳은 아이와 관련해서 갈 가능성이 커졌다. 지금 나는 다녔던 학교나 어렸을 때 갔던 놀이동산에 가더라도 이 건물들이 이렇게나 작았나 싶다 못해, 그때 느꼈던 부담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당연히 내가 이곳의 주체자가 되지 않을 테니 오는 감정일 테지만, 놀이동산의 경우는 자주 시시하게 느껴지고, 그때 재밌었던 놀이기구를 주체자로 타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물론 타고 싶은 게 있어도 아이와는 탈 수가 없어서, 멀리서만 봐야 하는 것도 있지만.)


삼십 중반이 된 지금 나는, 사물이나 건물이나 사람을 이제야 딱 그 크기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적당하면 적당한 대로 그냥 그대로. 자연이나 사람이나 사물이나 나보다 광활하게 크다고 해서 거기서 어렸을 때만큼의 큰 감흥이나 압박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냥 크구나, 그렇구나. 더 나아가면 좀 좋구나 정도랄까.


어렸을 땐 동경하고 한껏 들뜸으로 마주했던 것들을 한동안 멀리하다가, 아이가 세상과 소통할 정도의 나이가 되자 가까이하고 있다. 크고 설렘과 긴장 가득했던 것들을 대하는 기회가 많아진다. 그때마다 그곳을 방문은 하되, 내가 주인으로 갔다는 기분보다는 보호자로 갔다는 생각이 앞선다.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행동과 행색이 완전히 보호자이올시다.) 나의 즐김은 뒷전이거나 거의 없다고 봐야겠고, 아이의 즐거움과 그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부모 우선으로 살면 되지 않나-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막상 육아생활에 가보니 쉽지 않다. 아이가 좋은 게 내 맘도 편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변수가 많은 육아생활 특성상, 최대한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홀몸 일 때보다 예민하리다 싶을 정도로 곤두서있는 탓도 있겠다. 오히려 속으로는, 내가 더 이상은 즐기지 못하는 순간들이 큰 아쉬움으로 느껴지는 자신이 아직도 나는 어린가 싶을 때도 있다.


잠시 나 혼자 있는 순간은 몰라도, 우리 눈에 아이가 있을 때만큼은 아이 중심이 되는 때가 많다. 크거나 새롭거나 그래서 좀 설레게 하는, 평소보다는 특별한 날들을 대할 때, 속으로 자주 시시해하거나 아쉬워하는 나를 보며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함께 있는 아이는 이곳이, 내가 어렸을 때 느꼈던 것같이 모든 게 크고 전부인 것 같은 세상을 살고 있을까.


내가 작았을 때와는 많은 게 달라졌지만 확실한 건 '우리 몸의 반만 한'이 아이가 느끼는 물리적 심리적 무게감은 분명 클 것이다. 이 사실이 부모가 된 나의 마음에 무게감을 더한다. 가만 보면,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모든 것들에 비해 우리 아이가 보는 것들은 상대적으로 커졌다. 당장 나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들이 익숙했는데, 이 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층수에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많은 것들이 커지고, 희소한 것들은 만연해지고, 좋아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진 세상에서 나와 우리는 그 크고 많은 것들 중에 얼마나 합당한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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