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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별 Mar 30. 2022

까눌레는 사 먹겠습니다

까눌레와 휘낭시에 베이킹 원데이 클래스

 까눌레. 이름도 모양도 생소했던 이 구움 과자는 한번 맛을 본 뒤로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음처럼 접하기 쉬운 디저트는 아니더라. 가격이 저렴한 편도 아닌 데다가, 애초에 쉽게 아무 곳에서나 맛있는 까눌레를 찾을 수도 없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회사 근처에 까눌레를 판매하는 제과점을 알게 되고서는 주기적으로 사 먹으면서 살을 찌우는 데 일조했다.


 까눌레에서 시작된 구움 과자 사랑은 휘낭시에, 마들렌, 스콘 등 범위가 넓어졌다. 퍽퍽해서 안 좋아하던 디저트인데, 잘 만든 구움 과자는 하나도 퍽퍽하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디저트 사랑은 단순히 체중을 늘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중에 내 공간에서 내가 베이킹을 할 수 있으면 어떨까'하는 상상에까지 이르렀다.


 마들렌, 휘낭시에, 스콘, 머핀, 케이크, ... 차고 넘치는 베이킹 클래스 중에서 눈에 띈 건 단연 최고로 사랑하는 까눌레, 심지어 휘낭시에까지 같이 만들어 볼 수 있는 클래스였다. 심지어 사 먹는 것과 비교했을 때 클래스 수강료도 합리적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수업을 등록했다.


 처음 도착한 공방 분위기는 따스했다. 겨울의 끝자락 어느 날이라 제법 쌀쌀했음에도 공방에 드는 햇살이 그랬다. 전체적으로 코지한 분위기였고, 작게 열어둔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찬 공기가 상쾌했다. 정말 꿈꾸던 베이킹의 이상이 실현될 것만 같은 공간이었다고 해야 할까.


 까눌레 동틀 재질에 따라 안쪽에 밀랍이나 버터를 도포하고 반죽을 나눠 담기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어렵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그냥 쉬웠다. '오 생각보다 별거 없는데?'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미리 준비된 숙성 반죽으로 까눌레를 굽고 새 반죽을 만드는 순서였기 때문에, 만들어진 반죽을 틀에 담는 것쯤은 별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역시 이렇게 쉽게 무언가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베이킹의 기본인 반죽을 만드는 것부터 어려웠다. 확실히 이쪽 재능은 없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말씀으론 재능이 아니라 요령이 없어는 것이니 몇 번만 해보면 익숙해져서 잘할 거라고 하셨다. 베이킹도 어쨌든 기술이니까. 하지만 반죽 치는 것도 힘에 부쳤던 것에서 시작해 허점은 자꾸 드러났다.


 그래도 버터를 태우는 시간은 평온했다. 보글보글 노오랗게 끓어오르는 버터는 달고나 같기도 하고 달걀물 같아 보이기도 했다. 친구 S는 마스크 너머로 넉넉히 녹은 버터에서 올라오는 향을 열심히 킁카킁카 맡았다. 버터향이 크게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반죽에 이어 발견한 두 번째 허점. 반죽을 예쁘게 짜는 건 고사하고 양도 제대로 못 맞췄다. 왼쪽 사진처럼 고르고 예쁘게 짜야하는데, 비 온 뒤 질퍽이는 땅마냥 오른쪽 사진처럼 퍼졌다. 물론 저게 좀 삐죽인다고 해서 결과물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아, 데코로 올린 오렌지는 좀 적당히 눌렀어야 했다. 힘 조절에 실패해 꾸욱 눌러 넣은 탓에 내가 구운 휘낭시에만 데코 오렌지가 쏙 숨어버렸다. 데코가 데코가 되지 못한 상황...


 만들어 놓고 나면 보람 있고 설레긴 한다. 왼쪽 사진을 찍을 때는 정말 새삼 뿌듯했으니까. 비록 데코로 올린 오렌지는 숨어버렸지만, 그래도 휘낭시에가 오븐 속에서 부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스레 마음도 푹신 차오르더라.


 대망의 완성작. 모양은 제법 그럴싸한데? 하는 수준이지만 내가 만들어서가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물론 선생님의 레시피와 비법과 노하우를 총동원한 작품이니 당연한 소리일 테지만 말이다. 직접 구운 까눌레와 휘낭시에를 가족들과 나누면서 덕분에 며칠간 또 행복을 삼켰다.


 당초 꿈꿨던 건 물거품으로 돌아가긴 했다. 베이킹은 취미로 즐기기에도,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삼기에도 내게는 영 적합하지 않았다. 취미 삼자니 이보다 즐거움이 배가 되는 일이 더 많았고, 사업을 하자니 소질이 1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 번씩 내 입에 들어갈 간식을 직접 만들어 보는 건 내가 향유할 수 있는 행복의 범위와 감각을 넓히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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