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넷과 인터뷰기사
건축예술은 공간을 캔버스로 삼아 작품을 완성한다. 건축가의 손을 거치면 공간은 인간에게 실용성을 부여해주고 이따금 아름다움을 선물해준다.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가 설계한 엑스포 남문 광장이 바로 그 캔버스다. 캔버스 안에 공간과 주변 자연의 조화를 창출해내고, 그 틀 안에 다시금 삶의 열정과 행복을 채워 넣는다는 그가 ‘삶을 짓는 건축가’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임 : 엑스포 남문 광장을 설계하면서 가장 크게 염두에 두었던 의도는 무엇인지요?
김: 엑스포 남문 광장은 본래 1993년 행사 이후 방치되어 있다가,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기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그 쓸모가 자생적으로 생겨난 셈입니다. 하지만 겨울의 찬바람과 여름의 뙤약볕을 피할 수 없는 허허벌판이 광장다운 광장으로 기능하기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지요. 게다가 주변에 이응노 미술관과 대전시립 미술관, 청소년 수련관, 한밭 수목원 등이 들어서서 그 일대가 대전을 대표할만한 문화인프라 집적지로 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각 시설은 물론 이 일대 도시공간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지는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각 시설의 상호 연계 및 융합방안으로 야외공연장을 포함한 미디어 큐브(Media cube)와 45mx45m 크기의 높이 21m의 무빙쉘터(moving shelter, 움직이는 그늘막) 3개를 만들어 낸 셈입니다.
하나의 무빙쉘터 안에 시민 천 여명이 커다란 그늘 아래서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상상해보십시오.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 합니다. 그렇게 무빙쉘터는 시민들의 삶의 질에 구체적으로 기여하기 위해 고안된 무대요, 틀이자 배경입니다. 그렇게 잘 비워진 공간(광장)이 다양한 활동으로 잘 채워질 수 있도록 한 최소한의 공간으로서의 장치일 뿐, 무슨 거대한 구조물 자체나 조형물을 설계한 것으로 보는 관점은 매우 편협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임: 그렇다면, 도시공간적인 측면에서 광장다운 광장은 어떠해야 하는지요? 그런 관점에서 엑스포 광장의 성과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신다면...
광장이란 비움을 극대화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그냥 비워졌다고 기능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첫 째는 불특정 다수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쓸모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욕구와 문화 활동 같은 것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프라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엑스포광장의 그늘막이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엑스포 광장에서는 인라인 스케이트나 자전거 등의 스포츠, 레저를 포함하여 보다 다양한 시민들의 욕구를 담아내는 기능을 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쓸모가 크게 업그레이드된 셈입니다.
두 번째로는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보장하려면 광장은 특정 기능을 목적으로 하는 닫힌 시스템보다는 다양한 기능의 수용을 위해 열려있는 시스템으로 구축되어야 합니다. 이른바 가변성과 공공성, 융통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외국에서 명품광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곳을 보면 축제 기간 동안에 광장은 이벤트 공간과 객석처럼 특별한 환경으로 변신했다가,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일상의 모습으로 되돌아옵니다. 주말 오전에는 커다란 벼룩시장이 섰다가 오후가 되면 시민들의 일광욕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엑스포 광장의 야외공연장도 전문공연장처럼 만들어 특정용도로 제한하기보다는 현재의 공간구조를 활용하여 다양한 용도를 포괄할 수 있는 시설로 이해해야 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는 광장에 모여 있는 시민들이 멋진 이벤트나 공연의 뜨거운 열기와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으려면 광장은 “하나의 공간 안에 잘 감싸여 있다”,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라는 입체적인 공간감을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 미학적인 완성도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사방으로 툭 터진 광장에서는 아무리 콘텐츠가 좋다하더라도 그 감흥은 순식간에 사그라지기 마련이며, “그곳에 또 가고 싶다”고 되뇔 만큼 공간과 더불어 지속되는 추억을 남겨주기에는 역부족일 확률이 높습니다. 무빙쉘터는 바로 그러한 입체적인 공간감을 제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2014년 월드컵 축구 응원을 무빙쉘터 안에서 한다고 가정해보신다면 벌써 하나 된 시민들의 함성이 환청처럼 들려오시지 않는지요?
네 번째가 바로, 물리적인 조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광장이 제공할 수 있는 훌륭한 콘텐츠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래야 광장은 한 도시를 대표하는 장소로서 그 자체가 브렌드 가치를 지닌 마케팅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문화유산은 물론 실질적인 관광자원으로 등극시킬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컨텐츠는 그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면 그 지속가능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엑스포 광장은 이제 과학도시 대전의 정체성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한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전의 예술가들과 과학자들이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첨단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퍼포먼스를 만들어 내어 대전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기어이 만들어 광장에 내놓아야 합니다. 대덕연구단지 과학자들은 이제 광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만한 가능성을 탐색할 때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봅니다.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연결시켜 광장에 과학과 예술로 직조한 옷을 입혀야만 합니다. 무빙쉘터는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이 맘껏 상상력을 펼쳐나갈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 셈입니다.
임: 미디어 큐브에는 시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갖추어진다고 들었는데요.
김 : 카페테리아가 남쪽에 있습니다. 그 곳은 둔산 공원 전체, 수목원을 비롯해 청송수련원과 미술관, 예술의 전당 그 어느 곳에도 제대로 된 휴게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이번 기회에 이곳이 고품격의 카페테리아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간이매점 같은 형태여서는 곤란합니다. 2만 불 소득 수준에 걸 맞는 품위를 갖추어 시민들을 대접해야 하지요.
임 : 지인들의 전언에 의하면 엑스포 광장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현장에 자주 가보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그렇습니다. 틈나는 대로 주변 곳곳을 다니면서 광장에 오신 분들이 이 장소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좀 더 보완되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두루두루 살펴보고 있습니다. 주말 같은 경우,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어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잇다는 느낌이 듭니다. 현재 운영주체인 엑스포 과학공원 본부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이 고맙습니다. 주말마다 수공원에 분수를 틀어 놓아 수많은 가족들이 함께 물놀이를 즐기는데다, 반대편 전광판에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상영하여 모두가 편안하게 즐기는 모습도 보기 좋고, 동호인 중심의 스포츠 활동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임 : 원안대로 실현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보완해야 할 지 말씀해 주시지요.
김 : 첫째로, 미디어 큐브가 제 기능을 하려면 원래 계획대로 전광판 4면이 다 바뀌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무빙쉘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나면 미술관과 청소년 수련관 쪽에서 봤을 때 나무 잎들 사이로 디지털 영상이 하늘에 떠 있는 듯한 형상을 취해야 광장의 중심 기능을 제대로 해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쉽게도 지금 현재 상태는 야외 공연무대 상부 한 면의 일부만 돼 있습니다. 4면 전체가 동영상이 움직이며 특별한 감동을 불어넣는 장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둘째는, 3개의 무빙쉘터가 하나씩 떨어지기도 하고 조합되기도 하는데 여럿이 이어질 경우, 쉘터와 쉘터 사이에 전동복개시설이 더해져야 빗물이 들이치지 않아 말 그대로 전천후 시설로서 손색이 없게 됩니다. 반드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지요.
셋째는 여름철 대략 오후 4시경에서 6시 30분경까지 서쪽 태양 고도가 낮아 쉘터 안에 그림자가 크게 줄어드는데, 이를 보완하는 장치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3월부터 5월, 9월부터 11월 초까지는 춥기 때문에 야외공연장 바닥 난방이 추가 보완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엉덩이가 뜨뜻해야 초봄이나 늦가을에도 야외공연을 잘 즐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임 ;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김 : 저는 솔직히 대전 시민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서울 공화국을 위해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와 환경에 대해 이렇다 할 정체성과 비전도 못 느끼고, 프라이드마저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젠 엑스포 광장을 대전을 대표하는 장소로 만들어 우리 마음속의 랜드마크로 새겨 그 자신감을 후손에게 대대로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금년 10월 21일 서울 올림푸스 홀 전시장에서 개최될 네 번째 개인전 " 愛物과 碍物사이
-퇴물들의 화려한 귀환-"을 준비하며 마지막 무더위를 이겨내고 있다는 김 교수로부터 건축에 대한 무한한 열정의 에너지를 듬뿍 느끼며, 부디 그의 작품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하며 그의 작업장을 나섰다.
<대덕넷 임은희 기자> redant645@HelloDD.com 트위터 : @redant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