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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Oct 16. 2024

부다페스트 첫날(2) 황후 엘리자베트의 궁전


센텐드레역에서 다시 전철을 타고 바티야니역으로 간다. 이곳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열차 켈레티역으로 이동한다. 코슈트라요시역, 데악페렝역을 거치면 켈레티역까지 불과 8분 거리다. 부다페스트에는 사람 이름을 붙인 역, 거리 이름이 많다. 대부분 18~19세기에 헝가리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켈레티는 ‘동쪽’이라는 뜻이니 켈레티역은 동역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켈레티역은 이름과는 달리 사실상 부다페스트 중앙역이다. 각종 국제선 기차와 국내선 기차가 이곳에서 출발하고 이곳으로 들어온다. 역이 문을 연 게 1884년 8월이라고 하니 올해 개통 140주년이 된다.


켈레티역에 온 것은 괴될뢰에 가기 위해서다. 괴될뢰는 부다페스트에서 남동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도시다. 부다페스트에서 괴될뢰까지 가는 경로는 간단하다. 켈레티역에서 열차를 타면 30분도 안 걸려 도착한다. 


괴될뢰에 가는 것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비운의 황후 엘리자베트, 즉 시씨의 성을 보기 위해서다. 그곳에 괴될뢰 왕궁, 옛 명칭으로 하면 그라살코비치 성이 있는데, 엘리자베트가 헝가리에 갈 때마다 즐겨 머물던 곳이었다.



괴될뢰는 16세기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지 않던 곳이었다. 17세기 중엽 지역 영주 함바이 페렝이 이곳에 저택을 지어 살자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곳이 급변한 것은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가 보낸 총독 안탈 그라살코비치가 괴될뢰에 있던 교회를 기반으로 해서 성을 지은 게 계기였다. 그는 성 주변 지역을 영지로 삼았다. 오늘날 괴될뢰 중심지는 그라살코비치가 성을 만든 이후에 형성됐다.


켈레티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쉬지 않고 달려 괴될뢰역에 도착한다. 부다페스트에서 괴될뢰까지 이어지는 철도가 부설된 것은 엘리자베트 덕분이었다. 황제 가족이 이곳에 있던 성을 자주 방문하다 보니 이들이 편리하게 오갈 수 있도록 철로를 놓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렇게 해서 1867년 부다페스트-하트반 철도가 개설됐다. 황제 가족만 타는 특별열차가 이곳에서 운행됐다.


거의 직사각형처럼 생긴 역 청사 옆에 아주 고풍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물이 보인다. 과거에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황후 엘리자베트가 성을 방문할 때 사용하던 ‘왕실 전용 대기실’이었다. 1874년에 지은 건물이라니 건립 역사가 100년을 훨씬 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황제와 황후가 사용하던 대기실을 별도로 있었다는 점이다. 역에서 왼쪽으로 가면 황제가 쓰던 방, 오른쪽으로 가면 황후가 쓰던 방이 나온다. 지금은 황실 대기실로 사용되지 않고 일반 승객 대기실로 이용된다. 



괴될뢰역에는 빵, 과자나 음료수를 파는 작은 매점이 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일단 이곳에서 빵과 물 그리고 콜라 한 병을 산다. 일단 역 플랫폼 벤치에 앉아 허기부터 채운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계속 돌아다니면 평소보다 배 이상 피곤할 수밖에 없다. 외국 여행을 가면 틈이 날 때마다, 음식이 생길 때마다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한다. 


가만히 보니 주변에 학생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많이 다닌다. 이곳에는 성 이슈트반 대학교, 헝가리 농업생명대학교 등 대학교가 여러 곳 있다.


괴될뢰역에서 왕궁에 가려면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가 아니라 황후 엘리자베트가 과거 말을 타고 달렸던 숲길을 걷기 때문에 매우 쾌적하다. 왕궁을 보지 않더라도 이곳에 산책삼아 왔다고 해도 될 만큼 아름답고 깔끔한 곳이다. 



숲에는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는 현지인이 적지 않다. 숲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듯 키가 크고 덩치도 큰 나무들이 이어진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산책길이나 옆에 수북이 쌓여 깊어가는 가을에 운치를 더해준다. 


알록달록한 꽃이 화사하게 핀 공간을 지나자마자 이곳이 ‘괴될뢰 왕궁’이라는 걸 알리는 안내판이 여러 나라 언어로 적혀 세워져 있다. 안내판 바로 뒤쪽에 왕궁 후면이 나타난다. 이것만 보면 왕궁이 그렇게 크지 않은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왕궁과 정원을 합친 면적이 무려 30만㎡에 이른다고 하니 실제로는 엄청나게 넓은 곳이다. 숲과 숲 사이에 파묻힌 왕궁이어서 밖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웅장하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괴될뢰 왕궁은 왕궁과 승마장, 정자, 온실 그리고 넓은 정원 3개로 이뤄졌다. 방금 괴될뢰역에서 내려 지나온 숲은 첫 번째 정원인 알소파크다. ‘아래쪽 공원’이라는 뜻이다.



왕궁에 들어가기 전에 일단 세 정원 중에서 가장 시원한 왕궁 공원, 즉 카스텔리 파크를 살펴본다. 괴될뢰 왕궁에서는 건물에 들어갈 때만 입장료를 내고, 나머지 시설을 둘러보는 것은 무료다.


괴될뢰 왕궁 후면을 지나 정면부로 걸어간다. 왕궁은 위에서 보면 U 모양으로 생겼다. 왕궁 1층 카페 앞 야외 테이블에 현지 고교생으로 보이는 학생 10여 명이 앉아 즐겁게 웃고 있다.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입을 쉴 새 없이 재잘거리고,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친구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깔깔거리며 배꼽을 잡는다.



왕궁 공원은 대부분 잔디밭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잔디밭 한가운데에 설치된 분수대다. 유럽의 많은 분수에서 볼 수 있는 포세이돈 조각이나 특별한 장식은 보이지 않는다. 4각형 분수 안에 물이 뿜어져 나오는 관 하나가 설치된 게 전부다. 분수 네 방향에는 벤치가 설치돼 관광객이 앉아서 쉴 수 있게 돼 있다.



단순하지만 이곳에서 왕궁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은 꽤 멋지다. 콘크리트 분수와 파란 잔디 그리고 그 뒤에 펼쳐진 미색 벽과 빨간 지붕의 궁전. 사진을 찍으라고 분수를 만든 것은 아닐 텐데 왜 이렇게 단순하게 조성한 것일까? 물어볼 데가 없으니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왕궁 공원 주변은 느슨한 형태의 숲이 에워싸고 있다. 잔디밭과 숲 곳곳에는 조각상이 세워졌다. 그중 하나는 합스부르크 왕실의 여걸이었던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 조각상이다. 얼굴을 보면 젊은 시절의 마리아 테레지아를 묘사했다. 


괴될뢰 왕궁을 건설한 그라살코비치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헝가리에 보낸 총독이었다. 그녀가 가장 신임하던 신하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왕위계승전쟁의 위기를 넘기고 황제로 즉위한 이후인 1751년 남편 프란츠 슈테판 황제와 함께 부다페스트를 방문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부다페스트에 간 김에 가장 신뢰하는 그라살코비치가 외곽에 지은 궁전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달려가 8월 10~11일 이틀간 머물렀다. 당시 궁전에서 벌어진 축하연은 정말 화려해서 ‘헝가리는 이렇게 훌륭한 행사를 이전에 본 적이 없었다’는 기록까지 남을 정도였다. 괴될뢰 성 정원에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을 세운 것은 그녀가 이곳을 방문한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서른네 살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괴될뢰 방문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전설도 전한다. 그라살코비치가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페스트에서 괴될뢰까지 올 때 눈썰매를 타게 했다는 것이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어릴 때부터 눈썰매를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을 의식한 이벤트였다.


그런데 마리아 테레지아가 헝가리를 방문한 시기는 한여름인 8월이었다. 이 시기에 페스트와 괴될뢰에 눈이 내렸을 리가 없다. 전설에 따르면 그라살코비치는 눈썰매가 움직일 수 있게 도로를 소금으로 덮었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다. 10km를 넘는 도로에 소금을 덮어 눈썰매가 다닐 수 있게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조각상 뒤쪽에 나뭇잎이 거의 다 떨어져 헐벗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낙엽은 날려가지 않고 나무 바로 아래에 수북이 쌓였다. 다리도 아파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는다. 나무가 선 잔디밭은 푸르고, 하얀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은 파랗다. 멀리 보이는 괴될뢰 왕궁의 빨간 지붕과 파란 하늘은 비현실적인 그림처럼 대조를 이룬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바람도 잔잔해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간혹 이름 모를 새소리만 귀를 스친다. 마음이 안온해지고 더불어 몸도 편안해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욱신거리던 다리에서 통증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선명해진다.


카스텔리 파크 건너편에는 ‘엘리자베트 공원’이라는 ‘에르지벳 공원’이 있다. 면적으로만 보면 이곳이 가장 넓다. 19세기에 괴될뢰 숲에는 야생동물이 많이 살았다. 그래서 왕실이 사냥을 즐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사냥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건너온 귀족은 물론 헝가리 부다페스트 귀족도 많이 동행했다. 그레인하운드 같은 개도 사냥에 따라갔다. 때로는 귀족들끼리 승마나 경마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엘리자베트도 경기에 참여했다. 그녀는 부다페스트에 가기 전부터 이미 유명한 기수였다. 유럽 전역, 남녀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만큼 말을 잘 타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때로는 혼자 말을 타고 숲이나 마을을 돌아다녔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 고개를 숙이면서 미소를 지어 인사했다. 엘리자베트가 괴될뢰를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는 마음대로 말을 탈 수 있는 바로 이 넓은 정원이었다.


엘리자베트는 괴될뢰 왕궁의 마구간을 개축했다. 1층을 메우고 2층을 높여 원형 승마장을 만들었다. 승마장 네 모퉁이에는 말을 타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게 거울을 설치했다. 마구간은 그녀가 가장 자주 이용한 시설이었다. 헝가리 최고의 기수, 때로는 서커스 단원에게서 불 사이로 뛰어드는 스턴트 묘기 같은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이제 왕궁 안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드디어 엘리자베트가 살던 집에서 그녀를 만날 순간이다. 1층에서 입장권을 사고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천천히 올라간다.


1841년 그라살코비치 가문의 대가 끊어지자 비차이 가문이 영지를 물려받았다. 나중에는 벨기에은행이 성과 주변 땅을 사들였다. 헝가리 정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범 직후 그라살코비치 성과 인근 지역을 벨기에은행으로부터 매입해 엘리자베트의 헝가리 여왕 즉위 선물로 바쳤다. 이후 이 성은 엘리자베트가 가장 좋아하는 사적 공간이 됐다. 그녀는 이곳에서 가족과 매년 여름은 물론 성탄절을 보냈다. 성의 이름도 괴될뢰 왕궁으로 바뀌었다.



왕궁의 대부분 방은 엘리자베트의 자료로 꾸며졌다. 그녀는 물론 가족, 지인 그리고 헝가리인 중에서 그녀와 관련된 인물이나 장소, 사건을 담은 사진, 그림이 각 방에 장식됐다. 어느 방에 어느 사진이 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는 것은 지루할 수 있다. 그래서 내부 설명은 이것으로 간단하게 마치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엘리자베트는 보라색을 매우 좋아해 침실을 보라색으로 꾸몄다. 지금도 그녀의 침실은 보라색으로 장식됐다. 그래서 괴될뢰 왕궁에 갔을 때 보라색 방을 보면 ‘아! 이곳이 시씨의 방이로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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