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의 위엄에 대하여
"모두가 주인공일 수는 없다"는 말은 현대 사회에서 거의 금기어처럼 취급된다. 우리는 모두가 자신의 삶이라는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단독 주연이 되어야 한다고 교육받으며, 그렇지 못한 삶을 '조연' 혹은 '실패'라고 명명한다. 하지만 이 냉정한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우리는 타인이 설계한 화려한 각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주인공이 된다는 건, 모든 사건의 원인이 나여야 하고 모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인생을 통째로 바꾸고, 운명을 거스르고, 복리의 정점에 서야 한다는 압박은 사실 주인공이라는 '역할'이 주는 무거운 부채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려 할 때 세상은 전쟁터가 되지만, 내가 주인공이 아님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무대 전체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를 얻는다.
세상에는 무대 위에서 춤추는 주인공보다, 그 무대를 설계하는 연출가나 그 장면을 진심으로 즐기는 관객이 더 많이 필요하다.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삶이 주체적이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저 화려한 조명 아래 서는 기질이 아니야"라고 선언하고, 자신만의 고요한 작업실을 꾸리는 것 역시 지독하게 주체적인 선택이다.
"현실적이다"라는 말은 흔히 '꿈이 없다'는 말로 곡해되곤 한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현실주의는 나의 한계와 기질을 정확히 알고,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운명을 180도 바꾸지 못해도, 오늘 마신 커피 한 잔의 온기를 느끼고 사랑하는 이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삶. 거창한 시스템을 만들지는 못해도 내 주변의 작은 질서를 지키며 사는 삶. 이 '현실적인' 삶들이 모여 사실은 세상을 지탱한다.
모두가 주인공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픈 이유는 우리가 '특별함'에 너무 큰 가치를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함은 결코 하찮음이 아니다. 숲에는 커다란 참나무도 필요하지만, 이름 모를 풀꽃과 이끼도 있어야 숲이 완성된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내가 이 거대한 우주의 시스템 속에서 '내 몫의 자리'를 이미 갖고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생각번호202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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