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구경을 가는 지프차는 새벽 3시에 사람들을 태우고 소금 벌판으로 출발했다. 이 차를 타면 별구경을 하고 일출의 장관까지 보고 온다고 해서 신청한 것이다. 별 촬영을 즐기는 사람들은 지금 내가 참가한 별과 일출을 보는 투어와 일몰과 별을 보는 투어 두 가지를 신청해서 간다. 어쨌든 우유니에 왔으니 우유니를 대표하는 구경거리를 놓칠 수 없어 일단 별과 일출을 묶은 투어를 신청했다. 함께 간 양군도 사진을 좋아하는 청년인데 사진을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촬영 자체를 매우 즐겨 나와는 좋은 동지가 되었다.
캄캄한 소금 호수에 사람들을 내려놓은 가이드는 나름대로 촬영에 필요한 장비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는 매우 방해가 되는 물건이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강력한 빛을 하늘 꼭대기까지 쏘아대는 플래시였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셔터를 누르려 하면 한 떼의 젊은이들이 가이드와 함께 플래시를 비추면서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어둡지만 아득하게 산도 보이고 마을의 불빛도 보였다. 놀라운 것은 이 넓은 호수의 깊이가 발목도 제대로 잠기지 않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 넓은 땅이 완전히 수평면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경이롭지 않은가?
별이 비친 이 넓은 호수는 발목도 채 잠기지 않을 만큼 얕다.
캄캄한 밤이지만 소금호수는 아득히 먼 곳까지 넓게 이어진 바다 같았다. 하늘에 가득 떠있는 별들이 호수 위에까지 사진이 아니라도 내려앉았다. 물에 비친 별을 보고 감탄했던 오래전 인도네시아 유적 답사 생각이 났다. 쟈바의 어느 산골 마을에서 자다가 소변 때문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었다. 마당 앞의 논 바닥에 별들이 가득 떠 있었다. 나는 물에 비친 별을 그때 처음 보았었다.
지금 보는 것은 논에 비친 별빛과는 질량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유니 하늘의 별들이 내려온 곳은 호수라고는 하나 넓은 바다였다. 이렇게 넓은 바다에 별들이 들어 있다니 도대체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그 별들이 눈앞에 있었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카메라를 얹었다. 몇 번 테스트 샷을 해보고 다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때 갑자기 몸이 너무 춥다는 생각을 했다.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타임랩스 촬영을 위해서는 차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함께 간 사람들을 피할 수 있는데 혼자 떨어져서 단 30분이라도 버티기가 어려울 듯싶었다.
타임랩스를 포기하고 차로 돌아왔다. 차 의자에 기대서 그냥 하늘을 보았다. 이런 곳에 와서 카메라 앞이 아니라 자동차에서 혼자 별을 보고 있다니. 이따금씩 밝은 플래시 빛줄기가 눈앞에 왔다 갔다 했다. 그것을 보면서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한 편이 생각났다. 설경구와 전도연이 한창때였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다.
영화는 사고로 지하철이 터널 안에서 멈추고 전기가 꺼지면서부터 시작했다. 갑자기 어두운 전동차 안에서는 스마트폰의 불빛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것은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기계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체로 등장한 것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나는 그 장면에서 밤하늘 가득한 별들의 잔치를 떠올렸었다. 영화의 주인공 전도연은 학원 강사고 설경구는 은행원이다. 전도연은 설경구를 짝사랑하게 되고 은행의 CCTV 앞에서 설경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이 장면을 며칠이 지난 후 설경구가 TV 화면 속에서 확인을 한다. 그러나 전도연이 하는 사랑의 고백을 들을 수는 없다. 과거의 전도연이 화면 속에서 미래의 설경구를 보면서 서로 엉뚱한 대화를 이어간다. 설경구와 전도연은 서로 다른 별에 살면서 어긋난 시간의 차이를 겪는 듯 CCTV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오간다.
별이 뜬 채로 여명이 물든 하늘과 호수
오한이 들어 떨리는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별을 즐겼다. 내가 설경구라면 저기 보이는 별빛 중에는 전도연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전도연의 별빛은 얼마나 오래전에 출발한 것일까? 엄청나게 오랜 과거를 현재의 내가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신비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금 저 별에 있는 생명체가 지구를 본다면 그것 또 한 엄청난 시차를 가진 과거를 보는 것일 게다. 인류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지구를 보고 있겠지.
잠깐 잠이 들었었는지 눈을 떠보니 밖이 훤해지고 있었다. 별이 뜬 채로 하늘과 호수의 경계선에 붉은 기운이 물들기 시작했다. 별이 떠 있는데도 햇빛의 붉은 기운이 지평선에 드리웠다. 별빛과 햇빛이 한 자리에서 들어오고 나오는 교차의 순간이었다. 별들이 점차 사라지고 호수면과 하늘색은 완전하게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참으로 단순한 풍경 속에서 자연에 감동한다. 멀리 하늘의 경계에 구름이 끼어 해는 제 모습을 감춘 채 하늘 위로 떠 올랐다.
해가 뜬다. 하늘에도 사람에도 붉은 기운이 물든다. 사진 속의 젊은이는 쿠스코에서부터의 여행 친구 양군이다.
해가 뜨면서 몸이 좀 따뜻해졌다. 차에 흔들리면서 다시 시내로 들어왔을 때는 8시가 넘어 있었다. 아침도 먹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오한을 다스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점심때가 지나 있었다. 여행 중에 이렇게 큰 몸살을 앓는 것은 비상약을 준비하면서도 실제로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저녁이 오고 호텔 부엌에서 뭐 먹을 것을 만들까 하다가 다시 방으로 올라왔다. 양군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를 날렸다. 양군이 먹을 것을 가지고 와서야 겨우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호텔 밖 큰길에서는 장이 서고 있었으나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늘 하루 무슨 계획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저녁을 먹고 약도 먹고 나니 열도 떨어지고 살만 했다. 내일은 칠레의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까지 2박 3일간의 단체 투어를 해야 한다.
한낮에 보는 백색의 우유니
우유니에서 칠레의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까지는 장거리 버스를 이용하면 약 12시간에 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전개되는 안데스의 경관을 즐기려면 2박 3일의 투어를 신청해 가는 것이 좋다. 투어는 우유니 사막의 새로운 경관을 즐기면서 시작되었다.
여행 45일째, 2019년 4월 5일, 어젯밤 푹 잔 탓인지 열이 떨어지고 몸이 개운해졌다. 그리고 2박 3일의 칠레행 투어 차량인 토요타 SUV에 몸을 실었다. 차는 두 대로 일행에는 가이드와 쿡을 포함하여 열 명이다. 처음 차가 선 곳은 어제 제대로 보지 못한 물이 없는 우유니 소금호수였다. 물이 없는 소금호수는 소금 사막이다. 소금 사막은 흰 빛의 잔치였다. 모래 벌판으로 이루어진 곳도 있으나 그 모래흙 역시 소금 덩어리다.
부르기를 소금호수라 하지만 이곳은 물이 없는 건기에는 소금밭이고 비가 오는 우기에는 소금 호수가 된다. 건기의 소금밭은 육각형의 결정체 모양이 넓은 소금밭을 덮고 있어서 그 또한 장관을 이루는데 내가 갔을 때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우기라고 해도 고도가 약간 높은 일부 지역은 물이 없다. 우유니 소금호수를 조금 지나면 흰색의 소금 벌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마치 시베리아의 설원에 온 듯하다.
두 연인이 백색 소금밭에서 평생 못 잊을 추억을 만들고 있다.
약 4만 년 전에 이곳에는 거대한 염호가 있었다고 한다.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여러 과정을 거쳐 물이 마르면서 지금과 같은 소금밭이 여러 개 생겨났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우유니 소금밭이다, 이전에 로스 안젤레스에 잠시 머무를 때 캘리포니아의 사막에서도 이러한 소금밭을 본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넓은 소금의 바다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 소금밭은 고저차가 거의 없이 평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기에 물이 차는 경우에도 전체의 호수 깊이가 평균 1미터 내외라고 하니 세계에서 가장 얕은 바다 같은 호수라 할 것이다. 소금호수 한가운데는 이러한 지질학적 역사를 보여주는 섬이 하나 있다는데 이번 일정에는 포함되지 않아 가볼 수 없었다.
우유니 소금밭의 다양한 색깔들
차가 소금밭 한가운데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곳은 우유니 깃발 광장(Plaza de las Banderas)이라는 곳인데 소금 벽돌로 지은 작은 집이 한 채 있다. 간단한 차와 음식을 파는 이 집 옆에는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자기 나라의 국기를 게양해 놓은 장소가 있다. 깃발 광장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붙은 것 같다. 세계 여러 나라의 깃발이 휘날리는데 거기에는 태극기도 한몫 거든다. 요즘은 우유니 시내의 호텔 중에서 이렇게 소금덩어리를 벽돌 모양으로 채취하여 지은 곳이 더러 있다.
건물에서 좀 떨어진 벌판 복판에는 소금 벽돌을 이용하여 만든 커다란 조형물이 하나 있다. 우유니에서 매년 벌어지는 다카르 랠리 즉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을 이용하여 험악한 지형을 횡단하는 경주를 기념하는 기념물이다. 볼리비아는 이 경기를 유치하여 세계에 우유니를 소개하고 관광수입을 올린다.
소금밭에 휘날리는 여러 나라의 국기들과 그 속에서 한 몫하는 태극기
소금으로 지은 휴게실 안에는 역시 소금으로 만든 인물상이 손님을 맞이한다. 오른쪽은 소금벽돌로 쌓은 다카르 랠리 자동차 경주 기념탑이다.
우유니 소금밭에서는 지금도 상당한 양의 소금이 채취되고 수출된다.
공동묘지로 간 기차들
우유니 시가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막에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끄는 곳이 하나 있다. 기차의 공동묘지이다. 나는 가는 곳마다 그 지역의 무덤에 관심을 가지고 찾는 경우가 많았지만 기차 공동묘지는 그리 큰 관심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무척 흥미 있어하는 듯했다.
볼리비아가 광산업이 한창 성행할 때 이곳은 볼리비아와 태평양을 연결하는 철도 수송의 중요한 기지였다고 한다. 주요 광물은 금, 은, 주석 등이었다. 그러나 이미 몇 차례 말한 바와 같이 태평양 전쟁으로 태평양의 항구를 칠레에 빼앗긴 볼리비아는 광물 수송의 길이 끊어지고 철도도 자연 폐기된 곳이 많아졌다. 당시 우유니는 철도교통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기차의 수리 공장도 가지고 있었는데 열차 수송이 중단되면서 모두 문을 닫게 되었다. 그때 우유니에 있었던 기차들이 여기 이 사막에 버려진 기차들이라는 것이다.
폐기된 기차 위를 사람들이 걷는다. 무슨 예술 퍼포먼스를 하는 듯하다.
볼리비아를 여행하면서 수 차례 태평양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관련 유적을 보고 했지만 여행길이 길어질수록 이 전쟁이 볼리비아에 준 피해는 정말 여러 방면에 걸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막에 버려진 기차들은 소금기 가득 품은 바람에 쓸려 여기저기 녹이 슬고 철판들이 떨어져 나가 마치 수백 년 전의 고철덩이처럼 보였다. 기차 철도가 지나가는 나지막한 언덕 뒤로 보이는 기차의 잔해들이 마치 구름 위를 달리는 듯 보였다. 그 위에 젊은이들이 올라가서 걷는 모습은 천국행 기차를 타고 하늘로 가는 듯한 착시가 일어났다.
기차의 공동묘지를 통과하는 철도가 마을로 들어간다. 오른쪽은 기차 공동묘지의 기념품상.
사람들은 무덤을 쓰기는커녕 땅에 묻지도 않았지만 이곳을 기차의 공동묘지라 불렀다. 공동묘지가 관광자원이 되는 예는 그리 흔치 않지만 이곳은 이제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그것도 녹슨 기차의 폐기물들이.
기차의 공동묘지를 지나 철길이 지나는 마을은 이제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파는 것으로 살아간다. 마을 옆의 철도 주변은 폐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 나고 기념품 시장 옆 골목에는 언제 적에 폐기된 것인지 녹슨 트럭 한 대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이곳은 기차뿐 아니라 기차의 전성시대에 사용했던 모든 폐기물들이 이제 관광상품이 되어 있는 기이한 곳이기도 했다.
마을 안의 젊은 엄마가 아기를 업고 재운다. 그 골목에 이제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잘 모셔진 녹슨 트럭 한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