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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Jul 15. 2024

엉뚱한 최고 조각가 다빗 체르니

21세기 체코에서 가장 뛰어난 조각가로 평가받는 사람은 다빗 체르니다. 그는 아주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행위로 유명한 조각가다. 이름을 처음으로 알린 것도 희한한 행동 때문이었다. 프라하에 제2차 세계대전 기념물로 설치된 소련 탱크가 하나 있었는데, 체르니가 1991년 탱크를 분홍색으로 칠해 버린 것이었다. 탱크는 당시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설이었다. 그는 “권위에 대한 불복종 운동의 상징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문화유산 파괴인 반달리즘으로 인정돼 유치장 신세를 졌다.


체르니는 2005년에는 세상을 경악케 한 작품을 내놓았다. 작품 제목은 ‘상어’였다. 제목만 보면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하지만 그가 만든 작품을 보면 입을 떡 벌리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만든 작품은 이라크 독재자였던 사담 후세인이 포름알데히드를 가득 채운 탱크에 갇힌 형상이었는데, 1991년 다미엔 허스트라는 작가의 작품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이 작품은 그해 프라하 비엔날레에 출품됐고, 작품은 본 사람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체르니의 ‘상어’가 얼마나 큰 놀라움을 줬던지 벨기에, 폴란드, 독일 등 세계 곳곳에서 전시 금지됐다. 그의 작품은 무슬림을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체르니는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2009년에 만든 작품 ‘엔트로파’는 ‘상어’보다 더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체코는 그해 유럽연합 의회 상반기 의장을 맡아 회의를 주재하게 돼 있었다. 체코 정부는 이를 기념해 체르니에게 ‘장벽 없는 유럽’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체르니가 만든 작품은 충격 그 자체였다. 우선 제목부터가 문제였다. 그가 붙인 제목은 ‘고정관념은 파괴해야 할 장벽’이었다. 파이버글라스와 강철로 만든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쇼킹’했다. 벨기에는 먹다 남긴 초콜릿 상자로, 불가리아는 튀르키예식 화장실로, 덴마크는 레고 벽돌로, 이탈리아는 축구장으로, 네덜란드는 해저로 가라앉은 모습으로 묘사됐다. 작품이 공개되자 온 유럽에서 난리가 났다. 불가리아는 체코대사를 불러 강하게 항의했다. 불가리아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온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조각가지만 그는 지금 체코에서 ‘현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명성에 걸맞게 그가 만든 작품은 프라하 곳곳에 흩어져 전시돼 있다. 모두 평범하지 않고, 이색적이고 독특한 작품이다. 신시가지의 쇼핑센터 ‘OC 콰드리오’ 앞 광장에 있는 ‘회전하는 프란츠 카프카 두상’, 바츨라프광장의 루체르나궁전에 있는 ‘거꾸로 매달린 바츨라프’, 구시가지 후소바 거리에 있는 ‘매달린 프로이트’, 말라 스트라나의 카프카박물관 정원에 있는 ‘오줌 싸는 사람’, 캄파 섬의 캄파박물관 옆에 있는 ‘기어가는 아기’ 등이다.


체르니는 지난해에는 옛 양조장을 고쳐 박물관을 개장했다. 그가 박물관을 연 곳은 프라하 전체로 봐서는 블타바강 남서쪽인 프라하 5지구의 스미호프 지역이다. 철도 작업장을 개조해서 만든 ‘밋팩토리(MeetFactory)’라는 복합문화공간 바로 맞은편에 20년간 비어 있던 양조장을 개조해 총 5개 층 총 면적 1200㎡ 규모로 박물관을 지어 4월 1일 개장했다. 이곳에는 그의 작품을 영구 전시한다. 엉뚱하고 기발한 성격답게 체르니의 박물관 이름도 독특하다. 바로 ‘영묘’라는 뜻인 마우솔레움이다.


체르니의 새 박물관이 들어선 땅은 20여 년 전 그의 친구이자 투자개발회사 트리게마의 회장인 마르셀 수랄이 매입했다.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개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인데 역사적 건축물인 양조장은 체르니의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부지에는 550세대 규모의 새로운 고급형 주거단지 및 문화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체르니는 일단 초대형 조각을 하나 만들어 주거단지에 세우고, 나머지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구체적으로 조언할 방침이다.


특이한 스타일의 체르니가 고른 장소답게 스미호프라는 이름의 유래도 특이하다. 체코의 전설적인 영웅 세믹이 숲에서 목을 맸는데, 이걸 보고 악마가 정말 기뻐한 나머지 크게 웃었다고 한다. 체코어로 ‘웃다’는 걸 ‘스미흐(smích)’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스미호프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물론 조금 더 합리적인 다른 주장도 있다. 1430년 얀 스미호프스키라는 사람이 이곳의 땅을 샀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스미호프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각종 공장이 들어선 덕에 스미호프는 18~19세기에는 프라하 산업의 중심지였다. 카드보드 공장, 화학 공장, 밀가루 분쇄공장, 분쇄기 공장, 설탕 공장, 도자기 공장 등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공장이 워낙 많아 한때는 ‘프라하의 맨체스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스미호프는 20세기 후반까지도 산업지역으로 유지됐다. 그러나 스트라호프 터널이 생긴 이후 스미호프의 성격은 바뀌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던 공장은 하나둘 사라졌고, 새로운 건물이 건설됐다. 건물에는 행정기관이나 회사 사무실이 들어섰다.


체르니는 박물관을 지으면서 과거 양조장 굴뚝 등은 그대로 살렸다. 건물 설계니는 그가 운영하는 ‘블랙 n’ 아크’가 맡았다. 건설비 40억 크로네는 개발투자회사인 트리게마가 냈다.


19세기 말에 지어진 양조장은 역사적 건축물로 보존되는 공간이어서 완전히 부숴 평범한 건물을 짓는 것은 불가능했다. 체르니는 건물을 보존하면서 박물관을 집어넣기로 했다. 처음에는 문화기관 사무실로 쓰려고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체르니 박물관이 됐다.


체르니가 박물관을 짓게 된 계기는 평소 그의 행동만큼이나 엉뚱하다. 그는 수년 전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게서 전시회를 열자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두 번이나 연기됐다. 결국 그는 앞으로는 절대 국가시설과 협업하지 않겠다면 개인 박물관을 짓기로 결심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작품을 마음대로 전시하겠다는 게 취지였다. 그는  전 세계에 흩어졌거나 창고에 처박힌 그의 작품을 하나씩 되사들여 한꺼번에 전시할 생각이다. 또 조각가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가를 위해 초청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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