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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초연 Apr 08. 2024

우연히 내게 오나 봐.

스무 살의 세 번째 과팅에서

우연: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 혹은 어떤 사물이 인과율에 근거하지 아니하는 성질.

대학교 입학 후, 신입생 단과대 해오름제에서 빅뱅의 뱅뱅뱅으로 1등을 한 적이 있다. 해오름제는 대학교에서 학생들끼리 한 해를 잘 보내자는 의미로 벌이는 축제로써, 나는 춤을 추었다. 각 단과대에서 진행한 해오름제의 1등은 반드시 전체 단과대가 모인 학교 발대식에 출전해야 했고, 많은 대학생들을 맞이하는 그 일면식에서 누군가는 나를 알게 되었다.


그 후, 우리 학과 어떤 친구에게 인문대에서 과팅 신청이 왔다고 한다.

"초연아, 너는 꼭 나오래. 누가 기다리고 있나 봐."


내가 재학 중인 생활과학대학과 인문대학은 거리가 꽤 있었다. 3월 중순. 학교에 입학한 지 삼주가 되지 않는 그 기간에 누군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아이는 누구일까. 어떻게 나를 알고 있으며, 왜 나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는 걸까. 첫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스무 살의 굉장한 떨림이었다.


인문대와 우리 단대의 과팅 채팅방이 만들어지고서도 나는 그를 알지 못했다. 상대편에서는 세 명이 출전했는데, 각 33.3%의 확률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나는 그를 빨리 알아채야 한다. 남성분들은 이미 나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거겠지?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지만, 나를 이 자리에 초대해 준 너에게 감사해하며, 나는 누군지 모르는 봄날의 너를 위해 꽃무늬 원피스를 준비했다.



당일, 룸술집에는 세 명의 남성분들이 앉아있었다. 들어서자마자 개중에, 눈에 띄는 한 아이가 있었다. 184cm의 훤칠한 키, 넓은 어깨에 어울리는 핏한 흰색 셔츠와 그에 어울리는 검은 데님 팬츠. 하얀 피부에 슬랜더 체형의 한 사람. 마른 몸매에서 체지방률은 낮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육이 적당히 있어 슬림 탄탄해 보이는 이 사람. 이러면 안 됐지만, 양 옆의 두 명의 친구들 앞으로 먹구름을 만들어버리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들어오는 내 친구들과 나를 맞이하며, 살포시 웃음을 지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간 내가, 다시 방문을 닫기 전 그 짧은 찰나에 호감 가는 사람이 생겨버렸다. 어떡하지.


나를 찾는 아이는 누구일까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소지품으로 짝을 정해 앉게 되었다. 내가 내밀었던 100원 동전을 잡은 상대는 내가 문을 닫는 찰나에 반해버린 그 아이였다. 내 옆에 오고서는 그 아이는 한 번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에게 관심이 없는 걸까. 힐끔힐끔 볼 만도 한데.. 싶으면서, 속상한 마음에 여러 번 술잔을 혼자 기울였다. 인문대 친구들은 술게임보다는 대화를 선호하는 친구들이었다.


더군다나 누군지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세잔을 연속으로 참이슬을 따라 마신 나는, 얼굴이 붉어진 채, 결국 뱉어서는 안 되는 말을 두서없이 내뱉고 말았다.


"누구야. 나, 찾고 있는 사람!"


그 말을 뱉고 나서야 그 아이는 나를 처음 쳐다보았다. 너였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좋겠는데. 제발 너여야만 하는데.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나를 네가 알았는지, 너는 갑자기 내 친구를 바라보더니, 내 친구의 눈을 쳐다보면서, "나야." 하더라. 내가 그 소리를 듣고 내면에서 얼마나 환호성을 질렀는지 너는 알까.


네가 나를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은 이유는 그제야 알았어. 너였기 때문이지. 네가 나에게 반한 순간부터 직접 나를 만난 순간까지 상상해 왔던 '내가', 실제의 '나'와 일치했나 봐. 과팅이 끝난 직후에 너에게 연락이 오더라고. 다른 한 친구도 내게 연락을 주긴 했지만, 어쩌겠니. 나는 너밖에 보이질 않는데.


우연, 어떤 인과율에도 근거하지 않는 우리 둘이 이렇게 만났어. 저 멀리서 너는 나에게 반했고, 나는 가까이서 너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지. 우연히 내게, 봄향기가 시각적으로 보이더라. 벚꽃을 따라 너도 같이 오나 봐. 7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그날의 너를 느낄 수 있어. 우연히 봄날, 우현아. 너는 잘 지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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