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 관한 지리적 지식이 거의 없긴 하지만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는 멕시코에서 가장 긴 도시 이름이 아닌가 싶다. 이런 긴 도시 이름은 대수롭지 않은 여행기를 쓰는 것을 무척 힘들게 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냥 산 크리스토발이라고 쓰고자 한다.
서양의 도시에는 같은 이름이 많다. 독일의 대표적 도시 프랑크푸르트의 정식 이름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이다. 마인 강에 있는 프랑크푸르트란 뜻이다. 기차역에서 그냥 프랑크푸르트 가는 표를 살 경우 엉뚱한 곳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유럽의 도시 이름은 같은 이름의 도시를 혼동하지 않기 위해 도시가 위치하는 강이나 또는 더 큰 지역의 명칭이 따라붙는다.
산 크리스토발 대성당 앞 광장
멕시코의 경우 도시 뒤에 따라붙는 다른 명칭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몇몇의 예를 보면 사람 이름이 붙은 경우를 볼 수 있다. 과나후아토에 있는 산 미구엘 데 아옌데 같은 경우가 그렇다. 뒤의 아옌데는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지역 영웅이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의 라스 카사스 역시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Bartolomé de las Casas)라는 사람 이름에서 온 것이다. 그는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살았던 스페인의 수도사이자 사제였으며 역사가로 또 사회개혁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멕시코 치아파스의 주교가 되어 그 땅에서 본래부터 살아온 원주민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고 스페인의 원주민 학살과 착취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인물의 이름이 도시 이름에 들어가게 된 것은 이곳 치아파스 주가 멕시코의 역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였는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소칼로 광장 한쪽의 시청시 밑 회랑에 아침 햇볕이 들어온다. 광장에 간식거리를 팔러 나온 여성이 물건을 내려놓고 땀을 식힌다.
해방신학 그리고 EZLN
이 지역은 도시의 이름에서부터 식민주의자들에 대한 저항의 색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그러한 저항 기지로서의 위치는 더욱더 강고해졌다. 1960년대에 중남미를 휩쓴 해방신학의 물결은 멕시코에서는 산 크리스토발이 중심이 되었다.
당시 이 지역의 주교였던 사무엘 루이스는 마리스트 계파의 성직자들과 모택동주의자의 인민연합 대표자들을 연합하여 원주민 권익을 위한 원주민의회를 만들었다. 이러한 활동은 뒤에 사파티스타 민족해방(EZLN)의 군대가 결성되게 하였다. 사파티스타란 1910년대 멕시코 남부에서 농민 혁명군을 이끌었던 '혁명아 사파타 '의 군대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들은 1990년대 말 북미 자유무역협정 (NAFTA)이 발효된 후 산 크리스토발을 점령하고 이곳을 NAFTA에 대한 저항 기지로 삼았다. 사무엘 루이스는 이 같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 운동의 업적을 인정 받아 유네스코가 주는 국제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의 영향인가? 대성당의 앞 광장에는 치아파스 정부에 대해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올바른 처리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광장 바닥에 깔아놓은 대자보의 몇 개의 단어로 보아 사회주의 운동 지도자들 몇 명이 실종된 듯했다. 또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 있기를 바라고 주 정부에게 강력한 수사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였다.
젊은 운동가들이 실종된 사회주의 운동 지도자의 구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마법의 도시에 마법이 없다
마법의 도시에 가면 어떤 마법을 볼 수 있을까 하고 기대하지 말자. 마법의 도시는 마법사가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법의 도시란 관광객들이 마법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멕시코 중앙정부의 관광국에서는 지방 도시의 관광 활성화를 위해 그 지방 특유의 체험을 할 수 있는 도시를 마법의 도시라는 명칭으로 지정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였다.
그래서 마법의 도시 또는 마법의 마을에 가면 아름다운 경관이나 역사 문화적 체험, 민속, 그 지역 특유의 맛있는 음식 등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산 크리스토발은 이러한 멕시코의 관광도시 중 가장 매력이 넘치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멕시코 중앙 정부로부터 최고의 마법 도시로 인정받았다.
이 도시에서만 느낀 멕시코의 색깔
이 도시에 와서 나의 눈에 가장 강렬하게 들어온 것은 선명한 색깔이었다. 나는 까사 노 볼롬이라는 박물관에서 옛 저택의 일부를 호스텔로 사용하는 곳에 숙소를 정했다. 그곳에서는 아침을 안마당에서 먹었는데 따뜻한 햇볕 아래 푸른 화초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여기에 붉은색 기와지붕과 그 위를 덮은 푸른 하늘이 더해져 그대로 삼원색의 조화를 이루었다. 이때 푸른 화초 사이를 노란색의 새 들이 지저귀며 날고 있었다. 나는 아침 마다 테이블 위의 음식 접시보다 그 색깔들의 조화에 눈을 빼앗겼다. 까사 노 볼롬 박물관은 처음 신학교였으나 프란츠 볼롬이라는 고고학자와 사진가였던 게르트루데 두비 볼롬의 저택이었고 현재는 박물관과 호텔,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문안으로 들여다 보이는 까사 노 볼롬과 정원을 날아다니는 노란 새.
그 마당에서 만난 색깔은 골목길 양쪽에 원색으로 칠해진 담벼락에서도 볼 수 있고 마치 원색의 모자이크로 산등성이를 덮고 있는 듯한 가난한 산마을에서도 볼 수 있었다. 산크리스토발 교회가 있는 언덕에서 본 건너편 산마을의 색깔은 정신을 놓을 만큼 아름다웠다. 마을 길을 오가는 여성들의 옷차림 또한 그러한 배경색과 어떻게나 잘 어울리는지.
현대식과 전통식 복식의 대화
과달루페 성모상의 삼원색 치장
처음 찾아 간 도시의 색의 유별남이란 참으로 엉뚱한 곳에서 만나기도 한다. 소칼로 광장의 뒷길을 걷다가 나는 너무 강렬한 색깔을 만났다. 그곳은 산토 도밍고 성당의 뒷길이었는데 성당 돔의 둥그스름한 지붕에 빨갛고 노란색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그 색깔은 지붕을 수리하기 위해 덮어 놓은 비닐이었다.
그런데 이 비닐의 색은 마치 돔이 지어진 처음부터 그렇게 있었는 듯 자연스러웠고 도시의 골목에서 만나는 여늬 집 담벼락에서 보는 오랜 시간의 퇴적처럼 보였다. 그건 그때 거기 처음 간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 테지만 나는 이 도시가 주는 선명한 색의 도시란 느낌이 강하게 뇌리에 박히게 되었다.
이 보일락 말락 보이는 분홍색과 돔 위에 걸쳐진 노란색 비닐은 마치 성당이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있던 것처럼 보였다.
나는 산 크리스토발의 가장 인상적인 색깔을 성당 안에서 만났다. 그것은 도시의 중심 광장에 서 있는 대성당이 아니었다. 시의 동쪽 끝 언덕 위에 있는 과달루페 성당은 작고 특별한 장식도 없는, 시골 마을의 작은 성당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었다. 그러나 안에 들어서서 느낀 그 야릇한 감정은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었다.
네온사인으로 둘러싸인 과달루페 성모상의 그림은 안쪽의 붉은 형광등으로 인해 붉게 채색된 듯 보였다. 그리고 그 바깥의 푸른색과 초록색의 형광등과 성모상 위의 노란색 왕관까지 원색조의 네온 장식은 성당 내부를 매우 기이한 분위기로 만들어 주었다.
어느 면에서는 촌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또 어느 면에서는 그로테스크함까지 느끼게 해주는 이 성당의 분위기는 유럽 양식의 어떤 대규모 성당에서도 느낄 수 없는 멕시코적인 색채라고 생각되었다.
산 밑에서 본 과달루페 성당과 성당 앞에서 보는 산 크리스토발 시내 풍경
과달루페 성당 내부의 과달루페 성모상과 예수상
멕시코의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성모는 유럽인들이 모시는 성모가 아니다. 과달루페 성모는 추운 겨울 멕시코 농부 앞에 나타나 장미꽃을 내려준 멕시코의 성모이며 그래서 피부 빛깔도 검은색의 멕시코 토착인의 피부색이다.
중앙제단의 옆으로 있는 예배당에는 성당이 지어진 초기에 제작되었다는 성모상 조각 작품이 있는데 이 역시 빨간색과 초록색의 휘장이 배경으로 쳐져 있고 성모는 농부 디에고 앞에 나타날 때 입었던 파란색 망토를 입고 있어서 빛의 삼원색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었다.
성당의 뒷길에는 작은 기도소가 있었는데 거기도 과달루페 성모상 그림이 걸려 있고 몇 명의 젊은이가 촛불을 켜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이 도시의 무언가 형용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그 작고 어두운 기도소 안에 서려 있었는데 나는 그 분위기조차 이 도시가 가진 독특한 색깔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 작은 기도소를 보면서 우리나라 사찰에 있는 칠성각을 떠올렸다. 이 가난한 여행객들은 옆의 크고 잘 지은 본당 건물보다 여기가 더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
성당 뒤에서 한 남자가 닭을 손질하고 있다. 닭은 신에게 바치는 중요한 제물의 하나이다.
산 능선을 장식한 원색의 마을
길고 긴 계단을 올라 마주한 산 크리스토발 교회는 이름값에 비해 초라하게 보였다. 올라가는 계단 양쪽의 울창한 숲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다. 또 언덕 아래의 마을에서 본 벽화는 요란한 원색을 피하고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에서 한 계단씩 내려온 주황색 청록색 연두색의 부드럽고 따뜻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벽면 가득히 채워진 기이한 형태의 그림과 글씨들이 보는 이를 묘하게 끌어들였다.
산크리스토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가 마을의 벽화
산 크리스토발 언덕 밑 마을에서 만난 여성
언덕 위에서 본 산 크리스토발 시내는 잔잔한 주택과 상가들을 압도하면서 성당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건너편 산의 능선을 꽉 채운 원색의 마을이 더 눈에 들어왔다. 채석장 뒤의 바위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조그만 집들은 구역별로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한 여행자가 산 크리스토발 성당 앞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며 기타를 치고 있다.
미국의 몇 곳을 제외하면 세계 어디에서나 산 꼭대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차지이다. 도시 중심은 어디나 가장 낮은 곳에 있다. 거기엔 오랜 세월 쌓여온 권위와 황금으로 치장된 성당이 있고 부자들만 갈 수 있는 식당도 있으며 부자들만 살 수 있는 저택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고 그들이 갈 수 있는 성당도 높은 곳에 있기 마련이다. 멀리 건너편 산 동네를 보면서 그들의 천국은 참으로 높고 높은 곳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색깔들로 이방의 방문객을 설레게 했다. 그 색깔들은 멕시코의 역사를 말해주기도 하고 이 곳 만의 독특한 저항정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긴 색깔이란 다른 것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어디나 가난한 사람들은 높은 데로 올라간다. 저 아름다운 원색의 집합체는 그곳이 천국처럼 보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