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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May 06. 2024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대리 시험


‘학생들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치도록 하겠습니다.’


유명한 외국인 교수가 초빙을 받아 영국에 가게 됐다. 그는 각 대학 학생들에게 시험을 실시하겠다는 공지를 미리 보냈다. 그리고 예고한 대로 영국의 대학을 돌아다니며 시험을 거행했다. 이제 남은 곳은 케임브리지뿐이었다. 그는 마지막 시험을 진행하기 위해 케임브리지로 갔다.


외국인 교수가 온다는 소식이 전해진 케임브리지대학교에는 난리가 났다. 학생들은 어떻게 시험을 쳐야 하는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명성이 높은 교수 앞에서 실력을 평가받는다는 사실에 잔뜩 겁을 먹었다. 


“교수가 시험을 실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지?”

“우리 중 일부가 케임브리지의 평범한 일꾼인 것처럼 꾸며서 교수가 오는 길에 숨어 있는 거야. 교수가 길을 물으면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대답하는 거지. 그러면 교수는 ‘아! 역시 케임브리지는 다르군. 일꾼들도 이렇게 수준이 높으니 굳이 학생들을 상대로 시험을 칠 필요는 없겠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야! 그것 참 좋은 생각이야!”


학생들은 대표를 뽑아 몇몇 그룹을 짜게 해서 거리에 나가 교수를 기다리기로 했다. 두세 명씩 짝을 이뤄 평범한 노동자 옷차림을 하고 케임브리지 외곽에 가서 일을 하는 것처럼 꾸몄다. 마침내 교수가 탄 마차가 케임브리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왔다. 마부는 길을 잘 몰라 들판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에게 길을 물었다. 


“케임브리지로 가려면 어느 길을 택해야 하나요?”

“여기로 쭉 가다 보면 사거리가 나옵니다. 거기서 왼쪽으로 꺾으면 됩니다.”


일꾼으로 꾸민 젊은이들은 라틴어로 대답했다. 마차 안에서 마부와 젊은이들의 대화를 듣던 교수는 깜짝 놀랐다. 들판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어떻게 라틴어를 저렇게 잘하는지 신기했다. 


마차는 계속 달려갔다. 케임브리지까지 1㎞ 정도 남은 곳에서 다시 삼거리가 나왔다. 마부는 도로 작업을 하던 일꾼들에게 길을 물었다.


“여기서 어느 쪽으로 가야 케임브리지에 도착할 수 있나요?”

“가운데 길로 쭉 가시면 됩니다. 여기서 얼마 멀지 않으니 금세 도착할 겁니다.”


일꾼으로 꾸민 학생들은 이번에는 유창한 그리스어로 대답했다. 교수는 이번에도 깜짝 놀랐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리스어를 도로 일꾼이 유창하게 할 정도면 케임브리지 학생들의 수준은 얼마나 높을지 알 수 없구나. 이곳에서 실시하는 시험은 다른 대학교보다 더 어렵게 거행해야 하겠군.’


교수는 어떤 시험 문제를 낼지 마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 케임브리지에 막 들어설 무렵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겠군. 신호를 이용하는 거야. 내가 보내는 철학적 상징과 기호를 학생들이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를 파악해보면 되겠군.’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학교 관계자들에게 문제를 제시했다. 


“내일 시험은 조금 다르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식은 ‘상징과 기호 알아맞히기’입니다. 학생들에게 미리 공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학생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자 더욱 당황했다. 그들은 단순히 시험을 칠 때보다 더 상황이 나빠졌다며 실망했다. 그들 중에 특히 게으른 제임스라는 학생이 있었다. 그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걱정이 많았다. 이미 낙제를 여러 번 한 탓에 이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면 퇴학을 당할지도 모를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시험 당일 제임스는 아주 슬픈 표정으로 늘 가던 캠강 둑길을 걸어 학교로 갔다. 교수가 물으면 도대체 어떻게 답해야 할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학생이 늘 걷던 길에는 방앗간이 하나 있었다. 학생은 방앗간 주인과 잘 아는 사이였다. 주인은 성격이 활발했고, 늘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된다는 게 그의 가치관이었다. 주인은 제임스가 침울해하는 것을 보고는 걱정이 돼서 물었다. 


“제임스, 아침부터 왜 그렇게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무슨 걱정이라고 있어?”

“오늘 외국의 유명한 교수님이 오신답니다. 그분 앞에서 시험을 쳐야 하는데 도대체 무슨 문제를 내실지 알 수가 없어요. 오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퇴학당할지도 모른답니다.”


학생이 한숨을 쉬자 방앗간 주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걸 갖고 무얼 그리 걱정하는가? 아무런 염려 말게. 내가 학생 대신 가서 시험을 치도록 하지. 반드시 합격하도록 하겠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어요? 우리는 옷도 다르고, 게다가 저는 한쪽 눈이 나빠 안대도 하고 있는데….”

“허허. 제임스. 그게 뭐 그렇게 어렵겠나? 옷은 서로 바꿔 입으면 되고, 나도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가면 되지! 내가 잘돼서 합격하면 다행이고, 만약 실패하면 내가 옷을 벗고 ‘제가 전데요’하고 밝히면 학생 책임을 면할 수 있잖아.”


이렇게 해서 학생은 방앗간을 지키기로 하고 방앗간 주인이 대신 케임브리지대학교 강의실에 들어가게 됐다. 그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교수는 시험을 시작했다. 교수는 모든 학생을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 상징과 기호를 보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교수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이제 학생으로 분장한 방앗간 주인의 차례가 됐다. 그는 다른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는 손을 코트 호주머니에 넣더니 사과 한 알을 꺼냈다. 그리고 방앗간 주인에게 던질 듯이 내밀어 보였다. 방앗간 주인은 깜짝 놀라면서 즉시 호주머니에서 빵 한 덩이를 꺼내 교수에게 던질 것 같은 자세를 했다. 


교수는 잠시 멈칫하더니 방앗간 주인을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 방앗간 주인을 가리켰다. 방앗간 주인은 화가 난 표정으로 손가락 두 개를 펴서 교수에게 찌를 듯이 내밀었다. 교수는 눈알을 부라리더니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방앗간 주인은 매우 화난 얼굴을 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때였다. 교수가 갑자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정답이야. 이 많은 학생 중에 자네만 답을 맞혔군. 대단해. 총장님께 말씀드려서 자네에게 우수상을 수여하도록 하겠네.”


방앗간 주인은 깜짝 놀랐다. 교수가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자신을 놀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서둘러 강의실에서 빠져나가 방앗간으로 달려갔다. 


“학생, 어서 강의실로 가보게. 일이 잘된 건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교수가 상을 준다고 하는군. 어서 서두르게.”


학생은 다시 방앗간 주인과 옷을 바꿔 입고 학교로 뛰어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 교수는 다리를 꼬고 앉아 다른 학생들에게 상징과 기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교수님, 처음에 나왔던 사과와 빵은 무슨 상징이며 기호였습니까?”

“내가 사과를 꺼냈던 것은 아담의 원죄를 상징하는 것이었지. 학생은 빵을 꺼내더군. 바로 예수님을 뜻하는 것이야.”

“그럼 손가락과 주먹은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먼저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였지. 그것은 ‘삼위일체에서 신은 하나다’라는 걸 뜻했어. 학생은 대답으로 손가락 두 개를 꺼내더군. ‘신이 둘’이라는 것이었어. 내가 ‘셋이다’라는 의미로 다시 손가락 세 개를 보여주자 학생은 주먹을 쥐더군. 대단한 대답이었어. 바로 ‘그 셋이 똑같은 하나’라는 의미였지.”


잠시 후 총장이 강의실로 들어왔다. 학생은 총장에게서 우수상을 받았다. 그 덕분에 이전에 기록했던 낙제의 멍에는 벗게 됐다. 학생은 수업을 마친 뒤 방앗간으로 달려갔다. 도대체 방앗간 주인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어려운 상징과 기호를 이해했는지 궁금했다.


“아저씨, 도대체 교수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신 거예요?”

“아, 설명해주지. 내가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교수는 무척 화난 것처럼 보였어. 내가 늦게 갔다고 짜증났는지 호주머니에서 사과를 꺼내 던지려고 하는 거야. 나는 빵을 꺼내 사과를 막으려고 그랬지. 그랬더니 교수는 더 화난 표정을 짓더라고. 손가락 하나를 펼치더니 하나뿐인 내 눈을 콕 찌르겠다는 게 아니겠어. 그래서 나는 두 개를 펴서 ‘당신 눈 두 개를 찌를 거야’라고 응답했지. 교수는 세 개를 다시 펴더니 ‘내 얼굴을 할퀴겠다’고 하더군. 나는 주먹을 쥐어서 얼굴을 한 대 쥐어박겠다고 협박했지. 그게 끝이야! 왜 뭐가 잘못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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