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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나 May 11. 2023

[산티아고 2] 피니스테라에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2

#나의 첫 번째 까미노 이야기

'네 지원을 포기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저...지금 포기하시면 이번 시즌 재지원이 어려우십니다. 면접도 보셨는데 그만하시는 것이 맞으신가요?'

'네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 본 결과, 쉽지 않아서 포기하려고 합니다.'


결국 학생지원팀에 전화해서 포기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엄청난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몰려왔다. 사실, 디즈니 인턴십(교환학생)을 안 간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24살의 나는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함께 대학교를 다녔던 동문친구 2명은 장기 해외프로그램으로 인해 만남이 어려웠고, 햇빛이 잘 들지 않은 쉐어하우스에 살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했다 대차게 차였고,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었다. 전공교수님은 '우리 학과는 취업이 쉽지 않은 과인데...'라는 말씀까지 세상이 '넌 사랑받을 자격 없어', '넌 친구가 없어', '너의 꿈은 여기까지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꿈과 목표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가족, 친구, 사랑, 일(커리어) 운세는 못 가질 수 있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 하지만, 꿈&목표는 내가 어떻게든 시도라도 해보자!'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그 희망조차 짓밟힌 기분이었다. 그때가 2018년 겨울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 춥고, 외로웠던 기억이 난다.


정신과에 가기는 무서워서 원데이 클래스로 하는 '심리 상담'을 받기로 한다. 그 클래스가 나의 첫 번째 인생의 심리상담이었다. 처음으로 하는 상담. 너무 무섭고 두려웠지만 차근차근 말을 했다. 지금까지 겪은 상황을...


'로사나님은 다른 사람과 다른 이중의 짐을 가지셨네요.'

'이중의 짐이요?'


이중의 짐. 생각해보지도 못해서 정말 깜짝 놀랐다. 나에게 '이중의 짐이 있다고?' 그 말은 머리에 망치를 때린 것처럼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평소에는 나무늘보의 눈이지만 충격이 있으면 토끼눈처럼 커진다. 그리고 귀를 쫑긋 세우게 되었다.


'로사나님이 가진 이중의 짐은 다문화가정이라는 것, 금전적 어려움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일본분이시고 어머니가 한국분이시라고 하셨는데요. 다문화 가정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은연중에 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경제적 어려움인데요. 가장이셨던 아버지의 병세 그리고 갑작스러운 투석으로 인한 막대한 병원비까지. 외국분이 보험혜택을 받기 어렵다는 점까지...결국 두 가지의 짐이 있었네요.'


상담사님의 말씀에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태어나길 다문화 가정이었고, 아버지는 외국인이었다. 이것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받아들였었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이었기에 받은 정부적 혜택도 있었다. '다문화 가정'덕분에 숙대에도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태어나고 24년을 살면서 받은 혜택과 달리 지난했던 경험도 있었다. 한일가정으로 지내면서 겪었던 사회문화, 정치적 갈등 그리고 내 안에 정체성 혼란과 뼛속까지 한국과 동질화되지 못했던 상황들까지....


그 상담을 끝으로, 조금 위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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