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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Nov 19. 2023

김장의 기쁨과 슬픔

반전주의


"어우! 왜 이리 짜!! 어우!"


이 말은 나이 70에 육박하는 부모님과 80을 잇는 이모와 삼촌, 40대 사촌 누나들, 그리고 친형, 그리고 유일하게 자기보다 어린 형수가 김치 속을 묻히고 있는 현장에 가장 늦게 나타나 김치속맛을 본 시댁 둘째 아들이 한 가장 큰 첫마디였다. 한 거는 하나도 없는데, 김치통은 어쩜 저렇게 들 수 있는지 싶게 두 손 가득 터질 듯이 들고서.

미리 언지를 하자면, 시어머니가 김장을 하니 "꼭 오라" 며 강요하는 분은 아니었음을. 심지어 나와 남편 아들로 이루어진 우리 집은 매운 걸 못 먹고, 김치 소비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실리로만' 따지자면 절대 올 필요가 없는 사람들임을 밝힌다. 나는 애기가 없었을 때부터 시부모님이 고생하신다는 생각에 와서 돕는 걸 자청했다. 편도 2시간이상거리를 기쁘게. 다시 짚고 넘어가는 데 이건 절대 며느리라기 전에 내가 모시는 어른이고, 배우자의 부모님이라 어려운 일은 당연히 돕는 게 맞다는 생각이 앞선 것임을 밝힌다. (착한 며느리 증후군이라던가 젊은 꼰대라던가 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나는 결혼 전에는 '모여서 하는 김장'이란 것을 해 본 적도 없는 처자였다. 김장은 말 그대로 교과서에서만 보던 것이었다. (물론 엄마가 나 학교 간 사이 김장을 하고 난 날이면 몸져눕곤 했다는 것만 안다. 왜 그때는 안하고 이제와서 난리냐고 하지 마시길. 그때는 나도 엄마가 안시키니 안하고 몰랐던 곱게 큰 철딱서니 없는 어린이었올시다.)

어머님 아버님 다음으로 김치 소비가 가장 많을 그 집은, 본격적인 김장 '전날'에는 온 걸 본 적이 없었을뿐더러, 당일에도 '늘' 아주 늦게 오거나 말거나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는 애초에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자꾸 사람들이 '철수(시동생가명)는 언제 와?'라고 농담 식 물음을 던지는 바람에 오긴 오는 건가 싶긴 했다. 속으로 '아마 다 하고 밥 먹을 때나 오지 않으면 성공일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그때는 오지 말아 주라고 소원했다. 그러면 정말 대빡이 칠 것 같으니.

참고로 김장하면 둥그런 매트에 둘러앉아 빨간 속을, 소금기로 푹 꺼진 배추에 묻히는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진짜 고생은 그전단계에 있었다. 신혼 때였나 한번, 혼자 전날에 와서 마당에 있는 배추를 뒤집는 작업만 밤 11시에 해본 적이 있는데 별거 아닌 것 같은 이게 어마무시하게 힘이 들면서도 고독하다 못해 쓸쓸할 지경이었다. 전설의 김장한파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김장전날에는 꼭 고무장갑을 얼릴 듯 추워지던 그 내음은 해본 자만이 아는 용어일지다.

그 이후로 꼭 전날 오후에는 꼭 가서 어머님 아버님을 돕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그 전전 단계를 경험하고야 말았다. 낮에 배추를 따서 가르고 대충 씻고 절이고 대파랑 쪽파, 무 등을 (뽑고) 씻어서 자르는 등의 작업 말이다. 심지어 그 모든 것들을 넣고 버무릴 육수와, 간 마늘, 풀물, 같은 것들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머님이 하셨을 일이었다. 이 밖에도 내가 모르는 엄청난 작업들을 하셨다. 어머님 아버님은.

심지어 고춧가루도 다 직접하신거란말이다.



모든 게 대용량이라 그런지 몰라도 모든 작업 중 만만한 거라곤 없어 보였다. 낮에 작업하는 일은 처음이라 그마저도 나는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다들 소금물에 맞을까 장화를 준비해 온 것을 보고 놀랐다. 젖으면 빨면 그만이지라는 나를 모두가 만류한 덕분에 소금물과 조금 먼 곳에서 할 건 다 한 나였지만. 곁다리로 어른들을 도우며 생각했다. 이 시간에 오길 잘했다고. 이 과정을 알아서 다행이라고. 아침에 일어나는 건 좀(아니 **) 귀찮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지만, 와서 하기 싫다거나 이런 걸 왜 한다거나 사 먹으면 안 돼?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바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몸이나 작업은 좀 고되지만, 친척들이 한데 모여 시끌벅적하게 함께하는 이 분위기가 좋았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몸도 버틸만했다. (김장에 빠삭한 주요 인력이 아니라 버틸만한 정도의 일만 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 모든 버틸만한, 그리고 심지어 좋다고 생각되는 순간들을 뒤집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고백한다. 맨 앞문장의 주인공 내외들 말이다. 그중 한 사람은 작년 김장 때 웬일로 한번 조금 와서 해보고서는 시어머니께 그랬다. "그냥 따로 하세요- 뭣하러 이렇게 고생하시면서 다 같이 해요." 다 같이는 한다고 해도 아무래도 작물 밭을 운영하시는 분이 시부모님이고, 뒤에서 고생하시는 게 훨씬 많은걸 알고서 한 말 같았다. 거기에 어머님은 위로를 받으셨는지 어쩠는지 잘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일 년 뒤 어김없이 김장철은 돌아왔고, 김치를 먹으려는 사람들은 당연히 모였고, 김치를 갖다 먹지 않지만 온 사람들도 있었고, 김치를 먹지만 자기냉장고에 들어갈 김치 통만 가져오고 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사 먹으면 그만이지, 안 하면 그만이지.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김장만 그러랴. 제사며 명절이며 각종 가족행사들 모두가 그렇지. 단순한 노고나 분쟁을 덜기 위함이 유일한 목적이라면 그럴 수 있다. 누구보다 잠 많고 요리 못하고 행동 굼띤 것에 뒤질 자신 있는 나도, 귀찮은 거로 따지면 냅다 때려치울 자신 있는 사람임을 명백히 하고 간다. 어쩐지 편리함과 실리만으로만 따지기에는 뭔가 씁쓸한 구석이 있단 말이다. 산김치는 맛없어서, 우리가 한 게 더 '맛있으니까'. 도 김장을 유지하는 큰 이유가 있겠다만, 나는 그 이상을 알고 싶고, 보고 싶고, 인정하고 싶다. 넓게는 김장, 제사, 명절 차례, 성묘, 가족행사들이 그렇겠다.

맛은 일종에 '보이는 가치'이다. 저 의식들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끊어져 가는 가족시대 안에서 마지막으로 피붙이들의 얼을 지켜가려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가치'를 향한 몸짓이 아닐까. 귀찮아도, 돈이 들어도, 시간이 걸려도, 내 몸이 고단해도 지키는 게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 말이다.
 
산사람이 중요하지. 그래서 내 몸 편하게 사 먹고, 그 시간에 여행이나 가는 게 남는 장사야.라고들 많이 한다. 그러니까 나는 말한다.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래, 산사람 중요하니까 살아있을 때도 잘하라고. 그리고 그 소중한 분 죽어서도 기리고 싶지 않냐고. 그 의식을 통해서 남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함을 느끼고, '산 자들 사이에서 도리를 다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들이 결코 도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김장 뒤 옹졸해진 것 같은 마음에 분노와 별개로 내 좁은 속을 탓하고 있었는데 '도리'라는 말이 귓구멍을 때리더니 옹졸이란 단어로 얼룩졌던 잘못 끼워진 퍼즐이 드디어 맞추어진 듯했다.



차라리 벙어리였으면 싶은 날들이 있었다.
이는 말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못하고 않는 나를 보며 든 생각이었다. 차라리 벙어리였다면, 이렇게나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맛도 모르는 나는 그냥 도리만 하고 와서 도리를 하지 못하는 사람 때문에 혼자 분노하고, 그 마땅한 분노를 관련한 어느 누구에게도 표출하지 못하고 까맣게 탄 마음으로 집에 와버렸다.

김치 속을 묻히다가 작은아들은 언제 오냐는 사람들의 은근한 성화에 그 아들과 통화를 마친 시어머니는 그 애가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다며, 자신이 날짜를 잘못 알려준 탓이라며 웃으며 무마하셨다. 그래. 그러려니 했는데, 자꾸 분노를 곱씹다 보니 그것도 틀렸다. 왜 한 번을 흘리듯 말해도 우리는 정확히 그 날짜를 알고 있는데, 왜 그 집은 그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느냐 말이다. 그리고 어머님은 그 아들이 전날 일을 늦게까지 해서 오늘 푹 쉬려던 날이었다고 이어 대신 변명을 하셨지만, 역시나 납득없는 말이었다.


여기에 '오늘 푹 쉬어도 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이건 '도리'의 문제였다.
그나저나 여기는 시댁이고, 행간에서 말하는 시댁치고는 유쾌하고 즐겁고 편안한 곳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거기서 유일한 피붙이가 아니요, 유일한 며느리였고, 어른 중에 가장 어린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도리보다 갈등이 두려운 자이기도 했다. 



양손에 꽉 낀 빨간 고무장갑을 바지런히 빼고 일어나며,
"어머님, 시동생님, 여기에 오늘 쉬어도 안 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심지어 어머님 아버님은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일하시잖아요. 그리고 삼십 대 말고 70대이신 이모부님도 일하시는 데 오늘 일하셔야 하는데 빼시고 오셨다면서요."


라고 말하고 이젠 운전도 할 줄 알겠다 그놈의 비닐하우스를 박차고 나와서 아들 데리고 집으로 가버리는.

상상만 했다.

당장 말을 못해서 그렇지 말만한다면, 바른말일지언정 그 되바라진 듯한 그 태도에 어른들의 꾸중과, 남편의 세상 어쩔줄 몰라할 그 얼굴을 마주할 자신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어서


"저희는 김치 먹지도 않는데 그저 도리라고 생각해서 왔는데, 이 정도면 제 도리는 다한 것 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라고 정중히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고 하는,


상상만 했다.



아니 이번 생에 바른 말 제때 잘하기는 그른 것 같으니 차라리 그 자리에서 여우같이 처연하게 울기라도 잘하면 좋겠다고 서울 곰탱이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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