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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Jul 16. 2024

굴뚝빵 뜨르들로의 진실


체코 프라하에 여행을 가면 언제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거리 음식이 있다. 굴뚝처럼 생겼다고 해서 우리말로 굴뚝 빵으로 해석이 되는 뜨르들닉(trdelník)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뜨르들로(trdlo)나 뜨레들로로 알려진 빵이다.


뜨르들로는 긴 쇠 작대기에 밀가루를 둥글게 말아 구운 뒤 설탕이나 견과류를 묻힌 과자다. 처음에는 단순히 빵만 팔았지만 요즘은 여러 가지 변형 제품이 나왔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뜨르들로에 아이스크림을 넣어 파는 제품이다.


뜨르들로는 빵이기 때문에 구울 때 고소한 냄새가 난다. 여기에 설탕과 견과류가 발려 맛있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맛있는 빵이 아니다. 단순히 밀가루와 설탕 맛이 전부다. 그래서 빵을 사더라도 다 먹지 않고 맛만 본 뒤 버리는 사람이 많다. 현지인은 뜨르들로를 거의 사지 않는다.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이 줄을 서서 빵을 구입한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이색 경험을 해 보는 것은 여행의 재미이자 추억이기 때문이다. 


뜨르들로는 어떤 이유에서 생긴 체코 전통음식이냐고 물어보면 상인들은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14세기 말 뜨레드라는 왕이 보헤미아를 다스렸어요. 그는 조만간 결혼할 신붓감인 브람보라 공주를 데려오기 위해 이웃나라로 갔지요. 그곳으로 가려면 물살이 아주 거친 엘니크 강을 건너야 했답니다. 왕은 왕궁에서 석탄 한 자루와 밀가루 한 자루를 들고 갔다는군요. 왕은 강 앞의 오두막에서 밀가루를 이용해 커다란 반지 모양 도우를 만들어 석탄을 넣은 화로에서 구웠어요. 그리고 반지 모양 빵을 칼에 걸어 강물에 뜨게 한 뒤 그걸 붙잡고 강을 건너갔어요. 그는 무사히 이웃나라에 도착했고 공주를 데리고 귀국할 수 있었다네요. 뜨레드 왕이 반지 모양 빵을 만들어 공주를 데려온 일을 기념하기 위해 14세기부터 가을에 추수를 하고 난 뒤에 ‘뜨레들닉 데이’가 생겨 축제를 벌였지요. 왕이 만든 반지 모양 빵은 나중에는 더 커져 원통 모양 빵으로 변해 오늘날의 뜨르들로가 됐답니다.”


전설을 들어 보면 정말 재미있고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 전설은 사실이 아니다. 14세기에 보헤미아에 뜨레드라는 왕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엘니크라는 강도 없다. 이 전설은 프라하에서 뜨르들로를 팔던 상인이 억지로 만들어 낸 ‘소설’에 불과하다.


사실 뜨르들로는 프라하 전통 음식이 아니다. 원산지는 슬로바키아다. 18세기 말 슬로바키아의 스칼리차에 그바다니 요제프라는 퇴역 헝가리 장군이 살았다. 당시만 해도 슬로바키아는 헝가리 영토였다. 슬로바키아는 1918년 제1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인 선포됐을 때 헝가리에서 떨어져 나가 체코 영토로 귀속됐다. 그로부터 80년 후인 1989년 벨벳혁명 이후에 독립했다.


그바다니는 스칼리차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성과 땅을 갖고 있었다. 그는 트란실바니아에서 유명한 요리사를 스칼리차로 초청했는데, 그 요리사가 뜨르들로를 처음 만들어 주인에게 바쳤다. 그때만 해도 요리법이 지금과 조금 달랐지만 나중에 현지 주민이 요리법을 개선해 오늘날과 거의 비슷한 뜨르들로를 만들었다. 이 뜨르들로에는 ‘스칼리차 뜨르들닉’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EU 지리적 표시’로 등록돼 보호받는다. 지리적 표시는 오랜 역사와 빼어난 품질을 자랑하는 지역 특산품에 붙이는 명칭이다. 2004년에는 ‘스칼리차 뜨르들닉 협회’가 성립돼 전통 조리법을 지켜 나간다. 또 해마다 5월에는 뜨르들로축제인 ‘뜨르들로페스트’도 진행한다.


당시만 해도 스칼리차를 포함해 슬로바키아는 헝가리 영토였다. 그래서 헝가리는 지금도 ‘스칼리차 뜨르들닉’은 헝가리의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한다. 뜨르들로가 헝가리 것인지 슬로바키아 것인지에 관계없이 어쨌든 체코 전통음식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뜨르들로은 슬로바키아 음식이다 보니 이름도 슬로바키아어에서 유래했다. 케이크나 빵을 만들 때 쓰는 가운데가 빈 원형 나무틀을 의미하는 단어다. 


그렇다면 뜨르들로는 온전히 슬로바키아의 창작품이었던 것일까? 역사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뜨르들로는 선사 시대부터 이어져 온 빵이 여러 지역, 여러 나라에서 변형에 변형을 거듭한 끝에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빵을 제대로 굽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굵은 나무 작대기에 밀가루를 붙여 불 위에서 돌려가면서 빵을 구웠다. 사냥해서 잡은 동물의 고기나 물고기를 나무 꼬치에 끼워 돌려가면서 익히던 데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프라하에서 팔리는 뜨르들로가 슬로바키아에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맞지만 ‘그바다니의 요리사가 어느 날 갑자기 독창적 아이디어로 고안해 낸’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뜨르들로가 프라하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1세기부터였다. 일부 가게에서 관광객에게 팔시 시작했다. 프라하의 중년 이상 시민은 “어릴 때 뜨르들로 같은 빵은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여러 관광객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SNS에 사진을 올린 덕에 난데없이 큰 인기를 얻게 됐다. 그래서 지금은 프라하에 가면 꼭 먹어 봐야 할 음식 리스트에 포함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최근 프라하의 일부 젊은이가 유튜브에 뜨르들로를 다룬 영상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그 중 한 명인 유튜버 야넥 루베쉬는 거대한 뜨르들로 옷을 입고 영상에 출연했다. 옷에는 ‘나는 체코 전통 음식이 아니다’라는 글이 적혔다. 그는 옷을 입은 채 프라하 곳곳을 다니며 뜨르들로는 먹는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춤을 췄다. 그는 또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먹지 않고 입만 살짝 댄 뒤 쓰레기통에 버린 뜨르들로를 클로즈업해 찍었다. 비둘기 무리가 쓰레기통 옆에서 뜨르들로를 뜯어 먹는 영상도 올렸다. 


루베쉬가 하고 싶은 말은 ‘뜨르들로가 체코 전통음식인 것처럼 각 가게가 홍보하지만 사실은 엉터리’라는 것이었다. 체코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유튜브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영상을 본 프라하 시민 대다수는 ‘뜨르들로는 체코 전통음식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공감했다. 그들은 갑자기 크게 늘어난 뜨르들로 가게 때문에 사실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외국인 관광객이 사 먹으니 뜨르들로를 팔면 관광수입이 늘어나서 좋지만, 체코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걸 마치 전통음식인 것처럼 엉터리 포장하는 게 찜찜했기 때문이었다. 


프라하 시민들은 게다가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깜짝 놀란다. 뜨르들로 하나 가격이면 조용한 주택가의 식당에서 점심 한 끼를 먹으면서 덤으로 맥주 한 잔도 마실 수 있다. 아니면 젬로브카, 브람보라키 같은 진짜 체코 전통 케이크를 여러 개 사 먹을 수 있다.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은 이 영상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뜨르들로가 여전히 체코 전통음식이라고 믿는다. 또 영상을 본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프라하에 가서 뜨르들로를 안 먹어 보고 올 수 있느냐”며 굳이 뜨르들로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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