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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Apr 02. 2022

안데스의 함지박, 라파스 2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54

종탑에서 본 라파스


라파스에서의 둘째 날은 우유니 사막으로 떠나는 날이지만 그것은 밤차로 가는 것이니 하루 동안 느긋하게 쉴 수가 있다.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어제 봐 두었던 마녀 시장 옆의 산 프란시스코 성당을 보기로 했다. 라파스를 대표하는 소위 라파스 대성당은 무리요 광장 옆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다. 어제 무리요 광장에 갔을 때는 숨도 많이 차고 피곤하기도 했고 또 광장 한쪽에서는 공사가 진행 중이서 어수선했었다. 그리고 관공서가 늘어선 광장 한쪽 코너에 서 있는 성당은 20세기의 근대 건축물이라서 그랬는지 그리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무리요 광장의 주인공인 혁명 영웅 무리요 장군은 광장 옆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아닌 저 아래쪽 산 프란시스코 대성당에 묻혀 있다. 성모 마리아 성당과는 달리 산 프란시스코 대성당은 우람한 종탑과 함께 16세기 건축물의 권위로 라파스의 무게를 잡고  서 있었다.

 

짙은 비구름이 낀 아침의 산 프란시스코 대성당
바로크 건축의 화려한 기둥이 오랜 도시의 무게를 잡고 있다.


성당 앞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뿌리고 있었다. 성당 옆 골목의 노점상들은 비로 인해 전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있었다. 오전인데도 성당 앞은 꽤나 복잡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성당의 추녀 밑에 서서 빗방울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이 추녀 끝이지 바로크 양식의 높은 성당에 비 피할 추녀가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성당 벽에 붙어 서서 비가 멎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를 피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일반 성당 건축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얼굴들이 보였다. 이 지역에 조상 대대로 살아온 원주민의 얼굴이다. 코파카바나의 검은 성모에서 보았던 남미 가톨릭의 현지화 정책의 산물이다.


건물의 기둥 밑에 새겨진 얼굴에는 남미 원주민의 얼굴이 보인다.


성당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니 성당의 큰 대문 안쪽과 밖의 광장 쪽으로 걸인들이 여럿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한 남자는 문지방에 걸터앉아 한쪽 발은 성당 안으로 다른 발은 성당 밖으로 놓고 있었다. 어느 쪽에서 도움의 손길이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성당 안에는 월요일 오전인데도 무슨 미사가 거행되고 있었다. 아마도 특별한 행사가 있는 듯싶었다. 성당 건물의 오른쪽으로 박물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나는 박물관이라 표기된 문으로 들어갔다. 입장권을 사니 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여성 가이드가 다가왔다. 이곳은 가이드와 함께 관람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가이드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니 아래로 미사가 진행되는 성당 내부가 보였다. 박물관은  진열실을 제대로 갖춘 것이 아니라 성당 건축의 공간을 이용하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1층 회랑의 복도 한쪽은 복도 밑에 깔려 있는 본래의 자갈 깔린 바닥을 드러내 보여주어 이 성당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옛날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성당 회랑
2층 회랑 아치 문을 통해서 본 회랑 전경. 오른쪽의 녹색 회랑 벽호가 맞은편 실제 회랑과 멋지게 어울렸다.


이 성당은 본래 수녀원이었다. 1548년에 건립되었다고 하지만 그 이전인 1547년에 설립되어 있었다고 한다.

1540년대 라파스 지역에 들어온 열두 명의 수도사가 있었는데 그중 프라이 프란시스코 데 몰랄레스와 프라이 알코세르 수도사에 의해 천사의 성모라는 이름의 수도원이 설립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743년 눈사태로 무너진 것을 다시 개축한 것이다. 또 종탑은 19세기 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성당 내정에서 본 하늘. 뒤로 중앙 돔의 일부가 보인다.


성당과 수도원의 이름에 프란시스코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은 위의 프라이 프란시스코 데 모랄레스와는 관계가 없다. 이 성당은 이태리의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만든 성 프란치스코에게 바친 것이어서 이름이 그렇게 붙은 것이다.


관람자에게 개방된 1층의 내정과 회랑에는 성당에서 출토된 여러 건축자재나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내정에서 위를 보면 성당의 중앙 돔 일부와 종탑들이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눈에 들어온다. 가이드를 따라 어두운 바위터널 속 급경사의 계단을 올랐다. 어두운 바위 터널을 통과한 후 당도 한 곳은 성당 지붕 위의 종탑 밑이었다. 종탑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종들이 아치형 창을 배경으로 매달려 있었다.


종탑으로 오르는 터널과 종탑에 매달린 종들


성당의 지붕 위에 올라와 보면 성당 아래에서 볼 수 없는 풍경들을 만난다. 성당의 중앙 돔 위에는 성당 안 궁륭형 천장으로 빛을 비추기 위해 천장 꼭대기에 광창을 뚫었고 그 위에 비를 막기 위한 작은 집을 세웠다. 지붕 위에서 보는 그 광창 위의 집도 네 개의 기둥 위에 또 돔을 얹었는데 돔 위의 피뢰침이 아름답게 장식된 십자가로 서 있었다.


돔의 십자가 뒤로 멀리 함지박 모양의 라파스 변두리 급경사에 지은 집들이 구멍 난 붉은 벽돌을 무질서하게 쌓아 올린 듯 위태롭게 보였다. 그러나 그 벽돌의 구멍마다 라파스의 가난과 힘든 삶들이 콕콕 박혀 있는 듯 했다.


성당 지붕 위에서 본 그 가난하고 고된 삶들은 어처구니 없게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이 성당은 저들의 삶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궁금했다.


성당 중앙 돔 뒤로 라파스의 달동네들이 상자를 겹쳐 쌓은 듯 위태롭게 보인다.

   

성당 앞 프란시스코 광장은 항상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린다. 이날은 어린이를 위한 행사가 열렸다.


안데스의 달


라파스 시의 남쪽 변두리의 한쪽 구석에 흙덩어리로 빚어 놓은 듯한 골짜기가 있다. 달에 갔다 온 미국의 우주비행사가 이곳에 와 보고 마치 달 표면 같다고 해서 달의 계곡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걸 보고 달 같다고 운운한 것은 우주비행사의 지나친 과장인 듯했다. 내 보기에는 중국 쿤밍의 석림을 축소한 듯 보였다. 어쨌든 이곳은 나에게는 그리 특별한 풍경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앞의 흰 바위들이 달의 계곡의 일부이고 뒤에 붉은색 바위산이 병풍처럼 서 있다.

더구나 흐린 날씨는 계곡의 붉은색 흙기둥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더구나 달의 계곡 사이사이로 끼어들 듯 자리 잡은 주택지역으로 인해 달의 계곡은 더 이상 신비한 달의 계곡일 수 없었다. 그렇게 달의 계곡은 계곡 사이까지 비집고 들어오는 도시의 끝자락이 더 나의 눈길을 끌었다. 달의 계곡은 여기서 삶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달이 아닌 그저 삶의 터전을 방해하는 진흙과 모래의 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이따금씩 구름장 사이로 쏟아지는 빛 줄기가 진흙의 모래탑들을 달인 듯 착각하게 한다.
진흙과 모래의 돌기둥 사이로 새들이 날아  다닌다


나는 달의 계곡 자체보다 뒤쪽으로 우뚝 선 붉은 바위 산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이 붉은 바위산은 높고 길게 펼쳐진 산수 병풍처럼 아름답게 서 있었는데 달의 계곡으로 인해 사람들의 주목을 그리 많이 받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병풍 옆으로 멀리 라파스의 고지대 능선 위에 거대한 도시의 끝이 올라타고 있었고 그 사이로 케이블카들이 오르내리는 것이 보였다.


하늘을 향해 불끈 솟아오른 사암의 탑 위에도 사막성 식물이 자라고 있다. 오른쪽은 달의 계곡 맞은 편의 붉은 바위 절벽을 배경으로 조깅을 하는 관광객
산 능선을 올라타 듯 점령해버린 라파스 시가지가 달까지 올라올 기세다. 앞쪽 능선 오른쪽으로 케이블카가 오르내리는 것이 보인다.

#라파스 #산 프란시스코 성당 #달의 계곡 #볼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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