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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an 30. 2022

[ 할망장터와 오일장 ]

어머니에게

어릴 적 추억으로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는 그곳.

오일장(5일마다 열리는 시장).


한국의 역사에서 근대의 상설 시장이 들어서기 전에 형성된 상거래 장소로서,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오일장은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19세기의 '만기요람'에 의하면 전국의 오일장은 1,057개로 파악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배경이 된 화개장,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봉평장이 유명하기도 하다.


매달 떠나는 제주여행을 시작하면서, 오일장의 매력에도 빠지게 되었다.

여행의 시작은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때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떠나고 싶었을까?


처음에는 답답함을 피한다는 핑계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삶과 문화를 고스란히 느끼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에게 익숙해져버린, 점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도전의 기회와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것으로 여행은 옮겨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를 위한 선물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제주시민속오일시장'이 서는 날이다.

매달 뒷자리가 2일, 7일인 날에는 제주시민속오일시장이 열린다. 전국 최대 규모라는 것이 실감이 날 정도로 다양한 현지의 농산물, 수산물, 그리고 길거리 음식과 활기찬 다양한 표정을 만날 수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쭉 뻗어있는 중앙길에는 호떡, 붕어빵, 떡볶이, 튀김 등 길거리 음식을 즐겁게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묘목코너, 야채코너, 의류코너, 약초코너, 과일코너, 생선코너등 다양한 코너가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곳은 '할망장터'이다.


할망장터는 주름살 깊은 만 65세 이상의 할머니라면 누구나 무료로 운영할 수 있는 장소인데, 이리저리 찢어진 박스에 그림을 그리듯 적어둔 가격표와 할망들의 소박한 입담이 특징이다. 할망들은 자릿세를 내지 않는 대신, 직접 재배한 텃밭작물이나 나물 또는 수산물을 저렴하게 판매한다. 정찰제가 아니기에 흥정해보지만, 할망들의 사투리와 입담에 대부분의 손님들은 지고 만다. 하지만 할망들의 덤은 너무나 과한 인심이어서, 결국은 모두가 기분 좋아지는 흥정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통통하고 탐스러운 옥수수, 팥고물이 촘촘한 오메기 떡, 기름에 바싹 구워진 호떡과 튀김, 진한 국물이 느껴지는 뜨끈한 국밥 그리고 제주 생막걸리와 흑돼지 순대 등, 모두가 발길을 붙잡는다. 시장은 활기와 열정을 다시 느끼게끔 하는 귀한 장소이고, 에너지를 얻기에도 참 좋은 곳이다.


시장의 열기를 뒤로하고, 할망장터에서 구매한 고사리를 바라보니 그분의 얘기가 생각난다.

'철마다 산으로 들로 고사리, 산나물을 캐서 애들 대학까지 보냈다'는 할머니의 사랑과 열정.

당신들은 자기 자신의 힘듦보다 자식을 생각하고, 희생이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아이들 입에 더 맛난 것,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는 것이 삶의 이유라고 생각하신 분들이다.


작은 아픔에 우리는 가끔 큰 아픔인 듯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아픈 사람인 듯이 말한다.

누구나 아픔은 있고 고통을 느끼지만,

나의 아픔보다,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 고통을 더 아파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바라보지 못했다.


내 손가락의 작은 상처를, 당신 가슴의 큰 상처보다 더 아파하는 어머니에게.


오늘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해봅니다.









by Daniel

인스타그램 @a.spoon.of.smile

카카오음    @daniel.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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