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그 시절이 떠오른 이유
나는 살아온 평생 동안, 최소한 내가 기억하는 모든 지난날 동안 인간관계에 온 힘을 다 하며 살아왔다. 힘을 주니 자연히 긴장이 되고, 놓칠까 잃을까 쥐지도 펴지도 못하며 늘 노심초사했다. 그런 마음을 안고 사니 아주 자그마한 일에도 쉽게 긁혀 다치거나, 제풀에 지치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사회를 겪다 보니 어느 날 출근길에는 이런 생각이 스쳤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은 잃을 것도 많다. 가지지 않으면 잃지 않을 수 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오롯 나 하나뿐이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조금 내려놓고, 좀 더 멀리서 바라보기로 했다.
정작 그렇게 내려놓으니 오히려 선명하게 보였다. 나를 극진히 보살펴준 사람, 언제나 위로였던 사람, 만날 때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던 사람... 그런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고 환경이 변화하면서 인간관계 또한 덧없이 흘러가기에 대부분 떠오르는 사람들은 내 곁에 남아있는, 그러니까 내가 꼭 붙잡아둔 이들이었다. 가족, 대학 친구, 학창 시절 친구, 아직도 종종 찾아뵙는 은사님... 그런 인연들.
그 가운데에 유일하게 몇 년째 소식이 끊어진 딱 한 분이 떠올랐다. 아마도 학생 때 휴대폰 번호를 몇 번 바꾸면서 그분 번호도 잃어버린 모양이다. 내게 처음으로 글 쓰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초등학교 은사님이다. 글 쓰는 인생의 초석을 놓아주신 분이자, 가장 힘들었던 사춘기 시절 내게 일어설 용기를 주셨던 분이기도 하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나는 달라진 환경과 교우관계에 적응하지 못하던 중이었다. 아마 겉보기엔 적응한 것처럼 보였을 테지만, 격변의 시기를 겪으니 속은 새카만 전쟁통이었던 것 같다. '내가 우울증일까? 나 조울증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은사님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도 졸업한 모교에 계셨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기에 단단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고, 하교 시간이 한참 지나 텅 빈 초등학교로 은사님을 찾아갔다. 어떤 대화를 나눴는가는 흐릿하지만 정말 많이 울었던 기억은 고스란히 남았다. 몸에 맞지도 않는 초등학생용 작은 의자에 앉아 서럽게 울던 그 고등학생을, 선생님은 따뜻한 품에 가두어 잔잔하고 커다란 파도처럼 위로하셨다.
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초등학생의 나는 지금 그 나이의 곱절쯤은 되는 어른으로 훌쩍 자랐다. 어릴 때 느꼈던 것과 같은 몰아치는 감정을 덤덤히 마주하며 넘기는 법을 깨우쳤고, 이렇듯 글도 쓰고 있다. 물론 아직도 이겨내지 못하는 감정에 종종 매몰되고, 여전히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터득하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말이다.
은사님이 보고 싶어졌다.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고 이제는 내 품에 은사님을 가득 안아 감사를 전하고 싶어졌다. 그때 주셨던 가르침과 선한 영향력이 제게 잊지 못할 따스함과 반듯한 심성으로 남겨졌다고 전하고 싶다.
온갖 포탈에서 검색하고 구글링을 하다가 결국 교육청 스승 찾기 서비스를 접수했다. 선생님이 퇴직하셨거나, 휴직 중이시거나, 다른 지방 교육청으로 발령이 나셨다거나 혹은 나를 만나길 원치 않으신다면 연락이 닿을 수 없다고 했다. 서비스를 접수하고 나니 마음에 더 떨리고 더 무거워졌다. 나는 은사님을,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분을 다시 만나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