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번역하는 책은 번아웃을 이기고 성과를 최고로 끌어 올리는 법을 다룬 자기계발서이다.
사례와 연구, 실험이 많이 나와서 용어의 정확한 쓰임을 찾느라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나도 번아웃의 경계에서 늘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지라 솔깃한 얘기가 많다.
오늘 번역한 부분에서는 뇌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실험이 나왔다.
요약하면,
실험 참가자들을 초콜릿 칩 쿠키 냄새가 진동하는 방 안으로 들여보낸다. 참가자들이 자리에 앉으면 쿠키를 갖다준다. 다들 하트가 된 눈으로 쿠키에 눈독 들이고, 집어서 냄새까지 맡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쿠키는 한 그룹에만 준다. 나머지 한 그룹에는 눈앞에 쿠키가 있는데 무를 주고 먹으라고 한다(무를 진짜 다 먹었을까? 미국 사람들 무 질색하던데. 어쨌든 쿠키를 못 먹은 것만은 분명하다).
잔인하기도 하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참가자들이 각각 쿠키와 무를 먹고 나면 문제를 준다. 당연히 풀리게 생긴 문젠데, 실은 풀 수 없는 문제다. 재밌는 결과가 나왔다.
무를 먹은 그룹은 8분 정도 앉아서 19차례 문제를 다시 풀었고,
쿠키를 먹은 그룹은 20분 이상 앉아서 33차례 문제를 다시 풀었다.
무를 먹은 사람들은 쿠키를 참는 데 뇌의 에너지를 다 써 버렸지만, 쿠키를 먹은 사람들은 쿠키를 먹고서 뇌에 연료를 가득 채웠으므로 문제 푸는 데 훨씬 더 큰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다, 는 게 실험의 결론이다.
나도 휴식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고 있어서 한 번 자리에 앉으면 45분을 넘기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45분이 되면 미끄러지듯 의자에서 내려와 바로 뒤에 대기 중인 카펫에 누워 쪽잠을 자거나, 기운이 좀 있으면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얼른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오기도 한다. 그렇게 15분을 번역이 아닌 다른 걸 한 뒤 다시 45분을 일하는 식으로 하루를 채운다.
그런데, 뇌를 제대로 굴리려면 초콜릿 칩 쿠키 정도는 먹어 줘야 했던 건가?
그 정도는 돼야 번역에 막 불이 붙는 거였나?
그래서 오늘은 마당으로 나갔다. 주말이 아니고서는 그림의 떡처럼 거실 유리문 밖으로 구경만 하는 마당,
쿠키는 없고, 요즘 사랑하게 된 몰모랑시 건타트체리와 아몬드를 들고 데크에 앉아서 15분 동안 바람 좀 쐤다.
오월이 벌써 사흘이나 지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