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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Oct 14. 2024

부다페스트 첫날(1) 세르비아인의 마을


빈을 떠나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는 날이다. 호텔 바로 앞의 빈 중앙역에서 기차에 오르면 부다페스트 켈레티 역까지 3시간 정도 걸린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까지 1시간 정도가 남는다. 가는 동안 기차에서 먹을 음식과 각종 기념품을 사기로 한다. 중앙역은 규모가 커서 이것저것 살 게 많다. 슈퍼마켓에서 딸이 부탁한 하리보를 산다. 한국에도 수입되는데 왜 굳이 하리보를 사느냐고? 이곳에서는 한국에서 팔지 않는 종류의 하리보를 살 수 있다. 



열차를 타러 승강장으로 가는 도중에 에스컬레이터 때문에 사고가 났다. 이곳의 에스컬레이터는 매우 가파르기 짝이 없는데, 앞서 가던 다른 관광객 한 명이 짐을 부주의하게 걸쳐놓는 바람에 중간쯤에서 짐이 넘어졌다. 뒤에 따라오던 다른 일행이 짐에 부딪혀 에스컬레이터에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다행히, 정말 천우신조로, 팔꿈치에 긁힌 자국 말고는 팔다리나 뼈가 부러지는 부상은 없었다.


숙소는 세체니 다리 바로 앞의 호텔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터콘티넨탈 부다페스트 호텔 바로 뒤쪽 골목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세체니 다리 앞이어서 부다 지구로 이동하기 편한 데다 부다페스트 여행 중심지 중 하나인 바치 거리로 바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위치다. 


다음날 아침 부다페스트 여행 첫날 첫 행선지는 센텐데르다. ‘헝가리의 세르비아 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아주 넓지는 않지만 분위기가 남다른 데다 그림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여서 최근 한국인 관광객에게 인기를 끄는 곳이다. 



센텐드레라는 지명은 ‘성 안드레’라는 뜻이다. 예수의 12사도 중 한 명인 성 안드레의 이름이다. 헝가리어로는 센텐드레, 독일어로는 장크트안드레다. 센텐드레라는 지명은 1146년에 처음 등장했다. 


센텐드레 일대에는 고대 로마 시대 성채가 있었다. 9세기 헝가리를 건국한 아르파드를 따라간 부족장 중 한 명인 쿠스잔이 이곳에 정착했다. 그는 폐허 상태였던 성채를 고쳐 방어시설로 바꿨고, 로마군 병사들이 살던 건물도 수리해 저택으로 사용했다.


센텐드레 인구는 17세기 오스만투르크 침략기에 크게 줄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이곳에는 귀족 서너 가족과 그들을 모신 하인들만 살았다. 오스만투르크가 물러간 뒤 인구는 다시 늘어났다.



오스만투르크의 침략을 피해 곳곳으로 떠돌아다니던 세르비아인들이 이곳으로 들어갔다. 그  영향으로 오늘날에도 곳곳에 세르비아 문화의 흔적이 남았다. 


센텐드레에 들어간 것은 세르비아인만이 아니었다. 크로아티아 인근 아드리아해 연안에 살던 달마티아인, 슬로바키아인, 독일인과 그리스인까지 이곳에 들어갔다. 2015년 헝가리 인구조사에 따르면 센텐드레 인구는 2만 5천여 명이었는데, 혈통을 보면 무려 10개 민족으로 구성돼 있었다. 


센텐드레는 부다페스트 시내 어디라도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어서 교통도 편리하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바티야니 역에서 내린 뒤 인근에 있는 똑같은 이름의 기차역 바티야니 역에서 전철을 타면 된다. 



센텐데르행 전철은 우리나라의 옛날 완행 기차인 비둘기호와 비슷하다. 바티야니 역에서 4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마치 소풍을 가는 것처럼 가볍게 탈 수 있다. 실제로 센텐데르역에 내리자 많은 사람이 소풍을 온 것처럼 가벼운 차림이었다. 


센텐드레역이 있는 알로마시 테르(역 광장)에서 코슈트 라요시 거리로 간다. 이 거리를 따라 7~8분 걷다 작은 다리인 아포르 다리를 지나면 둠차 예뉴 거리가 나온다. 다리에서 다시 3~4분 더 걸어가면 센텐드레 여행의 중심지인 ‘메인 광장’이라는 뜻의 ‘퓨 테르’가 나온다. 


역에서 퓨 테르까지 걸어가는 길에 보게 되는 센텐드레 풍경은 그야말로 한적한 시골이다. 물론 우리나라 시골과 모습은 다르지만, 시골이라는 한산한 분위기만은 비슷하다. 건물은 낮고 낡았고, 곳곳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느리고 여유롭다. 건물 앞쪽은 깔끔해 보이지만 건물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둠차 예뉴 거리 가운데에는 주변의 식당, 카페에서 내놓은 테이블과 의자가 줄을 잇는다. 날씨가 좋을 때 이곳에 앉아서 음식을 먹거나 커피를 한 잔 하라는 것이다. 공기가 깨끗한 데다 길이 복잡하지 않으므로 여유를 갖고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퓨 테르는 ‘메할라’라고 불린 옛 세르비아인 집단 거주지의 중심광장이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광장 한가운데의 십자가와 종탑이 높이 솟은 블라고베스텐슈카 교회다. 십자가는 1763년 세르비아인들이 만든 것이다. 헝가리를 강타한 역병이 센텐드레에는 피해를 입히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뜻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한 기념물이다.


교회는 과거 세르비아인이 이용하던 세르비아정교회의 성소다. 교회가 처음 생긴 것은 1690년이었다. 당시에는 목제 건물이었다. 그러다 30년 뒤 헝가리 남부에서 피란 온 화가들이 교회 벽에 성화를 그렸다. 성화가 얼마나 아름답고 성스러웠던지 성화를 보호하기 위해 30년 뒤 새 교회가 건설돼 오늘에 이르렀다. 



중앙광장 주변은 교회 말고도 16~17세기를 담은 바로크식 건물이 에워싸고 있다. 과거에는 세르비아 상인들이 살거나 장사하던 곳이다. 센텐드레 갤러리와 그리스동방교회, 페렌치 박물관 등도 있다.


퓨 테르를 포함해 센텐드레의 건물은 모두 작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과거에 센텐드레 시내 땅값은 매우 비싸 상인들은 땅을 많이 살 수 없었다. 그들은 작은 땅에 좁은 2층 건물을 지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오늘날 동화 같은 센텐드레 마을이다. 1층에는 상점이 있었고, 주거용 저택은 2층이었다. 다락은 창고로 사용됐다. 건물은 대부분 석재로 지었고 때로는 짚을 섞어 만든 벽돌을 사용했다.


블라고베스텐슈카 교회 옆에는 젠트룸이라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이 가게를 중심으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특이하게도 왼쪽 길은 오르막이고 오른쪽 길은 내리막이다.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알코트마니 거리다. 이 골목길은 센텐드레 유적지구에서 가장 높은 템플롬 돔(교회 언덕)으로 이어진다. 언덕 꼭대기에는 교회 광장이 펼쳐져 있고, 한쪽에는 세례자 요한 교회가 서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센텐드레에서는 가장 빼어난 전망이다. 그렇다고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정도는 아니고 눈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정도다.


템플롬 돔을 둘러보고 내려오면 다시 퓨 테르다. 이번에는 내리막인 오른쪽으로 간다. 거리 이름은 보그다니 거리다. 이곳은 센텐드레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관광기념품 쇼핑거리다. 과거 공산정권 시절에는 ‘붉은 군대 거리’로 불렸지만 민주화 이후에 이름이 바뀌었다. 거리가 꽤 예쁘고 각종 기념품을 많이 팔아 외국인 관광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보그다니 거리 오른쪽으로 더 작은 골목이 보인다. 베르체니 골목이다. 골목 위쪽에 알록달록한 우산이 달렸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우산을 설치한 관광지를 더러 본 적이 있다. 사람 생각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비슷한 모양이다.


보그다니 거리의 한 상점에서는 직물이나 자수 제품을 판다. 자수 무늬는 세르비아풍이어서 헝가리 문화와는 달리 아주 독특하다. 헝가리 전통의상을 파는 가게도 보인다. 가격은 그다지 비싸지 않지만 옷을 사 간들 입을 수 없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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