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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용할 양식 Nov 18. 2020

12. 농사짓는 기쁨은 끝내 살아남아서

11월인데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평원이 여전히 푸르다면 김장거리가 자라는 와중일 겁니다.  멀리서 막연히 푸르게만 봤던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세요. 어딜 둘러보나 배추와 무, 그게 아니면 파와 갓으로 빼곡히 뒤덮여 있을 거예요. 그야말로 온 마을 아니, 온 한국 시골이 양념에 버무리기 직전 거대한 김장 속인 셈이죠. 시골에서 김장은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혹은 보다 더 떠들썩한 연말 행사라 김장철이 다가올수록 모든 화젯거리가 김치로 대동단결하는데요. 그 집 배추가 실하게 잘 컸다더라, 저 집은 올해 무가 영 잘다더라 김장 농사의 흥망성쇠를 엿들으며 김치가 뭐 길래 이렇게까지 다들 진심인가 새삼스러워합니다. 

이웃들이 김장 준비로 왁자할 때, 영 딴판으로 제 밭은 휑뎅그렁해요. 된장국에 넣어 먹을 배추 몇 포기, 무 조금, 허브 몇 가지만이 남아있을 뿐, 곳곳에 지주와 마른 가지들만 스산하게 서있습니다. 김장까지 챙기다 보면 농사일이 12월까지 이어질 텐데 그게 싫어서 올해는 김장 없는 갈무리를 택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밭을 비워두고 첫 눈이 고요히 내리는 모습을 집에서 핫초코 한 잔 호로록 마시며 관람하는 것이야말로 제가 계획한 훈훈한 갈무리예요. 오늘은 그간 정리하지 못한 도구를 말끔히 모아 창고에 넣고 밭에 나뒹구는 마른 찌꺼기들을 치우기로 합니다. 비로소 농사의 마지막 작업이죠. 오늘이 지나면 밭은 아무것도 심기지 않았던 그 모습으로 돌아갈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에 세계가 휘청이고 마스크 없는 건강과 내일의 밥벌이가 불투명한 나날이 이어지는 동안 이따금 씨앗 상자를 열어봅니다. 작물 한 종류를 수확할 때마다 그중 가장 튼튼해 보이는 것을 골라 채종한 씨앗들이 거기에 있어요. 기회만 된다면 이 씨앗들에서는 새싹이 움틀 수 있습니다. 종잣돈이 아니라 그냥 종자(씨앗)를 가졌는데도 혹시 모를 미래의 밑천을 구비해뒀다는 데 안도감을 얻습니다. 통장 잔고와는 또 다른 든든함이죠. 그래, 정 위급한 상황에도 굶어 죽지는 않겠지…. 가진 걸 다 심으면 될 거야.        

‘일반적으로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지방으로는 세숫비누 일곱 개를 만들 수 있다. 철분(Fe)으로는 중간 크기의 쇠못 하나를 만들 수 있고, 당분으로는 커피 한 잔을 달게 할 수 있다. 인간의 몸에는 2,200여개의 성냥개비를 만들 수 있는 인(P)이 함유되어 있고 마그네슘(Mg)으로는 사진 한 장을 찍는 데 필요한 빛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약간의 칼륨(K)과 황(S)도 있지만 활용할 수 있는 정도의 양은 아니다. 이러한 다양한 원재료를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25프랑 정도가 된다.’_ 조르주 바타유(George Bataile)     

인간의 몸 속 재료를 굳이 사용 가치로 환산하는 발상은 가끔 위안이 됩니다. 수많은 책과 영화, 철학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속내와 소용을 해명할 수 없을 때마다 차라리 인간도 하나의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안심할 수 있다고나 할까요. 농사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컴퓨터 화면 너머 무수한 1과 0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내가 완전히 안다고 말할 수 없고 내 앞날의 안부도 확신할 수 없는 반면, 밭에서 일하는 순간만큼은 지금 어디에 발을 딛고 무엇에 손을 맞대고 있는지 분명하니까요. 씨앗 몇 알을 손가락으로 집어 뿌리고, 나날이 자라는 모습을 눈으로 지켜보고, 한 잎 따서 입에 넣기까지 몸으로 알아차리는 분명함에 기대어 좋았다 나빴다 울렁거리는 세계를 견딥니다. 

때로는 지나치는 절기, 피고 지는 식물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세계를 아예 새로 만나기도 합니다. 나무의 이름을 알고 나면 그 길이 대학로가 아니라 플라타너스 나무가 늘어선 길로 보일 때 조금 더 다감한 기분이 드는 것을 떠올려보세요. 계절의 보폭에 발맞춰 농사짓는 사이 같은 풍경도 다르게 읽을 언어 하나를 체득한 것 역시 제가 농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가끔 무슨 말로 업무 메일을 마무리해야할지 모르겠을 때엔 오늘이 무슨 절기에 걸쳐있나 확인합니다. 오늘은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입니다. 라고 하면 왠지 더 운치 있지 않나요. 이런 건 농사를 짓고 나서야 덤으로 얻은 잔재주라고 할 수 있죠.  

    

더 이상 농사짓지 않는 삶을 상상할 때 내게 남는 건 (조금 슬프지만) 돈도 명예도 아니요, 오로지 감각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토마토 곁순을 똑 꺾을 때 퍼지는 풋내라든가 여름 한낮에 일순간 커지는 매미 소리,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흙 위를 걷는 느낌들이요. 이런 것에 파묻혀 남들보다 시간을 느리게 보냈던 순간이 무엇보다 오래오래 남을 듯합니다. 행복하다 느끼면 기다렸다는 듯이 도로 불행해질까 조바심을 내던 저도 차오르는 행복을 오롯이 느꼈던 순간들이니까요.

농사짓는 일의 모든 고단함과 괴팍함에도 농사짓는 기쁨은 끝내 살아남아서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또 농사를 짓게 했습니다. 언제까지 농사가 짓고 싶을까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저는 분명한 기쁨에 기대어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쪽으로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랑하고 돌아가는 그곳이 나의 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화에 발을 욱여넣습니다. 지난밤 미리 장화를 들여놓지 않은 탓에 장화는 밤새 얼어붙었어요. 장화 속에 갇힌 냉기가 발을 감싸면 아무리 양말을 두 겹씩 신어도 발가락이 얼얼합니다. 몇 번의 제자리걸음 뒤에야 뻣뻣하던 장화는 걸음 따라 말랑해지죠. 겨울이 가까워올수록 아침에 집을 나서는 일 자체로 점점 고역입니다. 냉기에 얼어붙은 것을 덥히는 일로 발을 동동거려야 하니까요. 손이 시려 자주 입김을 불고 또 옴짝거리며 밭으로 향합니다. 두부처럼 폭신해 밟는 대로 발자국이 패던 땅은 비바람과 사람 발길에 시달리느라 납작하게 굳었습니다. 내년 봄이 되어야만 언 땅이 녹고 다시 봉긋이 부풀어 올라 새봄의 씨앗을 위한 품이 만들어지겠죠. 그전까지 저는 잠시 방학을 가지기로 합니다. (1화의)돈암동 아저씨도, 감자도, 토마토도 모두 내년에 다시 등장해주세요.     



*Epilogue

매년 농사를 지으며 알게 된 것들이 너무 많아 체할 정도였는데요. 그걸 꼭꼭 씹어 잘 삼키고 싶어서 지난 농사를 돌이켜보며 글을 지었습니다. 가끔 글을 쓰다 막힐 때면 귀농할까 말까, 이 일(농사)을 계속 할까 말까 고민하던 과거의 나를 떠올렸어요. 그때의 나는 어떤 말이 듣고 싶을까.

결국, 저는 무엇보다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너의 자격과 소용을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말라고. 어느 밤에는 막차를 붙잡아 시골을 떠나고 싶기도 하겠지만 너는 그럼에도 이 일을 사랑하게 된다고 말이죠. 읽는 분 누구나 어디에서 일하건 원하는 모습과 방식으로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오늘도 토마토를 심었고요.』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꾸벅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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