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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Apr 08. 2022

황량한 고원의 철도 도시, 우유니1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55

기차의 도시


라파스에서 우유니로 가는 여행은 한국인 청년 양군과 함께 했다. 양군을 만난 것은 페루의 쿠스코에서였다. 나는 3박 4일의 잉카 트레일을 떠나기 전날 쿠스코 주변의 신성한 계곡의 일일 투어에 참가했다. 내가 탄 미니버스에는 중국인 청년들이 여럿 있었다. 어디선가 버스가 잠깐 섰고 중국 청년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중 한 청년이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여행 중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입이나 풀어볼 겸 내 뒤에 앉아 있는 중국인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말을 붙였다.


   "중국에서 왔나요?" 아마도 중국어로 물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인입니다." 영어로 대답한 청년은 뜻 밖에도 한국사람이었다.


이번에 멕시코에서 시작된 나 홀로 여행에서 한국인을 만난 것은 멕시코에서 만난 단체 여행객들을 제외하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는 나이 차이는 많았으나 금방 친구가 되었다. 양군과 나는 칠레의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까지의 경로가 겹치는 곳이 많았다. 여행지에서 띠엄띠엄 만나긴 했으나 함께 버스를 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밤새 달려온 버스는 아홉 시간 넘어 걸려 새벽 6시경 우유니에 도착했다. 도시의 풍경은 한국의 60년대 읍 정도로 보였다.  쌀쌀한 날씨의 새벽길을 걸어 예약한 호텔을 찾아들었다. 호텔은 우유니 소금 벌판의  소금을 잘라 벽돌대신 사용한 수금 호텔이었다. 양군과는 밤에 별구경을 함께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중심지 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가지 끝이 보인다. 자동차 길에 시멘트 블록이 깔려 있다.
우유니의 썰렁한 풍경

밤 버스의 피로를 풀고 길거리로 나서 만난 우유니의 거리는 썰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도시를 관통하는 큰길을 벗어나면 대부분의 도로가 비포장이었다. 이따금씩이지만 차가 한 대 지나가면 뿌연 먼지가 앞을 가렸다. 마치 서부 영화의 세트장을 연상케 했다.


기차의 공동묘지로 유명한 우유니는 실제의 기차역이 시내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이다. 북쪽에 있는 수도 라파스와 동쪽의 포토시, 남쪽의 아르헨티나와 마주하고 있는 비야손 그리고 칠레의 칼라마에서 오는 철도가 사방에서 만나는 남미 교통의 요지이다. 그래서 이곳은 철도가 도시의 상징물처럼 여겨지고 있고 길거리에서도 철도와 관련된 조형물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중심도로의 뒤편으로 철도 박물관이 있었으나 문을 열지 않아 보지 못하였다.

 

도로에 설치된 철도 관련 조형물과 기차에서 나온 폐기물로 만든 정크 아트
우유니 역 풍경. 역 한쪽으로 자동차 도로가 지나간다.

 

넓은 포장도로의 뒷길은 모두 비포장 도로로 되어 있었다. 뒷길을 여기저기 걷다가 철도 박물관을 만났는데 문을 열지 않았다. 대부분의 뒷길도 4차선 도로 정도로 넓었다. 내 앞에서 큼직한 SUV 차량 한 대가 서면서 그 안에서 어린 학생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 차량이 어느 학부모의 차량인지 아니면 학생들을 등하교시키는 일종의 스쿨버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차량의 크기에 비해서 많은 어린이들이 타고 있었던 듯하다. 인도 한쪽으로는 여교사가 어린 학생들을 줄 세워 귀가시키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린 학생들. 앞에 보이는 짚차로 학생들이 귀가하고 있다.



대문 옆 신당과 창문 꾸밈의 아름다움


골목을 다니면서 흥미 있는 풍경은 창문에 설치한 장식물들이었다. 창틀 안쪽으로 예쁜 화분이 여러 개 놓여 있고 화분 안쪽에는 커튼이 쳐 있어서 방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게 하였다. 그런데 이 커튼은 밖에서 방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목적이 아니라 화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배경인 듯했다.


그래서 창틀의 화분들은 오로지 길가는 사람들에게 골목을 예쁘게 꾸미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사실 이런 골목의 풍경은 오래전 파리를 여행할 때 골목길에서 흔히 만나던 것이다. 그때 보았던 파리의 골목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꽃화분으로 꾸민 창틀 밑에 신당으로 보이는 작은 나무집이 보인다.


그런데 우유니의 골목(골목이라기엔 너무 넓었지만)에서 만난 이 창문 꾸밈은 골목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그로 인해 그 집이 특별히 아름답게 보인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한 창문의 꾸밈은 오랜동안의 관습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었다. 창틀 장식과 함께 눈에 뜨인 것은 출입문 옆에 놓인 장난감 같은 작은 나무집이었다. 처음에 그것을 보았을 때는 그것이 개집인 줄로 착각했었다.


그런데 작은 지붕 위에 십자가가 서 있었고 십자가는 조화로 싸여 있었다. 또 집의 양쪽에는 커다란 양초 장식이 서 있어서 필요할 때는 불을 붙이도록 되어 있었다. 이 집은 신을 모시는 집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우리로 치면 대문 옆에 작은 신당을 모신 격이라 할 만했다.


출입문 위에 종이를 오려 만든 하트 모양의 꽃 장식이 붙어 있다. 복이 들어오게 하는 기복적 의미로 읽혔다.


이와는 다른 또 다른 문의 꾸밈을 볼 수 있었는데 대문 위에 예쁜 종이 자르기 공예로 만들어진 하트 모양의 종이꽃이 붙어 있는 집도 있었다. 아마도 복이 들어오게 하기 위한 일종의 신앙 행위일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장식들은 그냥 장식으로 보이지 않고 어떤 신앙적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여행에서 돌아와 이것저것 찾아보았으나 알 수 없었다. 뭐든지 궁금하면 현장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해발 4000미터 가까운 곳에서 숨을 헐떡이며 다녀야 했으니 여행 중에 그런 궁금증까지 풀기에는 보아야 할 것들도 많고 피곤하기도 했다.


50년도 더 묵은 백열 전선의 기억


우유니 시내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한 나절을 보내다가 어떤 넓은 광장처럼 만든 로터리를 만났다. 로터리 가운데에는 무기를 든 병사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동상을 받치고 있는 받침 부분은 군함처럼 보였다. 태평양 전쟁의 영웅 들인가 해서 가까이 가보니 '차코의 영웅들(Heroes del Chaco)'이란 스페인어로 쓴 동상 제목이 있었다. 이것은 태평양 전쟁이 아닌 차코 전쟁의 영웅들이었다. 그리고 여행 중 잊고 있었던 '백열전선'이란 영화가 생각났다.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간의 차코 전쟁을 기념하는 '차코의 영웅들' 동상


내게 남아메리카라는 대륙의 존재를 깨닫게 해 준 것이 바로 '백열전선'이라는 영화였다. 그 이전에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어떤 과목에서도 남아메리카라는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것은 오대양 육대주의 이름을 외울 때를 제외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러다가 영화에 미쳐 살던 대학 시절의 어느 날 우미관이라는 종로 2가 뒷골목의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만났다. 35미리 스탠더드 화면의 이 흑백영화는 너무도 강렬하여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라스트 신이 생생하다. 남미 여행의 계획을 세우면서 처음 머리에 떠오른 것은 바로 이 영화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어느 나라의 영화인지 내용의 전쟁은 어느 나라의 전쟁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 '백열전선'을 아무리 검색해도 그런 영화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찾아낸 것이 동국대학교 신문에 실린 짧은 영화평이었다. 영화는 누벨바그의 대표적 감독 루카스 데마레의 백열전선이었다. 영화의 원 제목은 '갈증(La Sed)'이었고 본래의 원작 소설은 '사나이 중의 사나이(Hijo de Hom-bre)'라는 제목이었다. 그 후 원제로 검색해서 알아낸 것이 볼리비아가 대서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차코 지역을 빼앗기 위해 파라과이와 벌인 차코 전쟁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차코 전쟁은 1932년부터 1935년까지 3년간 벌어진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간의 전쟁이다. 결국 미국이 압력을 행사한 끝에 차코 지역을 분할하여 지배하는 협상을 해서 전쟁을 끝냈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 양국은 남미 최빈국으로 전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내 앞으로 어린 여학생 하나가 지나갔다. 이 학생들에게 차코 전쟁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중,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열사의 사막에 고립된 한 부대, 마실 물이 없어 모래에 박힌 나무뿌리를 캐내 씹어 보지만 석유냄새만 날 뿐이다. 이 부대원들에게 물을 공급하려고 물 트럭을 몰고 사막을 횡단하는 또 하나의 병사가 있다. 트럭은 바퀴가 열로 모두 찢어지고 타이어에 풀을 뜯어 채우면서 겨우 고립된 전우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지만 전우들은 이미 모두 죽은 뒤였다. 두 손을 핸들에 묶고 천신만고 끝에 온 물차의 운전병도 도착했을 때는 목숨이 다 했고, 차는 큰 고목의 줄기에  부딪치면서 정지했다. 정지한 순간 운전대 앞의 운전병은 핸들 위에 쓰러지고 머리가 클락숀을 눌러 마른나무들만 서 있는 텅 빈 사막에 클락숀 소리가 길게 울린다. 백열전선의 라스트 씬이다.


멕시코에서 이곳 우유니에 올 때까지 '백열 전선'은 다시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 영화를 되살려 낼 만한 어떤 것도 만나지 못했다. 차코는 파라과이와의 접경지역으로 내 여행길에서 동쪽으로 많이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곳 우유니의 휑한 사거리에서 차코의 영웅들을 만난 것이다.


우유니 시내에서 만난 몇 가지 풍경들


거리에서는 철도 노동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철도 박물관의 외관
길은 어디나 공사 중처럼 보였고 흙먼지와 쓰레기들이 바람에 날아다녔다.
시내 복판 공터에 서커스단이 천막을 쳤다.
서커스 단원 하나가 공연 준비에 열중이다.


길 가다가 공치는 소리에 들어가 본 스쿼시 경기장. 철도 노조에서 만든 것이라 한다.
기차역 근처에는 이처럼 폐기된 열차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다.

#볼리비아 #우유니 #볼리비아의 철도 #차코전쟁 #영화 백열전선 #영화 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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