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슨 Mar 20. 2022

메뉴판에 영어밖에 없는 이유

기호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영어 사용

영어를 잘 못하던 시절, 영어 메뉴판 밖에 없는 홍대의 어느 카페에 갔다가 Grapefruit를 보고, 포도의 한 종류라고 지레짐작하여 포도 주스를 달라고 한 민망했던 경험이 있다.


외국인이 많은 상권이거나 대사관이 많은 지역이 아님에도 이런 경우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정보 전달이 가장 우선 되어야 할 메뉴판에서 왜 영어만 쓰는 경우가 생기는 걸까?


큰 전광판에 가수의 이름을 영어로 적어놓은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관객의 대부분이 한국 사람인 한국 가수의 콘서트임에도 말이다.


한국 사람들만 보는 공연에서 왜 영어로 가수 이름을 쓰는 경우가 생기는 걸까?


현대에 쓰이는 많은 문자들은 뜻을 가지지 않는 상징적 기호다. 특정 기호는 이러한 의미를 가지자고 하는 합의를 거쳤기 때문에 우리가 그 문자를 보고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자는 뜻을 전달하는 의미로서의 기능을 하지만 기호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브랜드의 로고를 예로 들 수 있다. 맥도날드의 노란색 M은 아무 의미 없는 알파벳 하나에 불과했지만, 광고와 노래로 만들어진 합의를 통해 햄버거 브랜드라는 기호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각 국가의 언어와 문자는 정보 전달의 기능으로 작용함과 동시에 그 국가의 이미지가 동시에 느껴지는 효과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호감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가게가 늘어선 길거리 풍경을 본다고 하면,  긍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룰 것인데, 이는 미국인들의 반응과 상반된다.


똑같은 거리를 두고 미국인들은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다. 그 반응 중의 하나로는 촌스럽다거나 삭막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그 가게들의 간판에 적힌 영어를 정보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호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러한 가게들의 간판을 국내화 시키면 순이네 햄버거, 서울 구제 옷가게 같은 느낌이다.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느끼는 서울의 삭막해 보이는 풍경과 다를 바가 없다.


3년간 지속된 6.25 전쟁을 겪으면서 제로의 상태가 된 대한민국의 롤모델은 그때부터 쭉 '미국'이었다. 그들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의 혜택을 보지 않은 국가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자본주의, 기독교 등의 미국 문화와 체제를 받아들였고, 안정된 정부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50년대부터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르기도 하였다.


지속된 미국으로부터의 원조와 교류를 통해 접한 미국의 성공한 모습을 접하면서 미국은 성공의 상징이 되었고 그들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으며 영어 또한 그 맥락을 같이한다.


사실 거시적으로 본다면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로 나누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소프트파워를 가진 국가들은 대부분 과거에 하드파워인 군사력으로 많은 땅을 정복하며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을 강제해 얻은 부를 기반으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에는 이 둘을 동일시하여 보는 것이 무리가 없다.


따라서 사실 문화적 권력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 경제, 군사를 종합한 국가의 위상에 따라 결정된다. 쉽게 말해 부러워할 만한 사람들의 문화를 선망하게 되는 것이다.


기호학의 대가 데이비드 크로우는 기호의 의미는 수용자의 교육 수준, 문화, 경험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문자는 의미로서 작용하기도 하지만 시각적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의 기호의 역할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메뉴판에 영어만 써놓는다는 것은 음식을 팔기위한 정보 전달의 기능은 미뤄두고 '고급스러움'을 표현하는 기호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콘서트장에서 볼 수 있는 한국 가수의 영어로 써진 이름 또한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관객에게 정보 전달을 위한 의미는 상관없이 '멋있어 보이기 위한' 기호로서의 기능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반드시 정보전달이 우선되야하는 상황에서도 영어만 표기되어있는 것은, 우리가 동경하는 '미국'이라는 대상과 '영어'를 동일시하여 그들처럼 '고급스럽고 멋있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똑같은 의미임에도 한국어로 써진 티셔츠보다 영어로 써진 티셔츠에 소비자들이 마음이 가는 것도 이때문이다.


심지어 화장실도 픽토그램같은 그림조차 없이 영어로만 표기되어있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에는 의무교육을 마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물론 많은 경우에 이해할 수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반드시 이해될 수 있어야 할 이러한 경우에도 영어만 고집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앞으로는 가급적 정보전달이 중요한 경우에는 한글을 우선적으로 사용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의 이전글 살만한 세상의 시민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