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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01. 2024

여행#1. 카름스테이 세화마을

2024.2.11-2.23, 12박 13일

머무르는 마을여행의 시작


안식년을 맞아 제주에서 홀로 2주 살기를 계획했다. 아는 분이 세화마을을 소개해 주었다. 여러 번 제주에 왔지만 처음 들어본 동네이다. 네이버 지도로 보니 관광지도 별로 없다. 숙소 이름은 세화밖거리. 세화마을협동조합에서 운영한다. 1인용 아도록한 방은 1박에 5만 원 정도. 바로 해변에 붙어 있다. 추천해 준 분을 믿고 2주 예약했다. 



카름스테이(Kareum Stay)


검색을 해보니 이 마을이 큰 상을 많이 받았다.  2023년 유엔세계관광기구에서 주관하는 <UNWTO 최우수 관광마을>에 세화리와 신흥2리가 선정되었다. 최우수 관광마을 시상제도는 2021년 생긴 것으로, 지속가능한 지역관광 개발을 통해 농어촌 지역의 불균형과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한 우수 사례를 선정하고 있다. 세화리와 신흥2리는 카름스테이에 참여하고 있는 대표 마을이다.


카름스테이는 지역주민이 중심이 되는 제주의 체류형 마을관광 통합브랜드이다. 2021년 제주관광공사가 기존 마을여행 상품을 통합하여 만든 것이다. 2023년 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에서 주관하는 <PATA 골드 어워즈>에서 상을 받았다. '사회적 책임 분야의 지역관광 부문' 대표사업으로 선정되었다. 주민 주도 관광모델의 성공사례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카름 스테이 PATA 골드 어워즈 수상, 세화리와 신흥2리 UNWTO 최우수 관광마을 수상 / 출처 : 비짓제주 블로그


카름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카름은 제주도 사투리로 작은 마을이나 동네를 의미한다고 한다. 카름이라는 단어와 머물다의 스테이를 결합하여 근사한 브랜드명이 만들어졌다. 마을에서 살아보고, 느껴보고, 배워보는 새로운 방식의 여행. 안식년에 딱 맞는 여행이다. 


카름스테이에 참여하고 있는 마을은 10개이다. 2023년에는 교래, 김녕, 무릉리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제주를 동서남북 네 권역으로 나누어 동카름, 서카름, 알가름, 웃가름이라 부른다. 이 중에서 내가 가본 마을은 가시리와 저지리, 이번 방문한 세화리이다. 세화리는 동카름에 속한다.


https://www.kareumstay.com/



질그랭이구좌 거점센터


제주 마을관광의 중심에 세화마을협동조합이 있다. 세화마을협동조합은 2019년 477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하였으며 올해 500명이 넘을 거라고. 조합에서는 체험관광서비스, 지역상품판매, 주민문화복지, 조합원교육 등을 한다.


http://www.sehwamaeulcoop.com/index.php


조합에서는 질그랭이구좌 거점센터를 운영한다. 질그랭이는 '지긋이'의 제주어로, '지긋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다. 브랜드는 구좌읍 주민들의 손글씨를 조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브랜드 그래픽도 귀엽다. 


질그랭이구좌 거점센터 안내도. 3층 주민모임공간&카페는 공유오피스로 바뀌었다. / 출처 : 세화마을협동조합


 

질그랭이구좌 거점센터 브랜드와 브랜드 그래픽 / 출처 : 세화마을협동조합



질그랭이센터는 마을 회관을 리모델링하여 2020년 문을 열었다. 마을 예식장으로 사용했는데, 청년들이 줄면서 방치되었던 공간을 재생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에서 86억 원을 확보하여 4층 규모의 센터를 조성했다. 1층에 조합 사무실과 세화리사무소, 구좌주민여행사가 있고, 2층에 카페 477+, 3층에 공유오피스, 4층에 세화밖거리라는 숙박시설이 있다. 카페 477+는 마을협동조합을 만든 조합원 수를 따서 만들었다. 플러스는 조합원이 더 늘어나길 바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카페에는 제주구좌당근쥬스와 지슬빵, 당근치즈쌀빵 등 제주 농산물로 만든 메뉴가 있다. 센터에서는 시간당 비용을 받고 워크숍, 회의, 모임 등에 공간 대관을 하고 있는데, 1층에 수용인원 60명, 2층에 50명, 3층에 20명 규모의 공간이 있다. 


https://youtu.be/N45GEURsRLE?si=ytIgbYZAF_CSqfXc

질그랭이센터 소개영상 / 출처 : 세화마을협동조함 홈페이지

세화밖거리 


세화밖거리는 질그랭이센터 4층에 있는 숙소이다. 제주에는 안거리, 밖거리라는 독특한 주거문화가 있다. 한 울타리 안에 집이 2채가 있는데, 안거리는 노부모, 밖거리는 아들내외가 살았다고 한다. 세화밖거리는 여기에서 따온 명칭이다.  


세화밖거리는 2023년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여름 성수기에 숙박 요금을 27% 인하했기 때문이다. 세이브케이션(Savecation, 가성비 여행) 여행 트렌드를 촉발한 파격적 조치였다. 역발상 덕분에 세화마을은 비수기에도 여행객이 계속 늘어나는 동네가 되었다.    


세화밖거리에는 네 가지 유형의 방이 있다. 제주어를 사용하여 아도록한 방(1인),  돌랑돌랑방(2-3인), 지꺼진방(6인), 팰롱팰롱방(7인)이 있다. 아도록한은 아늑한, 돌랑돌랑은 두근두근, 지꺼진은 기쁜, 팰롱팰롱은 반짝반짝의 제주어. 예약은 네이버예약으로 쉽게 할 수 있다. 체크인은 별도로 없고, 양군모 PD가 문자로 방 비밀번호를 알려준다. 나는 아도록한 방에 묵었는데, 오랜만에 요에서 잤다. 방이 작지만 답답하지 않았는데, 공용거실과 공유오피스 덕분이었다. 매일 아침 햇살을 받으며 파도소리에 깨어났다. 내려다보이는 세화해변은 날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흐리면 흐린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아름답다. 사는데 많은 게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세화밖거리 아도록한 방과 공용거실 / 출처 : 세화마을협동조합


아, 여기에는 TV가 없다. 집에 혼자 있으면 너무 조용해서 그냥 틀어두곤 했는데 틀 TV가 없다니. 그래도 밤에 피는 꽃 11회와 최종회를 봐야 할 텐데. iMBC 온에어 1일 이용권을 2,000원에 구매해서 노트북으로 보았다. 영화는 OTT를 활용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워케이션(Workation)


관광은 쉬려고 가지만 기회비용 생각하다 무리하고 돌아오게 된다.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집에서 떠나 조용히 글 쓸 곳이 필요했다. 그런 곳이 있을까 싶었는데 여기다. 모르고 왔는데, 이곳이 제주 워케이션 성지라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제주에 워케이션 민간 오피스가 늘어났다고 한다. 2023년 8월 기준 14개소. 오피스 제주 조천점과 사계점, 리플로우 제주, 디어먼데이 제주점, 스페이스 모노 등. 질그랭이센터는 마을공동체 유형의 워케이션 성공사례로 이들과 차별된다. 숙소인 세화밖거리에서 내려가면 바로 공유오피스가 있다. 2층에 있는 카페 477+를 통해서 3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첫날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창밖에 세화해변이 보인다. 사고 싶었던 데스커 높이조절 책상에 모니터, 팩스, 복사기, 사물함, 세미나실까지. 카페에서 음료수 한잔만 시키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내가 머무는 2주 동안 흐리고 비가 온 날이 많았다. 하지만 쾌적한 공유 오피스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더없이 멋있었다. 


질그랭이구좌 거점센터 공유오피스 / 출처 : 세화마을협동조합


평일 아침 10시에 출근, 12시에 마을에서 점심과 산책, 2시부터 7시까지 공유오피스에서 읽거나 쓰기. 아침으로 당근주스를 매일 먹었다. 카페에서 먹기도 하고 세화마을협동조합에서 만든 <제주당근 100> 주스를 하나로마트에서 사다 먹기도 했다. 점심은 마을주민이 운영하는 음식점을 '맛집엽서'로 소개해 주어 잘 이용했다. 엽서를 가져가면 음료를 서비스로 준다. 이걸로 센터의 지역 파급효과를 측정해 본다고 한다. 모다정의 고사리육개장, 하도댁의 두루치기, 청파식당횟집의 고등어회, 세화갈비의 불고기뚝배기, 삼춘네국수 구좌월정리세화점의 고기국수 등. 1인용 메뉴가 없어서 다시버시 갈치조림은 먹지 못해 아쉬웠다. 저녁은 간단하게 빵으로 먹었다. 자체 개발한 지슬빵, 당근치즈빵 등 다양한 쌀빵이 소화도 잘되고 맛있는데, 기한이 되면 할인까지 해준다. 7시가 넘으면 카페가 시끄러워져서 공유오피스까지 울린다. 마을주민들이 회의 끝나고 모이는 거라고. 낮에는 관광객이나 젋은이가 많은데 저녁에는 중장년 어르신의 동네사랑방이 되는 것이다. 잘 활용되는 공간을 보면 기분이 좋다. 


청파식당횟집의 고등어회



구좌주민여행사

 

구좌주민여행사는 세화마을협동조합에서 만든 여행사이다. 2018년부터 교육, 시범개발, 팸투어 등 준비를 하였으며, 2020년 지역균형발전위원회의 '읍면동 지역균형발전사업'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았다. 여행사에서는 해녀, 오름, 밭담 등을 주제로 주민해설사가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프로그램은 당일 프로그램, 체류프로그램, 비대면 프로그램이 있다. 당일 프로그램은 다랑쉬 웰니스 투어, 양 PD와 세화야밤투어, 세화마을 체험데이 등이 있고, 체류 프로그램은 해녀학교(3박 4일), 세화 한주살이가 있다. IT를 활용한 비대면 프로그램은 세화 스탬프 투어, 용궁공주님을 구해줘 Play Q가 있다. 네이버예약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아쉽게도 프로그램이 3월부터 시작이라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다. 방문한다면 꼭 이용해 보길 권한다. 


특히, '세화 한주살이' 프로그램은 잘 기획된 체류형 프로그램이다. 일손 돕기, 기습미션, 마을투어, 마무리로 구성되어 있다. 당근밭, 떡집, 서점 등에서 일손 돕기 프로그램이 인상적이다. 주민과 함께 일하며 소통하는 시간이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https://youtu.be/tTGHEr1jz2A

세화 한주살이 홍보영상 / 출처 : 세화마을협동조합



구좌주민여행사에서 발간한 마을지도와 마을소개책자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카름스테이 워케이션 다이어리를 무료로 나누어주어서 얼른 챙겼다. 공유오피스에 '사름(SARM)'이라는 로컬잡지가 있는데 상당히 수준이 높다. 로컬브랜드를 소개한 기사를 보고 세화마을에 있는 로컬브랜드 카카오패밀리에 갔다. 이곳에서 매년 설선물을 보내주는 분께 답례 선물을 보냈다. 카페에서는 로컬브랜드 제품들을 모아서 무인 판매를 하고 있다. 


세화마을지도, 구좌읍과 세화마을 소개책자


세화의 관광지 중 비자림과 다랑쉬오름을 가고 싶은데, 대중교통이 없어서 고민이었다. 마침 질그랭이센터 1층 주차장에 소카존이 있었다. 이곳에서 빌리면 상시 50% 할인이어서 합리적인 가격에 다녀올 수 있었다. 비자림, 다랑쉬오름, 빛의 벙커를 거쳐 성산포에서 월정리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느긋하게 드라이브를 했다. 렌터카는 주유 후 반납인데, 소카는 반납 후 주행거리에 따라 주행비가 청구된다. 세화마을은 제주올레트레킹 20구간의 종착지이자 21구간의 출발지이다. 제주해녀박물관에서 21구간이 시작되는데, 올레패스 앱에서 아카자봉 신청을 하면 된다. 내가 신청한 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아쉽게도 가지 못했다. 


세화에 있으면서 주말에 다녀온 곳은 다음과 같다. 

자연 : 비자림, 다랑쉬오름, 세화해변, 월정리해변, 해안도로 드라이브(성산포항-월정리)

문화 : 제주해녀박물관, 제주풀무질, 책방 마고, 세화민속오일시장, 빛의 벙커, 국립제주박물관, 노형수퍼마켙

쇼핑 : 카카오패밀리(로컬브랜드), 구좌농협 하나로마트

음식 : 모다정, 세화갈비, 청파식당횟집, , 하도댁, 삼춘네국수 구좌월정리세화점, 엘 플로리디타


다랑쉬 오름 / 출처 : 세화마을협동조합



지방소멸의 대안


세화마을은 여러 매체에서 지방소멸의 대안으로 기사화되었다. 작년 행정안전부 장관이 시찰을 오기도 했다. 

기사에서 정리한 성과를 살펴보면, 2022년 기준으로 질그랭이 센터에 한해 6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공유오피스는 20개 기업에서 600여 명이 이용했다. 티몬, 현대중공업, 대상웰라이프 등 다수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워케이션 기간 동안 1명당 약 50만 원 내외를 소비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전국 109곳 마을에서 2,474명, 관련기관에서 677명이 견학을 왔다. 매출도 5억 원이 넘었고, 2023년에는 6억이 넘을 것으로 보도되었다. 2016년 1,986명이던 인구가 2023년 6월 기준 2,271명으로 10% 이상 늘어났다. 이주민과 관계인구 모두 증가한 셈이다. 놀라운 성과다.


세화리는 1만 원만 내면 마을주민이 되어 이장 투표권을 갖는다. 이러한 리 주민 기준 덕분에 세화리는 원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상생하며 산다. 50년을 살아야 마을주민으로 인정해 주는 마을이 있다는데 얼마나 대조적인가. 이러한 열린 제도가 이주민을 늘리고, 관계인구를 늘리는 비결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30710100600056?input=1195m



부지성 이장과 양군모 마을 PD


세화마을의 성공 뒤에는 두 명의 인물이 있다. 부지성 이장님과 양군모 마을 PD다. 한 명은 원주민, 다른 한 명은 이주민이다.  


부지성 이장님은 2015년부터 10년째 이장을 맡고 계신다. 2019년부터는 세화마을협동조합의 이사장까지 맡고 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세화리는 굵직한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89억 원). 해양수산부의 어촌뉴딜 300 사업(93억 원).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체육센터 건립사업(130억 원) 등. 하지만 모두 주민들 덕분이라며 겸손해하신다. 도지사나 국회의원에게 말해서 지역사업을 따오는 게 능력 있는 이장이 아니다. 주민이 스스로 참여해서 준비하고 실행하게 만드는 것, 주민의 주도성과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게 더 고도의 역량이다. 질그랭이 거점센터 조성 과정에서 조합 내 건축, 카페운영, 인테리어 등 분야별 주민 TF를 운영했었다. 함께 토론하고 협력하면서 형성된 주민역량과 성공경험. 세화마을협동조합의 진정한 힘은 바로 이것이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3080308210004513?rPrev=A2023080921510001513


세화마을에 대한 기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더 있다. 양군모 마을 PD이다. 세화밖거리 숙소 예약에 대해 문의하면 즉시 답을 주던 담당자다. 마을 PD라는 직책도 흥미롭다. 오늘도 카페에서 마주쳤는데, 견학 온 사람들에게 공간을 소개해 주고 있었다. 기사를 보니 이주민이란다. 어떻게 이곳에 정착하고 함께 마을을 가꾸게 되었을까. 제주관광공사의 삼촌 PD에 지원해서, 당시 공석이었던 세화리 삼촌 PD로 2018년부터 근무했단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마을에 남아 2020년부터 마을 PD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양군모 PD는 기획자이자 해결사다. 마을에 필요하면, 누구든 찾아가 말한다. 데스커 협찬, 소카존 설치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 


https://m.ihalla.com/article.php?aid=1658242800729496269

 


글을 마치며


질그랭이센터 옆에 갓 지은 건물이 있다. 해양수산부 어촌뉴딜 300 사업(93억 원)으로 지은 '숨비빌레파크'이다. 숨비휴가센터와 숨비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숨비휴가센터에 더 큰 규모의 공유오피스를 준비 중이다. 바다가 보이는 통창이 있는 곳으로 데스커에서 가구를 협찬하기로 했다고. 마을호텔도 준비 중이다. 앞으로 더 기대가 되는 마을이다. 정부 지원금이 잘 사용되고 마을주민이 합심하여 제대로 일하는 것을 보는 기쁨도 덤이다. 나의 친구들에게 이곳을 꼭 소개해 주고 싶다. 


숨비빌레파크과 건립 후 전경 / 조감도 출처 : 세화마을협동조합


#워케이션, #마을여행, #질그랭이구좌 거점센터, #카름스테이, #세화마을협동조합, #마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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