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형벌

운명을 바꾸는 데에도 운명이 필요한가

by 민진성 mola mola

주체적인 삶, 사업, 리스크 테이킹. 이 화려한 단어들 이면에는 지독한 고독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자유는 날개가 되지만, 누군가에게 자유는 발붙일 곳 없는 절벽과 같다. 운명을 바꾸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정작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에너지'조차 타고난 운명의 영역이라면 우리는 이 불공평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유를 견디는 근육의 불평등

자유는 달콤하지만 그것을 감당하는 데에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매 순간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고, 내일의 불확실성을 뜬눈으로 견뎌야 한다. 어떤 이는 태생적으로 위험을 즐기는 아드레날린을 갖고 태어나지만, 어떤 이는 작은 변동성에도 영혼이 잠식되는 섬세한 기질을 갖고 태어난다. 주체적 삶을 찬양하는 목소리들은 종종 '안전을 갈망하는 본능' 또한 인간의 깊은 유전적 형질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운명을 바꾸는 동력, '메타 운명'

역설적이게도 운명의 궤도를 수정하려면 그 궤도를 이탈할 수 있는 만큼의 '초기 속도'가 필요하다. 그 속도는 어린 시절의 결핍에서 오는 지독한 열망일 수도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회복탄력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엔진'조차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결국 운명을 바꾸는 행위 자체도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난 자들의 전유물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든다.



모두가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모두가 사업가가 되고, 모두가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고 압박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 안에서 평온을 찾고, 정해진 질서 속에서 성실하게 자기 몫의 행복을 일궈내는 삶 또한 그 자체로 숭고하다. 운명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자기 기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다 삶을 망가뜨리는 것이 진짜 비극일지 모른다. 자유를 감당할 수 없는 이에게 자유를 강요하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저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미세한 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고 싶다. 운명의 거대한 판을 통째로 뒤엎는 것은 선택받은 이들의 몫일지 몰라도, 그 판 위에서 '나만의 작은 무늬'를 그려 넣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운명을 180도 바꾸지는 못해도, 오늘 하루 내가 내뱉는 말 한마디, 내가 선택한 책 한 권으로 1도 정도 궤도를 수정하는 것. 그 미세한 균열들이 모여 아주 오랜 시간 뒤에 나를 전혀 다른 곳에 데려다 놓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평범한 우리들이 부릴 수 있는 유일한 마법이다.





#생각번호20260116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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