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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겨울 Mar 26. 2021

말하는 대로 정하는 대로

그어놓은 선에 대하여 :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beep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더라도 각자 애인이 생기면 멀어진다고 말했던 상당히 가까웠던 이가 있다.

약 8명의 친구 무리에서 그는 유독 모임 참여율이 높았으며 생인 선물로 고가의 선물 턱턱 내놓기도 하였다. 


나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처음 챙겨주는 생일에 이리도 비싼 선물을 내주어도 괜찮은지, 원래 생일 선물은 매년 점점 더 가치 있는 것을 챙겨주어야 하는데 내년 생일에도 감당 가능한지 말이다.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친하더라도 어차피 다들 남자친구 여자친구 생기면 이제 슬슬 만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일선물은 아마 이번 한 번만 왔다 갔다 할 것이라서 이 정도는 괜찮다고. 


모임에 그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했던 그였기에 나는 살짝 의아함을 느꼈지만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가 나보다 3살이 더 많고 나보다 훨씬 많은 대외활동 경험이 있었기에 진짜 그런가보다하고 넘겼을지도 모른다.)


나와 같이 초라한 대학생이던 그는 국내 시가총액 상위권에 드는 대기업에 멋지게 취직하였고 몇 개월간 소개팅을 전전하더니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전해 들었다.


... 그리고 그는 그가 말했던 것처럼 정말 우리와 연락을 끊었다.



사실 나는 그가 대기업에 들어간 이후 연락을 잘 안 해서 여자친구 생기기 전과 후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나와 달리 그와 연락을 이어가던 친구들에게 듣기로 그의 태도는 '소홀' 그 자체라는 것 같았다. 그가 여자친구가 생기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어렴풋이 짐작했던 나는 그냥 '아 역시는 역시였구나'라고 느꼈을 뿐.  


그렇게 약 2년 동안 정말 가족보다 더 자주 봤던 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는, 그가 말한 대로 여자친구가 생기자마자 우리를 떠나갔다.




친구들보다 남자친구와의 약속이 더 많아 보이는 친구가 있었다. 그녀에게 남자친구란 어떤 의미일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나에게 그녀는 나름 소중한 존재였기에 그녀가 남자친구에게 너무 많은 할당량을 주는 것은 아닐지 걱정을 하기도 하였고, 내 눈에는 완벽해 보이는 그녀였기에 옆에 있는 남자친구가 썩 맘에 들어 보이지 않기도 했다.


이렇게 나름 사서 걱정할 정도로 소중했던 그녀였지만 그녀와도 서서히 멀어졌다.

굳이 이유를 꼽아보자면 나의 태도가 문제일 것이고 나의 태도가 어떻게 왜 문제냐고 묻는다면 그냥 내가 조금씩 떨어져 나간 것 같다.


우리 사이에는 서로의 애인의 이야기가 너무 많았고 더 이상 애인이 없어진 나는 혹시 그녀의 입에서 그녀의 애인의 이야기를 듣게 될까봐 무서웠다. 친구의 행복한 연애가 배가 아픈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조심스럽게 변명을 해보자면 부럽기보다 무서웠다. 아니 두려웠다. 나는 지금 연애를 해서도, 감히 하고 싶어도 안 되는 상황이다.

나는 현재 애인의 퍼센티지가 상당히 큰 그녀와의 이야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멀어진 나를 보고 그녀는 아마도 결국 자신의 옆에 남아있는 사람은 남자친구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치 내가 이별을 겪을 때마다 결국 남는 은 친구임을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이별 후 매번 친구들을 위해 이 한 몸 다 바치리라 결심하는 것처럼.


고마운 것이 많은 친구였지만 나는 그렇게 그녀의 남자친구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그녀의 손을 천천히 내려놓게 된 것 같다.




나 역시도 확고히 정해놓은 선과 기준이 있다.

나는 '다 비켜. 애인이고 뭐고 친구가 최고야'라고 말하며 이를 원칙으로 정해놓은 사람이다.


그래서 애인이 생겼다는 이유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애인에 있어서 나와 우선순위가 다른 이와 멀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며 오지랖 넓게 이를 안타까워하곤 하는데 분명 이러한 나를 보고 혀를 끌끌 차는 이들이 분명 있으리라.


그들에게 반문하자면 나도 처음부터 이런 원칙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다. 나 역시도 인소, 빙의글 따위들로 연애를 배우면서 엑소 같은 남사친들이 모두 나를 좋아하는 상황에서 백현 같은 남주를 골라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졌던 적이 있다. 제일 친한 남사친이지만 남몰래 나를 오랫동안 짝사랑한 백현 같은 남자친구와 10년 정도 연애하다가 결혼하는 그런 미래를 분명 꿈꾸기도 했다.


단지 현실이 녹록지 않아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저런 원칙을 세워놓게 되었을 뿐. 어찌 보면 선이란 것은 후천적으로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일 수도...


보잘것 없는 나의 과거 경험들을 돌이켜보면 내가 정해놓은 선 때문에, 연애를 대하는 나의 태도 때문에 이렇게 형편없는 연애만 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당분간은 이러한 태도를 유지할 것 같다. 지금 현재의 나는 연애에 쏟을 시간적 물적 여유도 없을뿐더러 최선을 다할 마음도 없다.


무엇보다 괜히 너무 많은 것을 내주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내가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릴까봐, 너무 아플까봐 걱정이 된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1순위로 놓고 애인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그냥 지나가는 여친1, 2 정도가 내가 바라는 바이다.


그렇다면 나는 또 계속해서 이런 매가리 없는 연애만 해야 한다는 건데... 아 그건 또 싫은데... 그렇다고 내 삶의 빅데이터에 기반하여 정해놓은 선을 고치는 건 더 싫은데...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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