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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헬 May 03. 2021

식물의 뚝심

지인이, 어렸을 적 과학 숙제로 강낭콩을 기르며 관찰 일지를 써야 했는데 집에 강낭콩이 없어서 냉동실에 있던 팥을 심었다는 얘기를 했다. 언제 냉동실로 들어갔는지도 확실치 않은 꽁꽁 언 팥알을 위를 자른 종이컵에  물 적신 휴지를 넣고 올려놓았더니 뿌리가 나오고 싹이 트더란다. 그리고 그는 결국 노랗고 앙증맞은 꽃송이도 보고 말았다 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몇 년 전, 우연히 알게 된 인도 친구 집엘 놀러 갔는데 그 집 베란다에 고수가 자라고 있었다. 전에 잠깐 중국 살 때 맛 들이고 여기서는 흔히 보이지 않아 그리워만 하던 채소인데, 내가 반가워서 호들갑을 떠니 친구가 봉지 가득 씨앗을 나눠 주었다. 왜 그랬는지 기억은 없지만, 나도 그걸 냉동실에 보관했었다. 그리고 몇 년을 마당에도 뿌리고 화분에도 뿌리며 제법 재미나게 고수를 길렀다. 


새끼 손톱 보다 작은 씨앗들이 영하 20도 냉동실 속 맹추위를 견뎌낸 것이다.


식물은 살아 있는 한 조금만 조건이 맞으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다.  창고에 둔 상자의 속 사정을 잊은 사이에 감자와 고구마, 양파는 싹을 내민다. 며칠 요리를 게을리하다 김치찌개라도 끓이려고 냉장고를 열면, 사각 통 속 마늘에는 파르스름한 꼭지가 돋아 있고 야채칸에는 광합성을 했을 리 없는 당근이 손가락 내밀듯 삐죽이 연초록 이파리를 내놓고 있다. 


빛과 흙과 물이 직접 닿지는 않지만 창고와 냉장고에서도 온 힘을 다해 살아 있다고 아우성치는 채소들인데,

마당 사는 녀석들은 더더욱 기세등등하다. 

이제는 매년 새로 심지 않아도 자기 자리 지키며 올라오는 화초들이야 그렇다 치고,  정해 준 자리도 없는데 뽑아도 뽑아도 어떻게 또 씨를 흘리는지 돌아서면 다시 올라오는 잡초들의 뚝심은 당할 재간이 없다. 


동물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번식할 환경을 찾고 만들지만, 식물은 발 뻗을 자리를 탓할 새가 없다. 


오전에 남편이랑 잔디에 쭈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으며 호프 자런의 <랩 걸>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뿌리를 내리는 작업은 씨 안에 들어 있던 마지막 양분을 모두 소진시킨다. 모든 것을 건 도박이고, 거기서 실패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성공할 확률은 100만분의 1도 되지 않는다."


100만분의 1의 확률로 살아난, 도박이 무섭다고 피하지 않은 장한 너희를 내 손으로 뽑긴 했다만, 

그래도 내 그 뚝심 만은 인정하마.



엎드려 있어도 다 보여

숨은 놈이 있을지 몰라
쓸 데 없는 짓 그만 하고 나랑 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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