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헬 May 23. 2021

왼쪽 어깨가 간질간질하던 날

2017년 가을은 햇빛이 유난히 따뜻했다. 초록이 진 빈 마당에는 여름보다 더 햇빛이 많이 담겼다. 거실 모서리 책상에 앉아 일을 하자면, 마당에서 유리문을 넘어 들어온 빛이 왼쪽 어깨를 은근하게 감쌌다.


햇빛뿐일 마당에서 움직임을 느낀 건, 거짓말처럼 지진이 찾아와 우리 집과 마당, 동네와 도시를 흔들어놓기 바로 며칠 전이었다.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왼쪽 어깨가 간질간질했다. 모과 잎이 지나보다, 했다. 왼쪽 얼굴이 간질거렸다. 앞집에서 넘어온 목련나무 잎인가, 했다. 이제는 옆구리도 왼쪽이 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마당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양이 여섯 마리. 어미는 삼색이, 새끼들은 깜장 하나, 잿빛 둘, 노랑 둘.


동네 길고양이들은 담 넘어 집집을 다니며 곱게 기른 화단과 텃밭을 망쳐놓기 일쑤라 정갈하신 할머니들은 특히 녀석들을 끔찍해하신다. 나도 그랬다. 고양이는 들어오면 쫓아내는 동물이지 맞이하는 동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기들은 사람이고 동물이고 눈길을 끄는 구석이 있다. 햇빛에 비친 제 그림자를 잡겠다고 마당을 뒹구는 녀석들을 보느라, 나는 거실 유리문에 붙어 한 시간을 땡치고 말았다. 정말로 솜털도 안 빠진 아기들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고양이를 한 번 만져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놀이 시간이 끝났는지 어미는 앙상한 몸으로 새끼들한테 젖을 물렸다. 길냥이 생활만도 고단한데 핏덩이 같은 아기들을 먹이느라 눈이 퀭했다. 게다가 꼬리는 어디서 다친 건지 끝이 꼬부라져 있었다. 새끼들은 이렇게 먹는데, 어미는 뭘 먹는 걸까. 수유 시간이 끝나자 어미는 아기들을 데리고 뒷곁으로 사라졌다. 조심조심 따라나가 보니 뒷마당 데크 안이 보금자리인 듯했다.


들어와 점심을 먹는데 어미의 앙상하던 등 언저리가 눈에 밟혔다.  냉동실에서 쇠고기 한 덩어리를 꺼내 해동해서 어미가 젖 물리던 데크 한쪽에 내놓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