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초연 Jan 27. 2024

스물일곱 처자의 서울특별시

평범을 지켜내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1인 가구 스물일곱 살의 사회 통칭 ‘아가씨‘는, 외로움과 고독함을 헷갈려하는 사이 문득 아빠의 말을 떠올린다. “초연아, 귀를 막아보렴. 무언가 들리지 않니? 작은 진동과 함께 말이야. “ ”그래, 너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단다. 세상이라는 시소에 홀로 올라와 있다고 생각이 들어 휘청일 때면, 언제든 귀를 막고 너의 심장소리를 들어보렴. “


오늘처럼 알코올로 사회의 부단함을 증발시켜버리고 싶은 날에는 무드등과 아이패드가 필수지만, 아빠의 말을 서두로 스물일곱의 아가씨의 요즘을 담아보려고 한다.


새벽 5시 40분, 서울특별시의 스물 일곱 처자는 눈을 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서는 중식 단가를 낮추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을 진행한다. 흰밥과 어머니가 전달해 주신 멸치볶음, 그리고 최소한의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한 닭가슴살 한 봉지. 아울러 집안의 대청마루 역할을 대행하는 카페를 불시에 방문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으로, 집들이 때 친척오빠에게 받은 네스프레소 머신에서 999원 단가의 에스프레소를 물통에 담는다.


새벽 6시, 미래의 당일을 위해 3,000원의 가치를 어림잡아 계산해 본다. 회사에서 회의가 있는, 즉, 3천 원을 초과하는 가까운 미래가 예측된다면, 메이크업 붓을 들어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덧바른다.


새벽 6시 30분, 광화문을 향하는 길은 우리 집에서 40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요즘 같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면, 무채색의 황제펭귄들이 줄을 지어 열차를 기다리는데, 하나둘씩 유튜브의 쇼츠를 보며 피식피식 웃는다. 각기 다른 시간차로 번져가는 웃음 덕에 무채색이었던 내 시신경이 다시금 제 역할을 찾아 컬러로 화면을 담아준다.


새벽 7시 10분, 분명 흰밥과 반찬이 든 도시락이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락 가방으로 허공에 원을 빙글빙글 돌리며, 광화문 큰 대로변을 두둠칫. 경보와 달리기 사이의 걸음으로 장단을 맞추어 나간다. 사람들은 쳐다본다. 아마, 아침댓바람부터 두둥 탁 뛰어다니는 아가씨가 신기해서겠지.


아침 8시, 출근 개시. 정규 근로시간보다 한 시간 빠른 자들이 정규 근로시간의 사람들보다 조금 더 밝다. 열차 안에 무채색 황제펭귄들이 상대적으로 수가 적어서 그런 걸까. 아침에 미소 짓고 사람들을 맞이하면, 미소가 전달되어 그 사람의 아침 또한 밝아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으로, 그 사람의 작은 변화요소 하나하나를 파악해서 인사말로 덧붙여 전해준다.


아침 9시, 정규 근로 시간의 사람들까지 모두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 나는 급한 결재 건이 있지만, 9시 정각부터 9시 30분까지, 하루 시작부터 용건을 말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 9시 31분에 자리에서 일어나자고 다짐한다. 그 30분 사이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당면한 하루의 계획을 세워나간다.


정오. 귀에 에어팟을 꽂고, 새벽에 싸두었던 도시락통을 열어본다. 허공에 몇 바퀴를 돌았으니, 당연하게도 비빔밥이 되어 있었고, MZ의 더티플레이팅이라 여기면서 숟가락으로 어머니의 멸치볶음밥을 한 숟갈 퍼올린다. 엄마의 정성을 내 몸에 한가득 담아간다.


오후 3시. 회사 안에서의 소통은 어렵다. 네 것이니, 내 것이니 하는 중간관리자들의 서로 미루기 경쟁에 선 듯 나섰다가는 어떻게 혼이 날지 모른다. 그냥, 덜 바쁜 사람이 해주면 될 것을. 나는 조용히 하고, 중간관리자들의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괜히 한 마디를 던졌다가는 어떤 분에게 잡혀갈지 모르니, 이기는 편이 내 편이다.


오후 5시. 정각이 되기 10초 전에 외투를 입고서는, 정각에 목에 매달려있는 사원증을 벗어던지고서는 또 한 번, 출구를 향해 경보한다. 이 시간만을 기다려왔다. 9시간 동안. 이 시간부터 나는, 내일 아침 8시가 될 때까지 목소리를 잃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어느 하나도 쉬운 것이 없다. 서울특별시에서 버텨내기가 힘들어질 때마다, 엄마에게 “나, 내려갈까? “ 하고 싶지만은,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또한 내 나이에 세상이라는 시소에 균형을 맞추느라 힘들었을 것. 이 글을 보는 당신 또한, 나와의 연은 없지만, 저 멀리서 홀로 당면한 세월을 이겨내고 있을 터. 누군가가 피상적으로 옆에 있음을 느끼면서 4평 남짓한 방에서 위안을 얻어본다.



+ 평범을 지켜내는 당신 그리고 나, 우리는 점차 사회에서 아저씨와 아가씨로 불려 가겠지요.

우리의 청춘은 오늘을 포함해 계산됩니다.

21세기 중반을 달려가는 각자도생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한 저편에서,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감각을 경외시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