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향수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
살아가는 것과 도저히 분리할 수 없는 것에는 무수히 많은 것이 있겠지만, '향'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향은 맛있는 음식을 즐기게 하고, 추억이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때로는 누군가를 유혹하기도 한다. 유혹의 향이 음식이든 사람이든 꽃이든 하다 못해 강아지 발바닥 꼬순내든 말이다. 또, 특정 향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향에 몸서리를 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우리는 언제나 갖가지 향기 속에서 살고 있다.
아주 작은 향도 알아챌 정도로 개코급 후각을 가진 건 아니지만, 굳이 민감하냐 둔감하냐를 따지자면 민감한 편이다. 어울리는 향을 가진 공간을 좋아하고, 역한 냄새에 취약해 그런 자리는 서둘러 뜬다. 새로운 향을 찾아 시향 하기도 좋아하고, 코끝에 스치는 향 하나로 온갖 추억이나 감정 따위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가장 취향에 맞는 향을 꼭 찾고 싶었고, 그 방법으로 나만의 향수 만들기 수업을 들었다. 한 자리에서 다양한 향을 맡고 비교하기에는 정말 최적의 방법이 아닌가.
잦은 시향으로 지친 후각을 달래기 위한 원두커피 한 잔과 함께 수업을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향의 특징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하나씩 맡아보면서 좋아하는 향에 표시를 하는 것이 첫 단계였다. 근래에는 우디향이나 묵직한 향에 마음이 간다고 느꼈는데, 그것도 향마다 달랐다. 우디라고 해서, 묵직하다고 해서 무조건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
향에 대한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지금까지 만나온 향이 많았으므로 자연히 누적된 취향이 확고하다 생각했다. 그러니 향을 고르는 것도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한참을 고민하다 못해 밖으로 나가서도 향을 맡아보고 정말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명확하게 어떤 향이 좋고 싫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취향에도 분류 같은 게 있는 것 같더라. 가령 마음에 쏙 드는 향은 달콤함, 포근함, 우디 등이고 이는 어떤 게 더 좋은지 순위를 매길 수는 없었다. 단지 계절에 따라, 여행이나 출근 같은 상황에 따라 어떤 향이 더 마음에 드는지 카테고리가 나뉠 뿐이었다.
수업을 들었던 당시는 가을이 막 시작되는 무렵이었기 때문에 ㅡ눈 감았다 뜨면 겨울이 올 테지만ㅡ 포근하고 묵직한 느낌이 나는 향을 골랐다. 많게는 서너 가지 향까지 섞을 수 있다지만 간결하게 딱 두 가지 향만 배합했다. 배합 비율로도 느낌이 달라지는데 시향 한대로 딱 반반씩 섞는 게 내 코에는 최고의 합이었다.
완성한 향수에 이름 스티커까지 붙여주면 수업은 끝이 난다.
결과적으로 가장 취향에 맞는 향을 찾기 위한 방법의 선택은 성공적이었고, 정작 그 향을 찾았는가는 애매하게 성공했다. 취향에 맞지 않는 향 계열을 명확히 알았으니 반은 성공이고, 좋아하는 향이 너무도 많아 '가장' 좋아하는 향을 단 몇 가지로 꼽을 수 없었으니 반은 실패였다.
그래도 취향이 반드시 한 가지 길로 속단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아성찰을 마치고, 확고하게 '나'를 잘 아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취향도 단 하나의 답으로 결론지을 수 있어야 옳은 삶의 태도라고 여겼다. 하지만 취향이라는 것은 여러 갈래의 길을 내어놓고 가장 싫어하는 길은 피하되 그 외의 길은 다채롭게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새롭게 느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